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심판' 호재지만, 역풍 우려도…지역엔 조금 어긋난 이슈

19대 총선 최대 이슈로 떠오른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경남지역 선거 판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되고 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청와대 개입' 폭로와 KBS 새 노조의 사찰문건 공개로 불붙은 논란은 청와대·새누리당의 반격과 야권의 재반격 등 걷잡을 수 없는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다. 현재는 지난 참여정부 때 유사 사례 논란과 인기 연예인 불법사찰 의혹, 국정원·기무사 개입, 특검 공방 등으로 '착한(합법) 사찰 대 나쁜(불법) 사찰' 대립구도가 형성된 양상이다.

일단 이 사안이 표심을 흔들 것이라는 데는 언론·전문가 모두 이론을 달지 않고 있다. 전국의 관심 지역구 10곳 유권자 중 65.4%가 민간인 사찰 문제가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는 <국민일보>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경남에서 관심을 모으는 지역은 창원·김해·거제시다. 조사 결과 20~40대 젊은층과 야당 지지층에서 사안의 영향력에 공감하는 답변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침 여야가 오차범위 안팎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창원·김해·거제는 40대 이하 비율이 70%를 넘거나 육박하는 지역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젊은층 비율이 월등히 높은 창원 을(74%, 강기윤 대 손석형·김창근)과 김해 을(68.5%, 김태호 대 김경수) 선거구가 주목된다.

민간인 불법사찰관련 MB-새누리 심판국민위원회(위원장 박영선 의원)가 지난 1일 오후 국회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가진 민간인 불발사찰관련 기자회견에 많는 불법사찰 문건들이 놓여 있다./뉴시스

김경수 후보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명희진(민주통합당) 경남도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반성과 사과, 조사의지는커녕 지난 정권에 책임을 떠넘기며 '물타기'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아 보인다. 언론을 자주 접하는 젊은층, 회사원을 중심으로 짜증스러워하는 정서가 많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국민일보>가 경남지역 중 유일하게 조사한 사천·남해·하동 등 농어촌 지역은 상대적으로 영향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조사에서 이 지역은 56%만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답해 평균(65.4%)를 크게 밑돌았다. 사천·남해·하동은 50대 이상 비율이 53.8%에 달하는 곳이다.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 역시 "다른 지역보다는 창원·김해·거제 야권 후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어차피 여당 지지층은 고정이라 봐야 한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 문제는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공감하는 야권과 젊은층, 노동자층을 투표장으로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파괴력이다. 야권에 유리한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이지만, 얼마 만큼 결정적일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측은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시민들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할 것"이라고 전당적으로 공언하지만, "야권의 기대보다 제한적일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앞서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경남 등 지방보다는 역시 서울·수도권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사실 민간인 사찰 문제는 특별한 지역 현안이 없는 서울·수도권 중심의 이슈"라며 "경남은 또 다른 지역현안이 많고 주민 정서도 다르다. 4대강 사업 같은 것이라면 몰라도, 민간인 사찰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은 민간인 사찰 문제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선거 때 이명박 대통령 '서울 내곡동 사저' 건 같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기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당시엔 기존 야권과 차별화된 박원순(현 서울시장)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있었고, 대통령 사저라는 사안 자체가 국민 개개인에게 박탈감과 분노를 안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는 당시와 여러 측면에서 좀 다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정치학)는 "최근 선거에서 분명히 확인된 사실은 'MB 심판론자'가 곧 야당 지지자는 아니라는 것"이라면서 "많은 유권자가 야당에도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참여정부 때 문제까지 불거진 민간인 사찰 건은 '비야권 MB심판론자' 정도는 움직일 수 있어도 '반야권 MB심판론자'한테까지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나아가 오히려 야권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 며칠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대응이 왜 잠잠한지 잘 봐야 할 것이다. 민생 문제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며 “특정 정당·이념에 기대지 않는 유권자의 상당수는 특정세력의 일방적 독주에 반감이 크다. 대통령 하야 요구 등 야권이 지나치게 세게 나가면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약 30%에 달하는 중간지대 유권자 중 절반 정도는 선거 2~3일 전에야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던 여권이 참패를 한 것은, 자신감에 찬 여권이 선거전략을 급격하게 공세적으로 전환했던 탓이 크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선거 막판 여권의 일방적 승리를 막으려는 견제·균형 심리가 강하게 발동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민간인 사찰 문제가 여야 어느 한쪽에 '확실히' 유리하다고 전망하는 것은 매우 불완전하고 위험한 측면이 있다. 더구나 경남은 물론이고 서울·수도권 등 많은 지역에서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 선거는 1주일이나 남았고, 표심을 움직일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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