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자극' 비평 없어 미술계 침체…지역 작가·관람객·평론가 소통창구 필요

"경남에 미술평론가나 비평가가 없어요. 작가들은 매년 작품을 내놓지만, 어느 누구도 쓴소리를 하지 않죠. 작가는 자존심이 세어 아무나 내뱉는 쓴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제대로 된 사람이 작품에 대해 뭐라고 하면 모를까…. 그래도 누군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몇 달 전 도내 한 작가는 기자에게 이런 볼멘소리를 했다. 사실 미술 평론의 부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남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경남은 평론도 없고 평론가도 없어 조용할 뿐이다.

오광수 미술평론가에 따르면 평론가협회란 조직이 등장한 것은 1956년이다. 58년에는 또 다른 단체 '한국미술평론인협회'가 만들어졌고 63년엔 '한국미술평론인회'가, 65년엔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은 총 65명이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회원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협회 기관지 <미술평단> 공모에 당선되는 것, 두 번째는 협회 회원이 추천하는 것이다. 소위말해 자타공인 평론가가 되기 위해선 '글쓰기'가 돼야 하고 미학이나 미술사를 전공해야 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경남에는 미학이나 미술사를 전공할 수 있는 학과가 없었다.(지난 2011년 3월 창원대학교 대학원(석사) 미술사학 전공 개설) 지역이 평론가를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증거다.

"학부는 인문학을 전공했는데, 미학이나 미술사를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을 알아봤어요. 경남에는 없더군요. 그래서 대학원을 부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졸업하면 일도 그곳에서 구하려고 합니다"고 ㄱ씨는 말했다. ㄱ씨 말고도 많은 이들이 경남을 떠나 부산·대구·서울 등지로 갔다.

"경남은 작가들의 활동에 비해 평론이 빈약해요. 그래서 미술사학을 개설했죠. 경남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술비평계에는 미덕의 정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좋은 것'(혹은 좋을 수도 있는 것)만 샅샅이 뒤져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고 나머지는 가급적 끄집어내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 미덕인지 악덕인지 모르는 '절대 정서'에 꼼짝없이 지배되고 있죠. 창의적인 비평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라고 윤익영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는 말했다.

그는 올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2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윤 교수는 한국 미술계가 침체하는 이유로 '비평부재'를 꼽았다. 긍정적 비평은 있으나 창의성을 자극하는 부정적 비평은 없다는 것이다.

미술비평은 작품해설이나 안내문, 혹은 작품을 장식하는 액자처럼 쓰이기도 한다. 쓴소리는 없다. 긍정적 비평이다. 하지만 마음에 확 와 닿지 않는다. 기자가 봐도 미술평론가가 쓴 글은 어렵다. 똑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모르겠다.

기사도 마찬가지지만 미술평론도 쉽게 써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려워요. 미술평론이 오히려 작가와 미술작품을 멀게 하는 것 같아요"라고 관람객들은 토로한다.

"비평가의 안목과 지적 소양이 부족한 탓도 있고, 평론의 대상이 되는 작품 자체의 난해성도 문제죠. 설상가상으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비평의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여러 일간지에 비평문을 실어 대중과 소통할 창구가 있었지만 그 작은 지면마저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비평은 점점 전문가들끼리만 하게 되고 지나치게 현학적인 담론을 논하거나 개인 감상문에 머무르는 일이 많아졌다.

평론의 울타리는 없다. 작가와 관람객, 평론가와 작가, 평론가와 평론가 등의 소통이 중요하다. 미술계 1%를 위한 전문적인 평론도 이뤄져야 하고 나머지 99%를 위한 쉽고 재밌는 평론도 있어야 한다. 조용하면 재미없다.

쓴소리도 좋고 달콤한 소리도 좋다. 경남에 소위 '글쓰기'가 된다거나, 미학이나 미술사를 전공한 이들이여, 작가들을 향해 자판을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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