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물결 보는이도 덩달아 ‘덩실덩실’

의병대장 홍의장군 곽재우는 오늘도 여전히 화왕산(756m)을 지키고 있었다.
정유재란 때 현풍.의령.창녕.영산의 민.관.군을 모아 이끌고 왜적을 피해 화왕산성에서 농성을 한 때가 1597년. 당시 울산을 지나 온 왜군은 산이 험하고 성이 단단한데다 군율이 서 있는 것을 알고는, 비록 군사는 많았으나 그냥 발길을 돌려 함양으로 나아갔다.
곽재우 장군은 당시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왜군이 산지 전투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슬기롭게 대처한 덕분에 영남 일대 곡창지대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군들은 진주성을 깬 다른 왜군과 합세해 함양 황석산성으로 짓쳐 달려가 성을 함락시키고 육십령 고개를 넘어 전주성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곽재우가, 아직까지도 화왕산을 지키고 있다. 화왕산은 곽재우가 굳게 지켰던 화왕산성 덕분에 사적 64호로 지정돼 일절 개발행위가 허용되지 않으며 수렵까지 제한되고 있다. 물론, 산 중턱 아래로는 이른바 개발이란 이름 아래 갖은 산장이 다 들어서고 유원지가 만들어진데다 옛날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짙은 솔숲 아래까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포장길이 쭉쭉 뻗어올라 있었다.
하지만 밀양 만어산.고성 거류산.합천 황매산 등등 가는 산마다 꼭대기에 철탑이 박혀 있거나 산마루까지 망설임 없이 포장도로가 나 있는 현실과 비교한다면 산중턱까지 밖에 길이 안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화왕산은 뭐니뭐니 해도 억새로 이름나있다. 가을 억새, 봄 철쭉.진달래가 화왕산의 고유상표인 셈이다. 물론 10월 가을이 한창 물오르고 있을 때 흰색에 가까운 수수머리를 날리는 억새가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11월과 12월 초 시린 바람 끝에 물이 말라 풍성한 느낌은 가셨지만 여전히 누렇게 빛나며 흔들리는 억새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남쪽 배바우와 북쪽 산꼭대기, 그 너머 동쪽 성문에 이르기까지 한 눈에 다 넣지도 못할, 웬만한 운동장보다 더 엄청난 넓이를 가득 메운 억새들이 햇빛을 되쏘거나 바람에 몸을 맡겨 물결을 이루는 것이다.
게다가 곧이어 다가오는 겨울 산행의 맛을 아는 이들도 화왕산을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수북한 억새들이 여전히 기를 꺾지 않고 있는데 눈은 내려서 그 위를 덮는다. 높은 산 위라 쉬 녹지도 않지만 낮이면 녹았다가 밤에 다시 얼어붙어 유리가 된다. 오가는 등산객들은 억새가 뒤집어쓴 눈과 얼음의 아름다움만 새기지, 억새의 고달픔은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화왕산에서 맛보는 또다른 즐거움은 배바우나 산마루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는 호쾌함에도 있다. 산아래 읍내 시가지는 물론 멀리 창녕군을 통째로 감싸고 도는 낙동강 물줄기와 1억4000만년 된 자연늪지인 소벌(우포)도 한 눈에 들어온다. 또 저쪽 맞은 편 동문의 새로 쌓은 자취가 나지 않는 옛날 성벽도 카메라에 담을 만하고 치솟은 커다란 바위 틈새로 소나무가 어울려 자라나는 양쪽 능선의 아름다움도 여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마지막, 이른바 환장고개도 아마 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화왕산성 서문 들머리에 있는 가파른 비탈길을 일러 환장고개라 하는데 웬만한 사람들은 진짜 환장할만큼 힘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고비를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눈앞에 평원이 펼쳐지는데, 화왕산을 한번이라도 찾은 이라면 좀처럼 잊기 힘든 기억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동문 지나 오솔길 따라 가면 텔레비전 드라마 <상도>(최인호 원작)를 찍는 세트가 갖춰져 있다는데, 애써 올랐는데 예서 말까보냐 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텅빈 세트장을 찾는 것도 봐둘만한 구경거리다.


▶가볼만한 곳

창녕에는 경주의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 돌부처가 둘씩이나 있다.
하나는 화왕산 뒤쪽 관룡사 왼편 우뚝 솟은 바위 끝 용선대의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이고 다른 하나는 창녕읍에서 오르는 화왕산 들머리에 있는 송현동 석불좌상(보물 75호)이다.
관룡사 대웅전 왼쪽으로 30분 가량 올라가면 나오는 용선대 부처님은 석굴암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동짓날 해가 떠오르는 정동(正東)으로 15도 각도로 어긋나게 앉아 있는데다 조각기법도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더구나 앞뒤가 탁 트인 바위여서 이를 데 없이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금 오르는 길은 관룡사와 반대 방향이다 보니, 발품 팔아 산마루에서 동문을 지나 가로질러 내려가지 않는 이상 이번에 만나보기는 틀린 노릇이다.
대신 창녕읍 송현동 석불좌상이나 한 번 뵙고 가면 되겠다. 송현동 부처님은 들머리 한창 공사중인 절집 뒤쪽 구석 전각에 박혀 있다. 내려오는 길에 ‘석정가든’ 지나자마자 나오는 샛길로 접어들어 개천을 질러가도 된다.
옛날에는 옴폭하게 파인 바위 틈새에 자리를 깔고 있었는데 언제 전각으로 이사했는지는 알 수 없으되 부처님을 마주할 때는 반드시 서서 보아야 한다.
부처를 새긴 화강암이 뒤로 20도쯤 젖혀진 자세여서 앉아 보면 얼굴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왜 젖혀놓았을까. 원래 부처님이 놓인 자리가 전각 안 높다란 데가 아니라, 길가나 산속의 사람 눈길보다 아래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높다랗게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이 살짝 내려다보는 자세인 것처럼, 바닥에 앉은 돌부처는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몸통을 조금 젖혀야 맞지 않겠는가.
위쪽 가운데가 불룩 솟아오른 화강암에다 새겼기 때문에 부처님 위엄을 내보이는 광배(光背)는 따로 새기지 않아 오히려 자연스럽다.


▶찾아가는 길

창녕 화왕산은 마산.창원에서 찾아가기 쉬운 데 자리잡고 있다. 아주 잘 알려진 산이어서 따로 찾아가는 길을 소개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기도 하다.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빠져 대구로 가는 구마고속도로로 옮겨타면 끝이다. 남지.영산을 지나 쭉 가다가 창녕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읍내로 접어드는 것이다. 길 따라 화왕산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는데 창녕시외버스터미널 있는 쪽으로 우회전해 조금 가다가 다시 좌회전해 올라가면 화왕산 들머리가 나온다.
하지만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진주에서는 버스가 자주 없으니까 5분 간격으로 있는 마산행 버스를 타고 와서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버스로 갈아타면 되겠다.
마산에서 창녕까지는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줄지어 있다. 40분이면 가 닿는데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 넘어서까지 차가 다닌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화왕산 들머리까지 가는 ‘읍내’버스가 발발이 있다.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데 걸어가면 넉넉잡아 30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창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슬금슬금 걸어서 산자락까지 가 닿기를 즐겨한다. 곳곳에 문화재와 유물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농협 뒤쪽으로 가면 술정리 서3층석탑이 나오고 시장통으로 올라가면 조금 못 미쳐 국보 34호인 술정리 동3층석탑이 솟아 있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과 맞먹는 조형미와 균형미를 자랑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여기서 다시 만옥정으로 향한다. 만옥정에는 시장통에서 옮겨놓은 객사가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퇴천에서 옮겨다 놓은 삼층석탑과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를 지나면 국보 33호인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전각 속에 버티고 서 있다. 신라가 창녕에 있던 가야 세력을 지배 아래 넣은 뒤 백관을 거느리고 위엄을 내보였다는, 신라인에게는 자랑스러운 상징이지만 가야사람에게는 치욕스러운 비석이다.
조금만 더 오르면 창녕여자종합고등학교, 여기서부터 등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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