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파워] "내가 1세대, 좌절이 곧 에너지고 동기 부여다"

이분 고수다. 해동 검도 6단, 태권도 3단, 무예 24기, 전통무예 기천, 이것도 모자라 권투 경남 아마추어 플라이급 우승 경력까지. 그런데 이분, 상태가 안 좋다.

무예 지도만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굳이 배고픈 길을 간다. 바로 무용이다. 정확하게는 전통무예에 현대무용을 접목한 무예무(武藝舞)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무예 예술 1세대라고 부른다.

대한민족무예예술인총연합회 노정인(41) 대표 이야기다.

무예 예술의 시작

노정인 무예총 대표./이서후 기자

대한민족무예예술인총연합회(이하 무예총) 노정인 대표와 처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건 지난해 11월 29일이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그의 해동검도 전수관에서다. 몇 번인가 사석에서 만났을 때 그는 등에 무예총 글자가 선명한 푸른 도복을 입고 있었다. 무예총? 그때는 그게 그저 무예인을 대표하는 단체인 줄만 알았다.

-경남대 응원단 출신이라고요?

대학 1학년 때 응원단 단원 모집을 하는데, 오! 멋지다! 내가 하면 잘하겠다! 싶더라고요. 무대에 대한 희열감을 처음 느낀 게 응원단에 들어가서예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짓을 하는지도 몰라요. 무대 맛을 딱 봐버렸거든요. 3월에 입학해서 몇 개월을 한 곡만 연습해 5월 축전 때 무대에 섰는데 그 스포트라이트, 환호, 열정 발산, 이게 아주 좋아서 거의 매일 연습실에서 먹고 자고 연습하고 그랬어요. 군대 갔다 와서 또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기웃거렸고요.

-그럼 전통무예는 언제부터?

복학해서 오니까 그 해에 <8월의 칼춤>이라는 무예가 곁들여진 전통문화공연을 마산체육관에서 했어요. 그때 보고 내가 갈 길이 바로 저거야 했지요. 그때부터 체육학과 수업 듣고 무예 지도자 연수 받고요. 이제 난 무예를 지도하면서 무예와 공연을 접목해봐야겠다 하고 결정을 한 거죠. 26살 때였어요. 그리고 에어로빅 강사 지도자 과정도 다니고 재즈댄스나 펑크라든지 하는 춤도 배우러 다니고. 그렇게 한 2년을 보냈죠.

노정인 무예총 대표./이서후 기자

-무예 예술이 정확하게 뭐지요?

도대체 이게 뭐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원래 전통 무예 자체가 예술이에요. 예를 들어 중국은 무술이라고 부르며 기술을 중시하고요. 일본은 그 정신을 중시해서 무도라고 하지요. 우리나라는 무예라고 하잖아요? 이는 춤사위, 그러니까 예술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원형질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거죠. 다만, 그걸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한다면, 제 기량이나 능력이 모자란 탓이고요.

-그게 최윤덕 장군하고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노정인 무예총 대표./이서후 기자

2005년에 무예총을 만들고 창립사업으로 시작한 게 최윤덕 장군을 조명하는 거였어요. 당시 한창 독도 문제가 있었고, 마산시에서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고 그랬거든요. 전통무예가 사실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제재와 탄압을 받았어요.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일본에 대한 반발이 전통무예인들은 좀 강하거든요. 아무튼, 그해 3월 1일 발족을 하고 보니 단체 이름은 민족무예예술인연합이라고 했는데, 그럼 우리가 전통무예로 도장밥을 먹고 살면서 민족 전통에 이바지한 게 뭐 있지 하고 보니까 딱히 없어요! 그래서 첫해 사업으로 ‘우리 땅 지키기 문화예술 대동제’를 했죠. 최윤덕 장군이 대마도를 정복했던 진취적인 기상이 있지 않으냐, 침입만 받다가 원정 정복을 간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역사의 주인공, 민족 자존심을 회복한 분이잖아요. 그때부터 공연 제목을 최윤덕 장군으로 하고 2010년까지 6회를 했죠. 2010년에 창원시가 최윤덕 기념사업을 할 때는 찬성 입장에 섰는데, 마치 무슨 관변단체인 양 창원시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랬었죠.

매번 힘겨운 공연 준비

지난해 12월 31일 성산아트홀 소극장. 이날 무예총이 주최한 <최윤덕의 칼> 무료 공연이 열렸다. 3시에 도착해 공연 준비하는 걸 지켜봤는데, 아, 좀 불안했다. 노정인 대표와 그의 제자 김상금(32) 무예총 사무국장은 주요 공연자이면서 스태프 노릇도 하고 있었다. 공연 직전까지 무대 진행을 두고 토의가 이어졌다. 다들 어수선하고 바쁜데 멀뚱멀뚱 구경하기도 뭣해 나도 잡일을 도왔다. 아니나 다를까, <경남도민일보>에 아쉬움이 많은 공연이라는 평이 났다. 그리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 노 대표가 말했다. 공연 올릴 때도 각오를 했고, 잘못 했으면 매를 맞는 게 옳다고.

-그래도 속이 쓰리시죠?

욕심 같아서는 정말 멋진 공연, 재미난 공연을 만들고 싶은데 아직 그게 안 되네요. 이제 방향을 좀 달리해야겠어요. 지금까지는 외형적으로 규모만 키웠다면, 앞으로는 역량을 다져가는 기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무예 공연 장르는 우리가 1세대에요. 앞 세대가 없어요. 방법도 없고 누가 이렇게 해라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준비된 단원도 없고요. 이 장르를 하면 대학을 진학하거나 취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예 공연과 관련한 인프라가 전혀 없어요.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좌절이 에너지가 되고 동기 부여가 됩니다.

노정인 무예총 대표./이서후 기자

-공연하면 수익이 좀 있어요?

수입이 생기지는 않아요. 우리 무예인들의 주 수입원은 사실 아이들 가르치는 아카데미(도장, 무예원 등)에요. 그게 안정적이죠. 그걸 해야 먹고 살아요. 사실 제 개인적인 수입은 2005년부터 팍팍 줄었어요. 왜냐면 단체를 발족하고 전통무예를 무대예술화 시켜보자, 그런 생각으로 온통 그쪽에 신경을 쓰니, 원생 관리가 안 되고 도장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요. 공연 지원금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다 공연하는 데 쓰지 그게 내 수입이 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도장 수입도 이쪽으로 들어가요. 손해만 안 보면 다행이에요.

-뭐, 전형적으로 가난한 예술가군요.

그러다 보니 개인 생활은 피폐해지고, 주머니에 돈은 항상 부족하죠. 그래도 공연사업은 해를 갈수록 키워 가야지요. 예를 들어 예산이 작년에 500만 원이었는데 올해 1000만 원 확보했다면 500만 원이 남느냐 그게 아니에요. 또 그만큼 더 들어가요. 사업은 욕심내서 계속 해야 하고 작년보다는 나아야 하잖아요. 지난해 그런 부분에서 개인 수입이 사실 거의 바닥을 쳤죠. 그래서 연말 공연도 상당히 금전적으로 힘들었어요. 돈이 없어 굶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이래서는 도저히 개인생활이 되지 않겠다, 아카데미에 조금만 더 신경 쓰자 결심하고 시민생활강좌를 몇 군데 열었어요. 먹고 살아야지요.

-그럼 단원도 없겠네요?

노정인 무예총 대표./이서후 기자

단원 없어요. 공연 질을 높이겠다는 욕심은 있는데 단원 확보가 안 돼요. 자기 밥 굶으면서 이거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제대로 하려면 최소 수억 원을 들여 작품 만들고, 단원도 오디션으로 뽑고, 공연 자체로 수익을 내는 체제가 돼야 하는데 힘들어요. 사소하지만 단원 연습하고 나면 밥 사줘야 하는데 그런 식대도 무시 못 하거든요. 내가 지금 궁핍한데 어떻게 단원을 매일 불러서 연습시키고 그러겠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사실은 지난해 공연을 하지 말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힘들어도 해야겠다, 어떻게든 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올린 거죠.

-가끔 독무전 형식으로도 하시던데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규모가 크고 큰 극장에 올린다고 다가 아니다 싶었어요. 단원을 많이 모집할 수 없으니까, 가끔 오는 단원으로 단기간 연습해서 무슨 좋은 작품이 나오겠습니까? 이건 아니다. 그래서 독무전을 한번 해보자. 내 공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가장 내 기획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 노정인이지요. 그러면 이 노정인을 도구로 써서 무예를 알리는 독무전 형식으로 가보자. 규모는 줄어도 작품 질을 높이는 방법이죠. 그러면 무예만으로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끌고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래서 지난해 7월에 어설프나마 첫 시도를 했었지요. 여건이 되면 올해 가을, 9월 즈음에 두 번째 독무전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는 극단 나비에서 진행할 겁니다. 탭댄스, 난타, 무용하고도 접목하고 자연스럽게 관객들 하고 대화하고 놀아가면서 하는 형식이 될 것이고요.

꿈, 유럽 길거리 공연

노정인 대표의 공연은 단순한 무술 시범이 아니다. 시각과 청각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그래서 그가 일이 없을 때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 하는 게 공연 보기다. 주로 무용 공연을 보지만, 가끔 음악이나 미술 같은 장르도 들락거린다. 이는 자신의 공연에 같이할 단체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독무전으로 무대 운영 능력을 높인 다음, 소규모 협연진만 준비되면 유럽 순회공연을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유럽 순회공연이요?

유럽 투어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13년도에는 예산이 되든 안 되든 무작정 유럽투어를 가려고요. 첫 번째로 영국에 갈 가능성이 가장 크고요. 그다음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 투어에 대비해서 요즘에는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페이스북으로 외국 친구도 많이 만들어요. 영어 공부도 하고 그쪽 공연하는 분들과도 친분을 쌓으려고요. 가능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도 받고, 초청받는 식으로 하면 좋겠지만.

-혼자 가실 건 아니실 텐데요?

예산이 없으니까 수십 명이 갈 수는 없고 그때그때 단기 협연진을 구성해서 다니는 거죠. 일단 최소 3명에서 5명을 구성할 생각이고요. 올해 독무전을 할 시점에 협연진을 모집할 거예요. 항공료는 내가 책임지겠다, 단 가서 공연료는 없다, 그냥 실험적으로 하는 거다, 그날그날 거리공연에서 번 돈으로 먹고 자고 할 거다, 잠잘 곳이 없으면 우호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고 정 안되면 신문지 깔고 잘 수도 있다는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해보자! 이런 식으로요. 영국이 거리 공연하기가 좋대요. 별 제재도 없고 위험부담도 없고. 길거리 공연을 보고 보수를 지급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고. 그래서 공연 수준이 어떻든 굶어 죽진 않겠구나 싶어요. 이렇게 대도시 중심으로 다니면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정도 투어를 하고 들어와서 정비하고, 다시 또 나가고 그런 식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공연을 하며 그쪽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 나라에 한국전통무예 아카데미를 열고 싶어요. 일종의 외국 지부죠.

노정인 무예총 대표./이서후 기자

다시 말하지만, 이분 확실히 상태가 안 좋다. 하지만, 이 세상 성공 신화는 대부분 이런 상태 안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 그는 힘들고 외롭다. 더 나은 공연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무예 예술이란 장르를 알리려고 크고 작은 공연을 많이 해야 한다. 매일 한 시간 반씩 무예 연습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무대에 선 그의 활기찬 표정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왜 굳이 힘들고 외로운 길을 걷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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