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한국연극의 중심에 서다

오는 23일부터 열 나흘간 연극 열전에 들어갈 경남연극제. 경남연극제는 올해 기념비적인 해를 맞았다. 바로 경남연극제 30주년을 맞은 것. 도내 각 극단 간 그리고 경남연극과 도민 사이를 엮어주는 다양한 매개가 있지만, 규모나 기간에 대비해 경남연극제만큼 그 소통 폭이 넓고 깊은 행사도 없다.

더불어 경남연극제 수상작들은 경남 연극의 질을 보여주는 척도로서 나아가 전국연극제를 통해 그 질을 전국 무대에서 다시금 검증받게 된다. 이 점을 빌려 경남연극제는 비단 도내뿐만 아니라 경남 연극과 한국 연극이 호흡하게 매개해 주기도 한다. 경남연극제야말로 지난 30년간 경남 연극과 도민 그리고 한국 연극을 '씨줄과 날줄'로 엮는 베틀의 '북' 같은 중요한 존재다.

경남연극제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경남 연극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다. 이전까지 주로 도내 극단들은 극단이 탄생한 도내 시·군을 기반으로 활동했다면 경남연극제가 이들을 한데 모아 각 지역 간 교류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남연극제는 전국연극제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지난 1977년 만들어진 '대한민국연극제'가 지나친 서울 집중성으로 지역 극단 사정은 모른 채 서울 극단 중심으로 편향 운영되자 지역 연극인들이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에 1982년 한국연극협회 주최로 열린 연극 심포지엄에서 당시 포항 은하극단 김삼일 대표와 서울 연출가 정진수가 지역 연극이 당면한 현실과 문제, 균형 발전 방안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서울 지역 외 지역 극단들만 참가하는 '전국연극제' 창설을 주장했다.

방법은 각 도와 직할시(광역시의 전 이름)로 나누어 예선을 거쳐 대표단체를 선발해 전국연극제 주최 시에서 본선 경연대회를 한다는 골자였다. 이 제의가 정부에 받아들여져 전국연극제는 1983년 초 창설이 결정됐고, 6월 첫 대회가 부산에서 열리게 됐다.

지난해 전국연극제 대상작 사천 극단 장자번덕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경남도민일보DB

이에 따라 1983년 5월 도내 각 지역 연극인들이 한데 모여 진주 경남학생체육관에서 '제1회 경남연극제'를 열게 된 것이다. 이 연극제를 통해 진주 이희대, 밀양 손경문, 거창 이종일, 통영 장현과 같은 연출가와 많은 남녀 연기자들, 그리고 정석수와 같은 조명전문가, 장해근 같은 무대미술가가 배출됐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경남연극제에서는 극단 마산이 4회·6회·7회, 거창 극단 입체가 3회·5회, 통영 벅수골과 진주 극단 현장이 각각 1회와 2회 대상을 받았다.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아야만 전국연극제에 나갈 자격을 주기 때문에 각 극단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피와 땀을 쏟았다. 그 결과 각 지역 극단 수준이 괄목할 정도로 향상했다.

그러나 수상에 집착한 나머지, 과욕을 부리다 실의에 빠져 연극인의 길을 저버린 사람도 많았고, 극단 자체가 없어진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경남연극제에서만 공연된 작품이 모두 46편에 이르는 것을 생각할 때 경남연극제가 경남 연극 활성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회부터 7회까지 공연 작품 가운데 같은 작품이 한편도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국연극제가 번안극이나 기존 극보다 창작극에 더욱 높은 점수 비중을 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경남연극인들이 창조와 실험정신으로 부단한 노력을 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렇듯 창작극 중심 경연이 되다 보니 도내 극작가들도 많이 생겨났다. 극단 마산 이상용 대표, 거창 입체 이종일 연출가, 통영문인협회 강수성 전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경남연극제는 1990년대 들어 형식 변화보다 작품 내용 등에서 양적·질적 성장세를 보였다. 작품 측면에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거나 군사정권이 물러간 이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 또는 풍자를 담은 시사극들이 다수 창작 및 공연됐다.

2008년 대상작 극단 마산 <파란> 중 한 장면. /경남도민일보DB

이러한 소재적 다양성과 1980년대 경남연극제를 기반으로 성장한 연출가들이 보여준 눈부신 활약 등을 기반으로 1996년 극단 마산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와 이듬해 진주 극단 현장 <불의 가면>이 연달아 전국연극제 대상을 거머쥐며, 전국 시·도 최초로 전국연극제 2연패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이나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의 약진은 2008년 극단 마산 <파란>, 2011년 사천 극단 장자번덕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 등이 전국연극제 대상을 받으며 그 면면을 이어 왔다.

경남연극제는 또한 여름과 가을 시즌 경남을 연극으로 물들이는 도내 각종 '연극 축제'들을 만들어 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도내 연극인들은 경남연극제가 가진 연극 축제로서의 장점은 가져오되 지나치게 경연 형식으로 연극인들만의 축제이다시피한 연극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에 도내 극단들 가운데 일부는 연극제에 극단이 위치한 지역의 자연환경을 접목하고, 경연을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한 '페스티벌' 형식의 '연극 축제'를 생각해내게 됐다. 이것이 현재 봄철 진해코미디아트페스티벌, 진주 영호남 연극제, 거창·마산·통영 등 여름연극축제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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