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컬러풀 아프리카 5편

붉은 사막. 이건 현실이 아니라 차라리 꿈이다. 붉은빛. 이 강렬한 붉은빛. 벌겋게 달아오른, 저 거대한 모래 언덕들이 만들어내는 포물선은 그대로 장엄한 서사시다. 사막은 그렇게 여기 있다. 나미브, 하고 불러본다. 나미브. 나미브. 조용하게 바람이 분다.

모래 언덕의 일출

새벽 5시. 주변이 부산하다. 아직 컴컴한 텐트 안, 손전등을 켠다. 으스스 춥다. 짐은 지금 챙길 필요가 없다니 몸만 빠져나온다. 텐트 밖도 컴컴하다. 아직도 별이 흐드러진 하늘. 이 새벽 우리는 듄(Dune)45로 간다.

대서양 연안을 따라 앙골라에서 나미비아까지 남북으로 1600㎞. 나미브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 언덕(Dune)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모래 언덕 중 한 곳에서 일출을 볼 예정이다.

30분 정도 달려 모래 언덕에 도착했을 즈음엔 동쪽 하늘이, 아니 하늘의 절반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관광지로 유명해진 곳이라 그런지 관리사무실이 있다. 샤드웰이 입장권을 살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린다. 몇몇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하니 바깥을 보고 있다. 관리사무실 직원 역시 부스스한 모습이다.

트럭에서 내리니 공기가 건조하다. 말라서 막힌 코를 뚫으려고 화장실에서 코로 살짝 물을 들이켠다. 긴 동이 터온다. 우리 일행 말고도 일출을 보러 몰려든 이가 많다.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 해가 뜨기 전에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 근데,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500만 년 동안 풍화된 모래는 아주 가늘고 부드럽다. 이 부드러운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빠진다. 두 발을 내딛으면 한 발만큼 미끄러져 내려오고, 다시 두 발 내딛으면 한 발만큼 미끄러진다. 발자국에 밀린 모래가 가파른 경사면 아래로 마치 물처럼 흘러내린다. 오르기 시작한 지 겨우 5분.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아무래도 이건 욕심 탓이다. 언덕이 낮아서 얕봤다. 이까짓 거 금방 오른다고, 마구잡이로 발걸음을 내디뎌서 그렇다.

일출을 보러 듄45를 오르는 사람들.

가만히 다른 사람이 가는 모양새를 보다가, 옳거니,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밟고 가면 되겠네! 올라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누구는 빨리, 누구는 천천히 언덕을 오르는 동안 아침 해가 천천히 솟는다. 찬란한 황금빛은 해가 아니라 오히려 모래의 몫이다. 햇빛이 강해지면서 모래는 서서히 붉은색을 띤다. 모래 언덕의 굴곡을 따라 빛과 그림자 날카롭게 갈라진다. 모래 언덕은 그 자체로 바람의 흔적. 날카로운 능선은 능선 그대로 바람이 되어 지평선 너머 대서양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왜 굳이 듄45에서 일출을 봐야 할까. 수백 개가 넘는 언덕 중 아무 언덕이나 올라도 장관일 것 같은 데 말이다. 내려올 때는 경사면을 바로 가로지른다. 발을 디딜 때마다 스르르 모래가 저 아래까지 흘러내린다. 내려오니 트럭 옆으로 아침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을 먹으면서 듄45를 다시 보니 어, 제법 운치가 있다. 아담하고 적당하고 예쁘다. 어쩌면 수많은 모래 언덕 중에서 스타(star)급 인기를 누리는 까닭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래서 본 듄45.

죽은 습지에서

트럭은 캠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래 언덕 사이를 계속 달린다. 소서스블레이(Sossusvlei)를 보기 위해서다. 이는 ‘죽어버린 습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쉽게 말해 사막 한가운데로 강물이 흘렀거나 고였던 흔적이다.

우기가 되면 이 메마른 땅에도 강물이 흐른다. 강물은 거대한 모래 언덕에 막혀 호수가 된다. 그러다 건기가 되면 물이 증발하고 그 흔적이 남는데, 이거, 꽤 느낌 있는 경치다. 이는 나미브 사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란다.

어딘가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조그만 트럭으로 갈아탄다. 몇 명은 운전석에 대부분은 트럭 짐칸에 옹기종기 끼어 앉는다. 흔들흔들 신나는 드라이브. 붉은 모래 언덕과 파란 하늘, 기분 좋은 대비다.

우리를 소서스블레이로 안내할 안내자는 부시먼 부족 출신이라는데, 제법 키가 크다. 말할 때마다 손가락 튕겨 딱딱 소리를 내는데, 그게 참, 웃긴다. 어쩌면 그 자체가 부시먼 언어의 일부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를 따라 사막으로 나아간다. 어느새 해는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하늘도 뜨겁고 땅도 뜨겁다. 사막은 뜨겁다 못해 눈이 부시다. 물이 흘렀거나 고였던 곳은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만져보니 모래라기보다는 고운 진흙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아침 해를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래.

안내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미브 사막은 여름에는 서쪽에서, 겨울에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지요. 바람은 아주 심한 날에는 사막에서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래 언덕이 만들어집니다. 누구는 모래 언덕이 움직인다고도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언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바람에 따라 꼭대기만 이쪽저쪽으로 기울 뿐이죠. 이 주변에는 이런 식으로 모두 3개의 호수 흔적이 있어요.

안내자는 이어 비닐봉지에 든 자석을 꺼내 든다. 그걸 모래에 대고 휘저으니 새까맣게 쇳가루가 달라붙는다. 그가 말을 잇는다. 붉은 모래 언덕을 보면 거무스름한 부분이 많이 보이죠? 그게 다 철입니다.

뜨겁다, 뜨겁다고 중얼거리며 얼마를 걷고 나니, 데드 소서스블레이(Dead Sossusvlei)에 도착한다. 정말로 죽어 버렸다. 그러니까 다른 곳은 우기가 되면 다시 물이 고인다. 여기는 우기가 되어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사방이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였다. 죽은 지 오래된 나무들이 유령처럼 서 있다. 죽은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안내자가 경고한다. 이 기묘한 풍경을 기묘한 기분으로 돌아다닌다. 그저 이런 게 여기 있다는 말 외에 다른 건 떠오르지 않는다.

데드 소서스블레이를 뒤로 하고 나오는 길, 모래 언덕 위에서 갑자기 안내자가 점프! 10m 됨직한 높이에서 단 세 발짝 만에 착지! 우와~. 물론 부드러운 모래 위여서 저렇게 뛰어내려도 충격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안내자가 우리 보고도 해보란다. 내가 나선다. 좋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착지는 했는데, 아무래도 뛰는 모양새가 썩 좋지 않았을 것 같다.

안내자는 자기 이름을 프란스(Frans)라고 소개했다. 그가 누렇게 말라 죽은 풀에서 열매를 하나 떼어낸다. 거기에 물을 조금 부으니, 어라? 열매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4월이 되어 비가 오기 시작하면 어른 손만큼 큰 잎이 자란단다. 건기에는 죽은 것 같은 상태로 몇 달을 버티다가 우기가 되면 꽃이 피면서 살아나는 것이다.

물을 뿌리니 살아나는 식물.

사막에 사는 온갖 벌레 이야기도 한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 흔적도 없는데 모래를 살살 긁어내니 거미집이 있다! 사막 거미에 물리면 10~15분 사이에 죽을 수도 있단다. 프란스가 억지로 집을 뜯어내고 그 위에 모래를 뿌리니 사막 거미가 급히 나와 열심히 수리를 한다. 정말로 순식간에 수리가 끝나고 뚜껑을 쾅 닫아버리는 거미. 마치, 더워 죽겠는데 집은 왜 부수고 지랄이야! 하고 신경질을 내는 것처럼.

그리고 그가 가르쳐 준 부시먼 속담. 아침을 너무 많이 먹으면 저녁에 먹을 게 없다. (엥? 그게 뭐야!) 춤을 추면 소화가 잘 되고 잠이 잘 온다. (엥? 그건 또 뭐야!) 그러면서 막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의 말은 부시먼 부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부시먼은 작지만 강한 부족입니다. 6살 때 할아버지와 2~3시간 물 없이 걸은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물이 있음 직한 모랫바닥에 나무 관을 꽂아 물을 빨아 먹곤 했지요. 우리는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들을 때마다 슬픈 학살이야기. 백인들이 와서 자기네 마음대로 땅을 나눴어요. 부시먼을 만나면 우선 다이아몬드가 있느냐고 묻고 없으면 바로 죽였어요.

헤어지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는 이렇다. 아프리카에 왔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 안에 앉아 경치 구경만 하지 말고 뭐든지 하세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손뼉을 쳤다. 캠프로 돌아오는 길 입 언저리가 따갑다. 강한 햇빛 아래 오래 서 있었던 탓이다.

캠프장에서 간이 의자를 펴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데 어라? 건너편 땅 위에서 뭔가가 왔다 갔다 한다. 뭐지? 가까이 가서 보니 다람쥐처럼 생겼다. 그라운드 스쿼럴이란다. 땅 다람쥐? 그런데 두 발로 서서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꼭 사람 같다!

200만 년 전의 계곡

오후 1시 30분 다시 캠프장을 출발. 아, 정말 무지하게 뜨거운 날이다. 그런데 샤드웰은 좋은 날씨라고 한다. 아마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아주 가는 모래가 가득한 나미브 사막에서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한다는 건 온몸이 모래투성이가 되고 경치도 보기 어렵다는 뜻이리다. 그래도 뜨거운 걸 어떡하란 말인가.

세스리엄 케니언.

가는 길에 세스리엄 케니언(Sesriem canyon)에 잠시 들른다. 20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자갈과 진흙 퇴적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긴 행렬을 이뤄 계속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퇴적층은 마치 시골 초가집 흙벽을 닮았다. 계곡 깊숙한 웅덩이에는 아직 물이 있다.
오랜 퇴적과 침식이 만들어낸 이 장관. 1만 년 전, 2만 년 전에는 어떤 동물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이 계곡을 지났을까. 다시 1만 년이 지나 또 어떤 것들이 이 계곡을 지나게 될까. 이 오랜 계곡 앞에서 인간이란 영락없는 여행자일 뿐이다.

트럭에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른다. 우리도 잠시 내려 주유소에 달린 휴게소에서 쉰다. 주유소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영상 35도. 참, 이래놓고도 ‘겨울’이라고 부른다. 새벽에는 또 영하로 떨어지니 이 겨울은 어디에 적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때 우리 앞에 나타난 한 자전거 여행자. 자전거 앞바퀴에 큰 짐이 두 개 달렸고, 뒷자리에는 큰 짐이 3개 실렸다. 이 백인 사나이는 이 더운 날씨 속에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을까. 그가 등을 보이자 망연하게 드러난 바지. 엉덩이 부분이 다 헤져 속옷이 다 보인다. 멋있다 해야 할지 무모하다 해야 할지. 새삼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여행을 하는지 실감한다.

오늘 텐트를 칠 캠프장 도착했다. 아담하고 깔끔한 곳이다. 근처에 마을이라도 있으면 돌아볼까 하고 캠프장 밖으로 나간다. 노새를 타고 가던 청년을 만나 물어보니 이 주변에는 마을이 없단다. 한 10㎞ 가야 마을이 나온단다. 이런!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프리카 주민들에게서 철저히 격리되어 여행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안전하고 편하다. 그렇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

다시 저녁이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 오늘 식사 당번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케이티. 모닥불을 피워놓고 닭고기를 굽는 샤드웰. 이를 구경하는 독일인 알렉산드라. 사진 찍기 바쁜 스웨덴인 요한과 리사 커플. 웃고 떠드는 스위스인 막셀과 이스라엘인 아밋, 한국인 용원, 인호, 준호. 트럭 위에 올라가 노을을 감상하는 네덜란드인 막스, 기도, 벤. 이를 흐뭇한 웃음으로 지켜보는 론 아저씨와 엘리자베스 아주머니.

저녁을 먹고 샤드웰이 자기 아내를 산(?) 이야기를 한다. 자기네 풍습으로 결혼하려면 아내가 될 사람의 집에 소 10마리를 줘야 한단다. 특히 교육을 받은 여자는 소를 더 줘야 한다. 내가 죽으면 내 형제가 아내를 취한다. 왜냐면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드웰은 전통에 따라 소를 주긴 했지만, 자신은 아내를 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아내를 샀다면 노예처럼 때려도 되는데, 자신과 지금의 아내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게 이유다.

이야기를 듣는 중 하늘에 다시 거대한 은하수가 나타난다. 아프리카에 와서 가장 길었던 하루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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