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가들에게 길을 만들어주었던 전위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을까? 보들레르가 냉소적으로 불렀던 전위는 예술적이라기보다 급진주의적인 작가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조롱적인 질책은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인 예술을 주장하는 예술운동으로 진화하면서 이른바 세기 말 가장 진보된 예술적 감각과 이해를 가지고 최신의 조류를 만들어 내는 예술 사조가 되었다.

전위(아방가르드:avant-garde)란 본시 군대용어로, 주력부대가 안전하게 진군할 수 있도록 앞서 가면서 진격로를 확보하는 전위부대(vanguard)를 뜻하는 불어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였다. 한편에서는 러시아혁명 전야 계급투쟁의 선봉에 섰던 정당과 그 당원을 지칭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엽에 일어났던 전위는 개념운동으로 러시아의 화가 칸딘스키가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정신의 3각형'이라는 비유를 들어 시대의 정신생활이 형성하는 3각형 속의 저변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정점에는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런데 이 3각형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앞으로, 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며, 오늘 고독한 정점에 있는 예술가의 예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내일은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모레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러나 그것뿐 문화전환은 질풍노도 같았고, 끝을 알 수 없는 현대미술의 미로에서 전위들은 모습을 감추었다. 전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주력부대가 안전하게 진군할 수 있도록 진격로는 확보되었을까? 예술사의 진행 속에서 현대예술은 여전히 전위적이고, '전위'라는 말은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참신함을 지니고 있다.

시대의 통념과 절연하는 '전위적'이라는 이름의 현대미술은 흔히 이해하듯 창조라기보다는 불안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태어난,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예술적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위의 개념은 어느 한 예술의 미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인 개념이 되고 있고, 사회학적 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전시대의 예술이 그 힘을 잃고 있는 이 시대에 예술가로서의 운명은 '새로움의 추구'라는 말로 강조되고, '실험'이라는 말로 변호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실험은 그것이 불확정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미한 것이기도 해서 그만큼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기도 하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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