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태생이 거친데다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다른 음악장르보다 유달리 개성 강한 연주자들이 많다. 팝처럼 겉멋 부리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라, “내 음악은 위대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이가 많다. 하지만 그같은 착각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울림을 남긴다.

초기 명인으로 불리는 시드니 베쉐(Sidney Bechet)는-미국인이지만 크레올이라 성이 불어식이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떨림을 지닌 연주자다. 대표작인 <Indian Summer>를 처음 들었을 때다. 소프라노 색소폰이란 악기가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소프라노 색소폰이라면 흔히 말랑말랑한 케니 지(Kenny G)가 생각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질감에서, 리듬에서 완벽하게 다르다.

시드니 베쉐.

루이 암스트롱은 ‘한 아름의 황금빛 벌꿀’이란 표현을 썼다. 베쉐의 연주가 그만큼 찬란했다는 뜻이다. 베쉐 자신 또한 ‘강렬하고도 거침없이 굽이치면서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이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쉽게 와 닿는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 그래서 그런지 태도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공연전후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의자에 기대 왕인 양 거들먹거렸다. 요즘 말로 하면 ‘기본이 안 된 인간’이다. 당연히 음악계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공연이나 영화처럼 조직화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에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좀체 허락되지 않는다. 적어도 로큰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재즈는 제각기 영역을 분담해 연주하는 민주적인 예술이다. 즉 아무리 훌륭한 스케이팅 선수라도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는데, 피겨 스케이팅에서처럼 개인플레이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베쉐는 죽을 때까지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넘쳐흐르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지금 그가 지녔던 인간성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남긴 음악에 눈물을 흘리며 빠져드는 사람은 있을 지언정.

자코 패스토리우스.

요절한 천재 베이시스트 자코 패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는 종종 자신을 지미 헨드릭스에 비견하곤 했다. 지미 헨드릭스가 일렉트릭 기타 분야에서 이룩한 ‘혁명적 성취’를 자신도 달성했다는 게 그 이유다. 끝 간 데 없는 이런 자부심은 동료 음악인들을 숱하게 괴롭혔다. 게다가 그는 알콜중독자였다. 수시로 행패까지 부리니, 조 자비눌(Joe Zawinul 퓨전재즈밴드 웨더 리포트 리더)은 끝내 그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1984년 초입이다. 부산 광복동에 있던 카페 ‘멜팅 포트’에서 조니 미첼의 라이브공연 ‘빛과 그림자(Shadows & Light)’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레이저 디스크로 본 화면이었는데, 당시로선 최상의 화질이었다. 그런데 백밴드가 재즈뮤지션들이었다. 기타에 팻 메시니, 베이스에 자코 패스토리우스, 키보드에 라일 메이스, 드럼에 돈 알리아스 등등. 어라! 조니 미첼은 포크 아티스트인데? 유명세를 업고 폼 내려고 재즈연주자들을 쓴 것 아닌가?

공연이 시작되자 그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재즈 필링을 띤 보컬을 폭발적인 베이스가 종횡무진 넘나드는 걸 보곤 시쳇말로 뻑 가고 말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연주는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특히 <In France They kiss on main street>에서 자코가 들려준 연주는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서인가! 세월이 흘렀어도 재즈연주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경의는 여전하다. 새로운 시대를 연 개척자에게 바치는 헌사 또한 계속 두께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지녔던 인간적인 약점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라는 이해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역시 살아남은 건 예술이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일본인은 누구일까? 현직 수상? 연예인들? 내가 보기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본업은 소설가이지만 ‘재즈 내공’이 장난이 아니어서, 재즈평론가로 일컬어도 손색없는 사람이다. 그는 일전에 펴낸 재즈에세이집에서 이런 말을 했다.

“60~70년대 신주쿠 언저리 재즈카페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오네트 콜맨을 들었다. 당시 오네트 콜맨을 듣는 행위는 오에 겐자부로를 읽거나 파졸리니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특수한 감촉이었다.”

멋진 이야기다. 오네트 콜맨과 겐자부로, 파졸리니를 연결하다니! 무라카미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말을 들으면 “이 친구 현학(衒學)이 너무 심한 건 아닌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프리재즈 연주자인 콜맨의 음악은 사실 일반인들이 듣기 힘들다. 프리재즈가 지닌 난해함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인물이라고는 하나, 겐자부로 또한 만만하게 읽히는 사람이 아니다. 파졸리니는 어떤가?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빼면 그를 설명하기 힘들다.

이 셋을 특수한 감촉으로 느꼈다니? 당시 젊은이들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는 무라카미가 느낀 감정이었으리라! 자신의 지적 허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물론 여기에는 연원이 있다. 앞서 말한 베쉐나 자코처럼 재즈는 듣는 이 조차 명인이 지닌 오만을 닮게 만드는 ‘독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재즈에세이와 함께 그가 내놓은 재즈 모음곡집은 지금 들어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빌리 할리데이의 <When you're smilin'>으로 시작되는 이 모음집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Walkin'>라이브로 끝난다. 한 시대와 한 장르를 대표하는 곡들을 절묘하게 배치한 그 솜씨는 가히 장인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경지다. 글을 쓰는 이라 현학에 몸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예술이 더 길다는 걸 절감한 걸까?

물론 재즈에 기인 시리즈만 있는 건 아니다. 오만과 현학이 주조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20대 후반에 사망한 코넷 주자 빅스 바이더벡은 마지막 몇 주를 동료 연주인의 아파트에서 보낸다. 이곳에서 모든 이들에게 빅스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독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아침 서너 시 경에 일어나 코넷을 연주하는 버릇이 있었다. 재즈 뮤지션이 이웃의 원성을 사지 않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웃들이 동료 연주인에게 부탁했다. “제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가 연주를 멈추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기인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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