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51년, 기다리는 마음으로 늘 그 자리에

옹기종기 모인 배가 정겹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그리고 한쪽에 걸친 섬은 마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처럼 살가운 풍경을 자아낸다. 오히려 관광객 눈길을 끌고자 정박해놓은 거북선이 눈 맛을 거스르지 않을까.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 걸음이 어쩐지 여유롭다.

통영항 한쪽 구석에 있는 화장실 주변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상을 털어놓는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람 얘기, 먹는 얘기, 사는 얘기에 실컷 웃으며 말이 말을 거든다. 겨울 바닷바람을 잠시 억누르는 포근한 햇살이 가득한 화장실 앞은 곧 어르신들 사랑방이 됐다.

통영항 인근 모습./이승환 기자

먹고살려고 배운 톱 갈이, 평생 업 돼

톱 할아버지 강갑중 씨./이승환 기자

"영감! 이거 200만 원짜리 두고 간다. 잘 지켜라."

장난기 어린 거드름이 가득 담긴 목소리다. 할아버지 한 명이 옆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명령하듯 말하고 자리를 뜬다. 그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 할아버지를 태웠던 전동 휠체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부탁을 받은 할아버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손짓으로 배웅한다. 그리고 지긋이 바다로 향한 눈길. 그 앞에는 투박하지만 단단하게 만들어진 작은 탁자가 있고 그 탁자 앞에 날이 선 톱이 펼쳐져 있다. 통영항 톱 가는 할아버지 강갑중(76) 씨. 51년째 같은 자리에서 바다와 항구, 사람들을 벗 삼아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소박한 언어로 종이에 옮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시를 자리 옆에 있는 벽에 걸어놓았다. 톱 가는 할아버지는 시 쓰는 할아버지로도 유명하다.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아침 10시쯤 나와서 오후 5시쯤 되면 들어가요. 젊었을 때부터 이 일만 계속 했네요."

강갑중 할아버지 고향은 고성군 하이면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장 역할을 떠맡았던 할아버지는 군 제대 후 톱 가는 일을 시작했다.

"뭐 배운 것도 없고 해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톱 가는 일이 쏠쏠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삼천포 쪽에 톱 가는 분이 있다고 해서 기술 좀 가르쳐달라고 쫓아다녔는데 잘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억지로 배워서 돌아다니면서 톱과 칼을 갈았지요."

섬을 오가며, 배를 오르내리며 한 2~3년 정도 돌아다니자 주변에서 찾는 사람도 생겼다. 그제야 통영항 한쪽에 자리를 정해 본격적으로 톱을 갈았다. 날씨가 아주 좋지 않은 날만 아니라면 강갑중 할아버지는 늘 통영항 한쪽 구석을 지켰다.

톱 할아버지 강갑중 씨./이승환 기자

사람과 풍경 아우른 소박한 글

"그냥 떠오르는 대로 한 구절씩 써봤어요."

강갑중 할아버지가 앉은 자리 오른편에 걸린 시를 가리키자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다. 통영항을 드나드는 배, 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이곳을 터전으로 삶은 이들, 한번 통영에 들른 또 다른 사람들, 그 너머에 펼쳐진 바다. 일이 뜸할 때면 할아버지는 종이와 연필을 들었다. 따로 배운 적이 없었기에 형식이라는 게 없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받아들이면서 떠오르는 단어를 투박하게 옮겼다. 그렇게 쓴 글이 한 편 두 편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톱을 갈려고 펼친 자리에 정성스럽게 정돈한 글을 걸어놓았다. 그런 글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재밌는 게 보는 사람들 한마디씩 하는 게 전부 배우는 거에요. 제가 따로 글 쓰는 것을 배우지도 않았고, 그래도 보는 사람 중에 좋다는 사람도 있고, 이것은 이렇게 고쳐서 써보라는 사람도 있고…. 듣고 보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한 글자씩 바꿔보기도 하고…. 그런 재미가 있어요."

그렇게 모은 작품이 40여 편이다. 단순하게 셈하면 1~2년에 한 편씩 나온 작품이다. 쓴 것을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러다 보니 남은 작품이라고 했다.

톱 할아버지 강갑중 씨./이승환 기자

잠시 할아버지와 평온한 통영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50여 년 동안 바라본 바다. 주변은 바뀌었고 드나드는 사람이나 배가 늘거나 줄어들 때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에게 바다는 늘 그대로 바다일 뿐이다.

"통영 바다는 봄일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겨우내 웅크렸던 자연과 사람이 봄이 되면서 활기를 띠어요. 뜸했던 어선들도 부쩍 힘을 내서 일을 나가고, 바라보이는 풍광도 생기가 도는 듯하고. 봄이 되면 빛깔이 확 바뀌는 게 느껴져요. 어느 계절 좋지 않을 때도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봄이 좋네요."

느닷없이 마주친 고마운 인연

톱 할아버지 강갑중 씨./이승환 기자

할아버지가 걸어놓은 시 중에는 곡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기다림', '굴까는 통영 아가씨', '한 송이 꽃이라도' 등 3개 작품이다. 작곡가 이름에는 고승하 경남민예총 지회장 이름도 들어 있다. 이름을 가리키자 할아버지 표정이 부쩍 밝아진다.

"지난해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이것저것 싹싹하게 물어보더라고요. 뭐 사는 이야기도 했고 시 쓴 이야기도 하고 그랬지요. 그러면서 제가 누가 곡이나 붙여줬으면 좋겠다 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연이 돼서 선생님이 오셨지요. 제가 노래라고 쓴 글도 그렇고 그냥 쓴 글에도 곡을 붙여주시더라고요. 그리고 녹음도 해주시고, 한 번 와서 공연도 하시고…."

그 싹싹한 아주머니는 '실비단안개의 고향의 봄(blog.daum.net/mylovemay)'을 운영하는 블로거 실비단안개이다. 할아버지는 잠시 그때 생각을 돌이키느라 멈칫하기도 했지만 말 사이 허전함은 표정이 채우고도 남았다.

"50년 넘게 있다 보니 당연히 인연도 많아요. 가끔 먼 곳에서 톱을 갈러 오시는 분도 있고, 지나다니면서 안부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인터넷에서 봤다며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반가운 손님들이지요. 늘 그런 인연을 기다리는 게 사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통영항 한쪽에서 늘 소중한 인연을 기다리는 마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결국 기다림의 연속 같다는 할아버지에게는 같은 이름을 제목으로 한 시가 늘 옆에 걸려 있다.

임 떠난 부두에 홀로 남아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넋이라도 한 포기 이름 없는 잡초가 되어

따뜻하고 양지바른 이곳에

십 년이라도 백 년이라도 그리운 님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노라

통영항 전경./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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