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 여자, USD무용단 이지혜

여자가 스르르 움직였다. 볕살 좋은 날 초록뱀이 기어나오 듯. 몸짓이고 춤이랬다. 두 남자는 기타를 연주하고, 한 남자는 잼베를 두드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가수는 긴 구음을 이어갔다. USD무용단(Unknown Strange Dance company).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한 무용단’?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USD무용단은 진주는 물론 전국에서 게릴라공연을 하고 있어 알 사람은 다 안다. 모를 사람은 앞으로도 쭈욱 모를 것이다.

‘미친 년 널뛰는’ 걸 봤다. 솔직히 단박에 ‘뻑 갔다’.

2012년 입춘이 오는 늦은 밤, 한 남자가 20여 분 넘게 구음을 이어나갔다. 그 음들은 여자의 움직임으로 눈앞에 그려졌다. 사전 연출을 하지 않은 즉흥공연, 이름하여 ‘바로’공연이랬다.

공연장? 무대랄 것도 없었다. 진주시 호탄동 커피숍 부에나비스타. 넓지도 않은 그 공간에서 사방으로 밀어붙인 탁자와 의자에 관객들이 앉아있고 두 여자는 그 탁자 사이를, 관객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길거리 밴드 배건네와 USD 잼 공연은 달콤쌉쓰레한 자유가 공간 곳곳에 거칠게 뿌려진, 난장이고 ‘생쇼’였다.

그만, 돌바닥에 첫 발을 딛는 여자의 아득한 눈빛에 꽂히고 말았다. 이입되듯 그 여자의 마음이 만져졌다. 시리고 차가운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예쁜 몸짓이 아니었다. 맨 발로 굳건히 버티고 무언가를 애절히 찾는, 거칠디 거친 그리움. 그러다가 한순간 두 발바닥에서 엉덩이를 한껏 벌린 뒤태라니, 관객의 허를 찔렀다. 어이쿠, 거기다 엉기적거리는 걸음이라니, 춤꾼이 저런 흉측한 몸짓을, 싶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춤이었다. 근데 그만 빨려들었다. 맘에 들었다. 솔직히 여자의 춤이 뭘 말하는 진 지금도 잘 모른다. 단지 여자의 맨 다리 맨 발을 보는 순간, 여자가 몹시 궁금해졌을 뿐.

/사진제공 배길효(사진작가)

공연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여자. 나이가 가늠이 안 되었다. 작은 얼굴과 길고 강한 뼈대의 체구 때문이었다. 이지혜. 우리 나이로 이제 마흔. 애 엄마랬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자유로운 무용수 이지혜에 대한 작은 호기심 충족이다.

게릴라공연은 ‘친숙한 춤’으로 가는 통로

- 당신이 댄서인 건 알겠고, 유명하냐?

“으하하-(그녀는 목을 뒤로 젖히고 입을 한껏 벌리며 웃었다. 지켜보니 버릇이었다). 그걸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요. 관심 있거나 비슷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 정도 알고 있지, 아직 대중적으로 유명한 건 아니다. 원래 이 분야가 불모지 아닌가. 나는 나를 몸으로 표현하는 게 행복한 사람일 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몸으로 표현하기를 바라고 있다.”

- 최근 몇 년 동안 공연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어떤 활동이냐?

“그저 기회가 되면 출 뿐이다. 무용단에 공연 기획자나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계획을 세워, 하는 건 별로 없다. 2004년 진주에 떨어졌을 때는 무대가 없었다. 다행히 사천에 있는 극단 장자번덕과 같이 할 수 있어 배우기도 하고 같이 공연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지역 문화 분위기가 참 좋아졌다. 그저 춤만 추는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연극, 음악하는 사람들이 ‘같이 해보자’고 찾아왔다. 그들 덕분에 몇 해 전부터는 기획 공연 3~4번 정도, 게릴라공연이나 즉흥공연은 합해서 3~40회 정도 되는 것 같다. 2011년에는 HI-Seoul 페스티발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고, 지역에서 연극배우, 소리꾼, 연주가 등과 결합해서 정기공연 ‘달빛’ 을 했다.”

/사진제공 배길효(사진작가)

- 게릴라공연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

“게릴라 공연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가서 아주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이다. 그날의 날씨, 장소, 관객, 음악, 무용수의 감정상태 등 종합적인 조건이 그날의 춤을 완성한다. 몇 년 동안 봄부터 가을까지 격주로 진주 남강가 강남동 시민공원에서 공연을 해왔는데, 시민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뭐꼬?’하던 시선이 나중에는 ‘아~!’ 정도는 되는 것 같더라. 한번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을 데리러 갔는데, 거기서 웬 할머니 한 분을 마주쳤다. 근데 그 할머니 입에서 “아이구, 현대무용하는 그 양반이구만.”라는 말이 나왔다. 어때요? 이만하면 그동안 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나요?”

큰 소리로 길게 웃었다, 지혜 씨. 그 옆에 그녀가 벗어놓은 자전거 헬멧이 단단하게 웅크려있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살림집이 진주 외곽에 있을 때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시내로 이사하면서 그녀는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고 상봉동에서 시내로, 다시 강남동으로 자유롭게 다닌다고. 그녀와 자전거, 달리는 모습은 그대로 춤일 것 같았다.

“팸플릿 하나만 보고 캐나다로…”

- 왜 춤인가.

“너무 좋다, 춤이라는 게. 왜 하필 춤인가 라는 물음인데, 이유는 없다. 그냥 춤이었을 뿐. 출 때마다 피가 맑아지는 것 같다. 이건 나이기 때문에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아니다. 누구든 춤을 추면 발끝에서 머리까지 올라가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내 고향은 경남 고성이다.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는데, 고성 장날이면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장터를 구경시켜 주셨다. 그러다가 붙박이처럼 앉게 되는 곳이 늘 약장수 앞이었다. 당시 약장수는 마술이니, 춤이니를 꺼내놓고 사람들을 잡아두었다. 그때 무희가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데 내가 본 세상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5~6살 계집아이의 눈에는 동화 속에 빠져나온 신기한 나라의 요정 같았다. 내가 가지 못한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다 나보다 13살이나 많은 큰언니가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원래 움직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데다가, 춤추는 언니가 신기하고 부러웠던 것 같다. 언니는 한국무용계에서는 제법 실력 있는 무용가였다. 집안에서는 나까지 춤을 추는 걸 탐탁치 않아했지만 언니가 지지해주었다.”

/사진제공 배길효(사진작가)

- 춤은 정식으로 배운 것인가.

“대학 때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현대무용, 대학이라는 시스템이 맞지 않았다. 나를 묶기 싫었다. 갈구였다. 개인적으로는 집안 사정이 가장 안 좋을 때였다. 팸플릿 하나만 보고, 지금 무용단을 같이 꾸려가고 있는 김혜정 씨와 훌쩍 캐나다로 갔다. 1998년이었다. 토론토 시내를 몇 주 동안 지도만 보고 헤맸다.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걸 포커스에 맞춰 찾아가는 것이라 두렵거나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어느 교회 안에 들어갔다가 춤 공연을 봤다. 벼락을 맞은 듯 했다. ‘이것이다!’라는.

처음부터 유학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한국과는 다른 교육환경과 춤 분위기에 끌려 대학을 다시 들어갔다. 유학생의 알바가 합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몰래몰래 하면서 브로커들에게 돈을 떼이기도 하고, 굶기도 수차례였다. 하지만 수업료를 감당해야 하니까 어떤 알바든 해야 했다. 몇 주 알바를 해야 1주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힘들고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4년을 다니고, 졸업 후 2년 동안은 프로들과 같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땐 정말 좋았다.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춤만 출 수 있어서 행복했다. 비로소 사는 것 같았다.”

- 근데 왜 한국에 들어왔나. 캐나다서 춤추는 게 더 좋았을 텐데...

“사랑 찾아서(으하하하). 2002년 그때쯤, 나도 캐나다에서 맘 놓고 춤을 출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생활비 걱정하지 않고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었다. 마침, 큰언니가 공연섭외를 해왔다. 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때 공연 준비 중에 지금의 남편인 배길효 씨를 만났다. 길효 씨는 공연 포스터 사진을 찍는 스텝이었다. 길효 씨의 사진은 암울했는데, 그 속에서 빛을 보았던 것 같다. 무조건 좋았다. 그때서야 사랑이라는 게 궁금해졌다. 공연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가 인터넷 채팅으로 연애를 했다. 하지만 늘 아쉽고 한계적이었다. 한번은 캐나다에서 공연을 보러 갔는데, 70 넘은 무용수의 춤이 너무 아름다웠다. 감탄을 하며 봤는데, 뒷모습이 외로웠다. 채팅만으로 환상을 가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은 한국과 캐나다를 왔다갔다 했다. 눈 뜨면 한국이고 다시 2주 뒤에 눈 뜨면 캐나다고, 그런 식이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것 같다. 나중엔 왔다갔다 할 돈이 없었다. 결국은 2004년, 모든 걸 정리해서 들어왔고 진주에서 자리잡게 됐다.”

지혜 씨, 그렇게 사랑하고 지금은 행복한가? 혀끝에서 감도는 말을 결국은 삼켰다.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물음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그 여정에 있을 뿐이었다.

“나의 춤은 몸을 읽어내고 여행하는 진행형”

- 춤으로 무얼 얘기하나.

/사진제공 배길효(사진작가)

“춤으로 몸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다. 몸에 붙어있는 것들, 몸에 붙이고 싶은 것들 모두 탐험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긴 여행이다. 어디를 갈 지 모른다. 춤을 추고 있다만, 나는 단지 느낄 뿐이다. 매년 하는 정기공연작 ‘달빛’은 USD현대무용단이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여행’이라는 테마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삶은 또 하나의 여행이며, 그 여행의 고단한 여정 속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들을 되짚어보자’ 는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달빛’은 삶의 따스한 빛깔인 희망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과 육아, 최근 몇 년 동안 생소한 체험을 했다. 딸 루나(4)를 키우고, 남들처럼 일상을 흉내 내며 사는 건 힘들지만 춤을 추는 무용수로서 감정 표현이 훨씬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타인의 몸을 읽어내는 훈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관찰하게 된다. 희노애락에 따른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 말없음의 여백까지도 읽어내려고 한다. 최근에는 노인들의 몸을 읽어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 기억할 만한 공연이 있나.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다른 지역에 있는 장애인시설에 공연을 간 적이 있다. 게릴라 공연을 본 친구들이 기금을 받아준 것이었는데, 마침 독립무용단의 색깔을 최대한 가지면서 어떻게 살아날 것인가를 고민할 때였다. 좀 더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고도 싶었다. 공연하는 날, 시설에서 마련한 강당으로 갔더니 무대와 관람석의 경계를 두고 맨 앞에 교사나 직원들이 앉아있었다. “어떤 행동을 할 지 몰라 그런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자유롭지 못한 그 분위기가 조금은 생소하고 어색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동작을 이어나갈 때마다 원아들이 같이 두 팔을 움직이고, 괴성을 질러댔다. 순간 3초 정도는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그 후는 한 마디로 감동이었다. 괴성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구음으로 들려왔고, 그들의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오히려 내가 맞춰나갔던 것 같다. 30분 내내 무용수와 관객 따로 없이 함께 공연을 끝냈다. 스스로가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그 공연의 여운을 기억하고 있다. 첫 공연 후 한 번 더 하고, 아쉽게도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거기 시설 측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앞으로 계획은.

“지난해 하이-서울 페스티벌에서 같이 즉흥공연 했던 호주공연단에서 디렉터가 초대해, 6월 경 갈 예정이다. 그리고 ‘달빛’ 정기공연은 올해도 이어질 거다. 길거리 게릴라공연은 지금은 날이 추워 중단됐지만, 봄꽃이 필 때쯤이면 계속 해나갈 것이다. 진주 남강 가, 가좌동 경상대학 앞을 오가며 앞으로도 계속 2주일에 한 번 씩 공연이 이뤄질 거다. 물론 이때 공연은 안무, 스토리가 없다. 달리 정해진 것이란 없다. 어떤 춤이 완성될 지는 예측불가능하다. 그날의 날씨와 관객들과 스텝들과, 그리고 춤꾼이 어떤 조화를 빚어내느냐에 따라 춤이 완성될 것이다. 전 우주적인 조화?(으하하하)”

몸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 그리 쑥스럽고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여자의 즉흥춤을 보고 있으면 짧은 다리에 지독히도 몸치인 나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짓’인 것 같았다. 기쁘면 웃고 화나면 소리치고 슬프면 질질 짜고, 이 기본적인 행위가 ‘짓’이고 ‘춤’이고 생활이고 예술이었다. 오랜만에 빛나는 어떤, 원형의 것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지혜, 이 여자의 곧게 세워진 등과 딴딴한 종아리의 근육, 그 질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춤, 추고 싶어졌다.

<이지혜 프로필>
USD현대무용단 안무가이자 무용수. 진주지역으로부터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음. USD 정기공연, 게릴라공연, 하이서울페스티벌, 과천한마당축제, 고양호수예술축제 공연참가. 지역연극단체 현장, 장자번덕과 작업.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인문대학 무용학과 졸업.

The school of Toronto Dance Theatre(Professional dance program)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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