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맛집] 밀양 한정식 전문점 '열두대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배우 전도연은 물었다. "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송강호는 답한다. "별 다를 게 없지요. 뭐. 그저 사람 사는 데지…." 송강호가 말한 것처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하지만 그곳이 풍기는 멋과 맛은 다르다. 밀양도 마찬가지다.

밀양 교동에 들어서면 밀성(密城) 손(孫)씨 집성촌이 있다. 이중 99칸의 가장 큰 고택이 있다. 바로 '밀양 교동 손씨 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1호)'다.

17세기 숙종 때 손성증이 처음 지은 것으로 1000평이 넘는다. 기역자로 나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몽맹헌(夢孟軒)이라는 편액과 마주한다. 큰 사랑채다.

17세기 숙종 때 손성증이 지은 '밀양 교동 손씨 고가'. 400년 전통에서 풍기는 고즈넉한 멋이 음식의 맛을 더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큰 사랑채에는 한정식 전문점 '열두대문'이 있다. "일곱 살 때까지 이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때는 문이 총 12개가 있었죠. 지난 2006년 고향에 내려와 한정식 전문점을 차렸습니다"고 손중배 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밀성 손씨 11대손이다.

'도토리 키재기' 하듯 높이 솟아오른 빌딩에 신물이 난 것일까. 한옥을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 돌담길에 에워싸인 99칸의 한옥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걸게 차려진 한정식을 맛봤다. 이른바 '종갓집 맏며느리'의 손맛이다.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해오면서 저희 집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죠. 그 중 단연 으뜸은 '문어수란채국'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맛이지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보면 문어수란채국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반한 맛입니다"고 손 사장은 말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한상 가득 차려져 나온 7첩반상. /박일호 기자

수란(水卵)은 달걀을 깨뜨려 끓는 물에 반숙으로 익힌 음식이다. 근데 '문어수란채국'은 낯설다.

한 숟가락 떠서 먹었는데 시큼한 것이 도통 뭔 맛인지 모르겠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먹으니 문어, 해삼, 쇠고기, 미나리 등이 잣 국물과 잘 어울려 오묘한 맛을 자아냈다.

첫맛은 톡 쏘듯 설레고 끝맛은 부드럽게 혀를 감싸는 것이 첫사랑 같은 느낌이다.

광목천이 크게 휘둘려 있는 상에는 '문어수란채국' 외에도 구절판, 황태보풀이, 갈비찜, 떡갈비, 황태구이 등 10가지가 훨씬 넘는 음식이 올려져있었다. '뭘 한번 맛볼까' 고민하던 찰나 "황태보풀이가 별미예요"라는 손 사장의 말에 젓가락은 어느 덧 그곳을 향해 있었다.

고소한 맛이 견과류 같기도 하고 육포같이 짭조름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게 술 생각이 절로 난다. 손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경상북도(할머니의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란다.

술잔을 뒤로하고 7첩 반상의 진면목을 이어가기로 했다.

유기에 담긴 밥 한 숟가락에 새콤달콤하면서 살결이 쫄깃한 황태구이 한 점, 농경사회에서 잔칫날 인기 음식이었던 갈비찜 한 점, 고추장에 잘도 볶아진 소고기 한 점…. 여기에 갖가지 나물들, 묵은 김치, 전, 장아찌 등의 반찬도 그 뒤를 이었다. 어느 것 하나 손이 가지 않은 음식이 없었다.

한정식 전문점 '열두대문'의 맛은 한 마디로 '오장육부가 건강해진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1대 노종부 강정희 할머니의 손맛을 대물림 했다는 손 사장의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손씨 가문의 7첩 반상은 지난 2010년 농촌진흥청이 주최한 '코리아푸드엑스포(전국 15개 종가·명가의 대표음식)'에서 호평을 받았다.

   
 

"손이 참 많이 가지만 우리 가문의 흐트러짐 없는 상차림과 정갈한 손맛이 손님들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100%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라 손 사장은 설명했다.

손씨 고가 뒤에는 1602년에 세워진 밀양 향교도 있다. 크기가 유독 커서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영남지역에서는 가장 큰 향교로 손꼽히니 꼭 둘러보길.

<메뉴 및 위치>

◇메뉴: △한정식 2만 5000원, 3만 5000원, 4만 5000원, 6만 원.

◇위치: 경남 밀양시 교동 731번지. 055-353-6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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