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50) 매화

◇매화와 살구

어릴 적 우리 동네에 살구나 매화나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살구가 매실 같고 매실이 살구 같았다. 다 커서 생각해보니 열매가 익기도 전에 딴 녀석은 매실이고 열매가 다 익은 뒤에 모심을 때 따먹었던 녀석이 살구다.

매화의 한자 매(梅)는 살구랑 닮아서 살구 행(杏)자를 뒤집어 매화를 매() 또는 매()라고 하거나 매()라고 쓰다가 매화 매(梅)자가 되었단다. (杏-呆-槑-楳-梅)

배꽃과 복숭아꽃은 이화(梨花)와 도화(桃花)처럼 우리말과 한자말이 둘 다 있는데 매화(梅花)와 매실(梅實)은 왜 한자말만 있고 우리말이 없을까?

반고흐가 그린 매화.

◇반 고흐와 매화

매화를 영어로 plum이나 apricot이라고 하는데 plum은 자두고 apricot은 살구다. 서양에는 매화가 없고 한·중·일 3국에만 있다 보니 적당한 영어가 없다. Japanese apricot(일본 살구)이라고 하거나 일본말 우메(무메)를 그대로 영어로 ume(mume)라고 한다. 매화꽃은 Japanese apricot flower(blossom)나 ume flower(blossom)라고 한다. 중국 원산의 매화가 일본 꽃이 되어 버렸다. 반고흐가 그린 매화 그림을 보면 서양 사람이 매화를 일본 나무로 오해할 만하다. 서양 중심의 세계에서 매화는 학명도 영어 이름도 반 고흐의 그림까지 모두 일본 것이다.

◇5만 원 지폐와 매화

퇴계 이황 선생은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가셨다 한다. 최고의 학자 중 한 분으로 꼽히는 퇴계 선생에게 매화는 어떤 존재였을까? 5만 원 지폐에도 매화가 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꽃 중에서 매화가 들어가게 되었을까?

◇돈 종교 권력과 꽃

5만 원 지폐 뒷면과 어몽룡의 매화도.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소나무가 한국 사람의 과반수가 좋아하는 나무 대통령이고 기독교의 꽃 장미가 대한민국 꽃대통령이다. 왕좌를 내준 불교의 꽃 연꽃과 함께 유교의 꽃 매화가 있다. 옛날에는 꽃의 왕(花王)은 모란이라고 했다. 권력이 바뀌듯이 꽃의 왕도 돈과 종교와 권력에 따라 바뀐다.

꽃은 본래 영화(榮華)다. 영(榮)은 나무에 핀 꽃이고 화(華)는 풀꽃이다. 영(榮)은 복숭아꽃 살구꽃처럼 작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양이고 화(華)는 모란이나 부용이 크고 탐스럽게 핀 모양이란다. 돈과 어울리는 부귀영화에는 매화보다 모란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매화와 모란

중국에서 매화와 모란을 두고 나라꽃 국화 정하기 이야기가 있다.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따르는 현실적인 자본주의 꽃이고 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대쪽같이 살아가는 선비의 꽃이다. 봄이 다 지나고 나서야 크고 화려하게 피는 모란이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라면 추운 겨울이 지나 이른 봄에 눈 속에서도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이 매화다.

모두 밝은 태양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할 때 매화만은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달을 바라보며 꽃을 피운다. 5만 원 지폐에 실린 어몽룡의 월매도는 매화의 지조와 절개 고고함과 어울리지 않게 5만 원 지폐에 들어갔다. 5만 원은 장미나 모란을 닮았는데 어찌 매화를 넣었을까? 참 궁금하다.

◇돈과 매화의 향기

일본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그린 목판화 매화 정원.

종교에서 본다면 장미와 백합은 기독교 꽃이고 연꽃은 불교의 꽃이며 매화는 유교 선비의 꽃이다. 세상에는 지조와 절개의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왜 이리 힘들기만 할까?

교회와 성당과 절마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고 책과 언론에는 진실과 진리가 발에 걸리적거리지만 우리 삶은 왜 사랑과 자비가 없고 평화롭지 못할까? 메이저 신문과 공중파 방송 뉴스보다는 나꼼수에 더 열광하는 것일까?

머리로만 살고 입으로만 살아가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세상을 압축 요약한 5만 원 지폐 속에 그려진 달빛 아래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보면서 앎이 삶이 되고 머리와 입보다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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