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케냐에 갔던 때는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그리고 생에 처음으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거리에는 트리도 없고 캐럴도 없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웃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게다가 날씨까지 약간 더우니 이건 뭐 전혀 크리스마스 기분이 안 난다.

그래서 케냐에서 만난 한국인 자원봉사자 현지, 수진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이 있듯이 한인교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케냐에 한인교회가 있는지 수소문해 주소를 알아냈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고 기타 케냐 정보도 얻을 겸 한인교회를 찾아가기로 했다.

솔직히 불교신자인 내가 교회를 간다는 것이 좀 그랬지만 우리에겐 독실한 기독교 신자 현지가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한인교회에 도착했을 때 케냐에 예상외로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 분들께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약간의 불손한 의도로 찾아가게 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떤 가족 분께서는 집에까지 초대해주셔서 한국 라면에다 김치까지 대접해주셨다. 한국에서 케냐에 온 지 일주일도 안된 나에게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엔 충분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이미 두 달가량을 이곳에서 지낸 현지와 수진에게는 진수성찬과 다름없었다. 교회에서는 불고기를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었을 때 맛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불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로 나갔다. 북적이는 인파들 속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고 할지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역시나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나름 우리끼리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자 주머닛돈을 털어 케냐에서는 나름 비싼 햄버거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것을 발견했다. 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쓰고 하얀 콧수염을 단 흑인 산타할아버지였다. 우리는 아주 반가워서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가 났다. 산타할아버지는 덩달아 신이 나서 들고 있던 사탕 바구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씩 쥐여 주셨다. 어느 것 하나 기념할 것 없던 아프리카의 크리스마스 중에 한 가지 기념할 거리가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에겐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맥주 한 병씩 사서 집으로 돌아와 한잔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폭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자는 와중에도 '아, 그래도 사람들이 남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호스트 맘이 그 소리가 폭죽 소리가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하하하. 그거 총성이었어. 여기에선 폭죽 터트리는 사람 아무도 없어."

   
 

나는 그만 오싹한 소름이 돋으면서 차가운 기운이 내 몸을 확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의 후텁지근하면서도 오싹한 공포 크리스마스는 이번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상큼했던 한겨울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김신형(김해시 장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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