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스케일·신선한 발상 해갈 '숙제'…순수 창작작품 부족해 아쉬움 더해

제30회 경남연극제는 거제 극단 예도의 화려한 부활로 막을 내렸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서른 번째 경남연극제는 극단 예도가 <선녀씨 이야기>(작·연출 이삼우)로 대상을 차지했다. 최근 6년 동안 열린 경남연극제에서 4번째 대상이다. 이와 함께 연출상, 연기대상을 휩쓸며 명실상부 '경남 대표 극단'의 위상을 단단히 했다. 하지만, 이번 연극제는 극단에 따라 다소 큰 수준차를 보인 작품이 눈에 띄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선녀씨 이야기>처럼 애초 전국연극제를 목표로 '대극장용 창작작품'으로 기획된 작품이 한두 작품에 불과했을 정도로 대극장용 작품이 부족했던 것 역시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경남연극제의 꽃은 단연 경연작들 간 경쟁이라고 했을 때, 올해 연극제는 다소 김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마치 지난해 사천 극단 장자번덕의 전국연극제 대상 위업이 이상하게 경남 극단들에게 "올해는 쉬어 가자"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 느낌이었다.

◇연극제 리뷰

제30회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작인 <선녀씨 이야기>를 제외하고 단연 돋보였던 작품은 금상작 진해 극단 고도 <숨바꼭질>이었다. <숨바꼭질>은 작은 포구 마을이 개발 바람에 휩쓸려 쉽게 고향과 사람을 등지려는 이들과 그 마을에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살던 일본 군 성노예 피해 노파 간 대립을 통해 자본주의·개발주의 사회가 일제강점기, 일제가 보여 준 비인간성과 가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이러한 내용이 가진 무거움을 덜어내고자 웃음 포인트 등 극적 장치를 넣은 것이 눈에 띄었지만, 너무도 강한 연출적 진중함과 배우들 연기력 부족이 이를 잘 발현해내지 못했다.

사천 장자번덕의 〈황구도〉

역시 금상작인 <황구도>는 사천 극단 장자번덕 대표 레퍼토리 작품. 세미뮤지컬로 이번 경남연극제를 위해 무대를 새롭게 제작해 변화를 주었으며, 공연 음악을 밴드가 라이브 연주해 극적 분위기를 끌어냈다.

새로 합류한 신인배우들이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선보여, 장자번덕이 가진 스파르타식 창작 시스템의 효과를 입증하는 듯 했다.

반면,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사용하고도 대사 전달이 안 되는 등 배우들 발성이 부족한 점이 두고두고 보완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료 연극인들에게서 배우들 발성에 문제가 있다보니 이훈호 연출이 너무 과도하게 와이어리스 마이크에 집착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은상을 받은 <개똥밭>(거창 입체)은 '김광탁'이라는 인기 극작가의 작품에다, 가장 화려한 무대 세트를 제작하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단점을 보였다. 이와 함께 단순발랄한 코미디 작품에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하려했다. 또 이를 관객에게 주입하려는 듯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발성은 관객들로부터 "중간 이후부터 보는 내내 불편했다"는 평이 나오게 했다.

아쉬운 점은 전통 극단들의 부진이었다. 통영 극단 벅수골 <버려진 쌀통>이 은상으로 체면치레를 했지만, 극단 마산의 <황소, 지붕위로 올리기>가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진주 극단 현장 역시 매년 높은 작품성으로 기대를 갖게했지만, 연극제에 선 <백제고시원>은 각색과 연출, 동선과 움직임, 신인배우들 발성 등에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초연 때 선보인 내레이션을 빼고, 추상화했지만 관객 이해도가 떨어졌다. 배우들의 걸출한 연기력만으로 극을 이끌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현실에 비춰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등으로 신입 단원은 늘었지만, 사단법인 전환 이후 극단 수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창작의욕' 저하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 목적 의식 결여

경연제인 경남연극제는 전국연극제에서 경쟁력을 갖춘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이다. 특히, 전국연극제에서는 지난해 대상작 <바리, 서천 꽃 그늘아래>와 같은 '대극장용 창작작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 경남연극제는 출품된 13개 작품 가운데 <선녀씨 이야기>와 <숨바꼭질>, <백제고시원> 말고는 소극장용 레퍼토리 작품으로 관객을 맞았다. 이른바 경남연극제의 꽃인 경연작들 간 경쟁이 실종된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각 극단들이 경남연극제가 추구하는 '목적'을 '의식'적으로 따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주 현장의 〈백제고시원〉

이에 대해 김도훈 심사위원(연출가)은 "전국연극제는 창작극을 중시한다. 경남연극제에 나오는 작품들도 전국연극제에 나가 입상을 할 수 있는 창작극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면서 "경남의 각 극단들이 모두 전국연극제 입상이라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경연에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내년 경남연극제에는 4개 팀 이상이 '대극장용 창작작품' 출품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다.

◇ 인프라 비해 흥행은 대체적 성공

경남연극제 집행위원회는 이번 연극제에 13일 동안 2300여 명이 찾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경남연극제가 열린 함안은 함안연극협회가 지난해 막 지부 인준을 받는 등 연극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 하지만, 매 공연 100명 이상이 관람했으며 인근 창원 내서 지역민들도 연극제를 즐기고자 함안을 찾았다. 여기에는 '관객들이 뽑은 인기작품상' 부활, '경품추첨제' 등 마케팅이 '고정 관객 확보'에 도움이 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바로 경품 추첨을 하다보니 관객들이 연극이 주는 여운을 느낄 시간을 빼앗아버린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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