추억. 1988년 3월 2일. 28세. 시골의 조그만 사립중학교.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지명이었습니다. 경남 울주군 상북면 상북중학교.

일찍이 교육의 소중함을 깨우친 동네 주민들이 모래 한 삽 한 삽, 벽돌 한 장 한 장을 모아 한 땀 한 땀 직접 지은 학교입니다. 그래서 공립도 아니고 사립도 아닌, 면립학교라 했습니다.

전교생은 주변에 세 개의 초등학교에서 1반씩 와, 세 학급에 전교생 180명.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그런 학교였습니다. 이런 사랑이 넘치는 학교에 1학년 3반 담임이자 음악교사로서 교직을 시작 하게되었습니다. 춘삼월 오른쪽 간월산, 왼쪽 고헌산, 위쪽 가지산에서 불어오는 상북 똥바람(그곳 사람들의 말)을 세차게 맞이하면서…….

그곳에서 5년. 사진은 제게 있어 그곳에서의 마지막 합창반 졸업 앨범 사진입니다.

제 옆으로 왼쪽부터 차례로 황경화, 강소연, 박선영, 김지애, 손경순, 정언희, 이미영. 아래 최말정, 손정희, 이혜영, 김현정, 최성희, 이영화.

아직도 이 아이들 얼굴을 보면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지금은 작년에 제가 담임한 학생 이름도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 말입니다.

없던 합창부를 처음 만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상북중학교는 음악실이 따로 없었고, 학교 건물 구석 창고 같은 곳에 35년 된 일제 야마하 피아노 한 대로, 중·고등학교가 같이 공용으로 같이 수업을 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푸대접 받으면서도 35년을 버텨온 야마하. 정말 명품악기 였습니다. 비록 낡았지만, 내 마음 속 최고의 명품 피아노와 함께,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그때 그 시절…….

부임 첫 스승의 날. 합창부 첫 연주. 중학교 3년 남학생 8명과 창고에서 피아노를 운동장 조례대까지 들고 와 피아노에 마이크 하나 대고, 다른 마이크 하나는 합창단 앞에 놓았습니다. 곡명은 '스승의 은혜' 외 2곡. 아쉽게도 다른 2곡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이날 공연이 바로 상북중학교 합창부 창단 연주였습니다. 강단도 아니고 운동장에서 한 합창. 과연 소리는 어떻게 전달되었을까요.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저 대단한 연주였습니다. 그날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리 전달보다 중요한 사실! 바로 제가 합창 지휘 첫 데뷔를 운동장에서 했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창단 연주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 뒤. 학교에 신관이 지어지고, 신관 건물 2층 가장 좋은 자리에 어엿한 음악실이 갖춰 졌습니다. 명품 야마하와 아쉽게도 안녕을 고한 뒤, '심금을 울리는 맑은 소리 고운 소리'를 내는 젊고 싱싱한 영창피아노와 함께 음악수업은 물론, 아름다운 화음으로 저 아이들과 함께 합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3년 2월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학교를 떠나왔습니다. 이 마지막 한 장의 사진이 메우고, 내 가슴 가슴 맺힌 추억들이 마음 한 모퉁이에 고이 묻어져 있습니다

벚꽃이 흩날리고 낙엽이 뒹굴던 그 곳.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20년. 이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정의 뜰을 거닐며 가르침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가끔씩 아름다웠던 이 시절을 그리워 하며 수많은 보랏빛 얘기들을 한 페이지씩 펼쳐내며 그 시절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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