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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가 '맛없는 세상' 바꿀 수 있다

[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 (11) 음식과 진보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2012년 03월 02일 금요일

시시때때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뉴스가 있다. 거대 식품회사·대형 마트·백화점·프랜차이즈 전문점 등에서 만들거나 판매하는 음식에서 무슨무슨 세균이 발견되는 등 위생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유통기한·원산지·성분 속이기 역시 단골 수법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영세한 시장이나 점포, 식당 등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긴 마찬가지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리 식탐이 많아?" 기자는 "난 그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상대가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이 그런 듯하다. 먹는 것, 먹는 문제에 관심 갖는 것을 아예 쓸데없거나 한가한 짓, 또는 어떤 탐욕의 결과 따위로 본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먹어도 될 만큼 우리는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우리 식생활을 지배하는 대형 업체 측이 내놓는 각종 인스턴트 식품, 즉석식품, (반)조리식품 등이 진짜 맛있고 안전하고 건강에 유익해서 별 거리낌 없이 먹고 있는가?

   
 
  사천시 곤명면에서 만난 1인당 6000원짜리 보리밥정식 상차림. 무분별한 도시개발은 임대료 상승 등으로 싸고 맛있고 정직한 음식점의 생존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보통 우리는 어떤 물건을 살 때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입한다. 옷이든 휴대전화든 컴퓨터든 비싼 돈 나가는데 깐깐해서 나쁠 것 없다. 하물며 사람 뱃속에 들어가는, 나 자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직결되는 음식은 어떠해야 할까. 더구나 하루에 최소 두세 번씩은 '숙명적으로' 돌아오는 피할 수 없는(그래서 더욱 즐겨야 하는) 일상 아니던가.

오래되고 질 나쁜 식재료, 화학조미료, 첨가물, 과도한 양념 사용이 안 좋다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다 안다. 이렇게 만든 음식의 맛이 '제대로'가 아니라는 것 역시도. 하지만 대개 우리의 최종 선택은 정반대다. 바쁘고 귀찮다고, 직접 하면 맛이 잘 안 난다고 타협하고 합리화하고 끝내는 '굴복'한다.

신나는 건 대자본들뿐이다. 양도 적은데다 신선할 리도 없는 재료, 정체불명의 양념·첨가물이 가득한 온갖 식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가공식품부터 국·찌개·죽·면·반찬까지 가리는 게 없다. 그래도 싸지 않냐고?

직접 전복을 사서 전복죽을 해먹을 때와 마트상표가 붙은 즉석 전복죽의 원가를 비교해 본적이 있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즉석 전복죽(1인분)은 전복 함량이 전체 270g 중 6.4g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냉동 수입되는 말레이시아산이었다. 전복죽이 고작 3000원 정도밖에 안하니까 무척 싸 보이지만, 이러한 재료 상태, 그리고 한 개당 50~60g(껍데기 제외) 정도 나가는 국산 생전복의 가격(4000원 안팎)을 감안하면 결코 싸다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맛이 비교가 되겠는가?

최근 논란이 된 '빵'만 해도 그렇다. 재벌 2, 3세들이 빵집·카페 사업에 뛰어든 일로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의 진출 배경에는 유화제·팽창제·보존제 등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맛없고 달기만 한' 빵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이 있다는 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사이 첨가물 없이 천연효모 등만 이용하는 소규모 정직한 빵집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아울러 그런 정직한 빵의 맛도 사라지고 있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사실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진출을 법으로 규제한다지만 그것으로 음식을 둘러싼 '종속관계'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모든 식재료를 직접 재배·채취·조리하라고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싸고 맛있고 정직한 음식점도 우후죽순 생기는 프랜차이즈 전문점과 개발 광풍에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을 오로지 '식탐'이라고 폄훼하는 데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개인 취미생활에 그칠 수도 있으나, 맛있는 음식·신선한 식재료를 찾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지향과 잇닿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노동권과 건강권, 보육권 등 사회복지가 보장되어야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 조건이 되는 것이고, 해당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음식 보전을 고려치 않는 막가파식 개발을 막아야 오래도록 정직한 식당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소비자 입장에서 까칠해지는 것만으로도 '맛없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조개맛·소고기맛 다시다를 넣고 맛없다 투덜거리지 말고 직접 조개와 소고기로 육수를 만들어보자. 건강에 나쁜 줄 알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지 말고 직접 햄버거나 치킨을 만들어 함께 먹어보자. 그렇게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얻은 맛은, 이제 일상의 '맛의 기준'이 될 것이고 온가족 나아가 주변 친구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99%가 꿈꾸는 세상'도 말하는데, '99%가 원하는 맛'이 공유된다면 더 이상 대자본이나 대형 식당의 꼼수에 우리 입맛이 휘둘릴 일은 없지 않을까.

그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 공감도 있었지만 욕도 먹었고 오해(?)도 좀 받았다. 마지막으로 음식에 대한 애정이 곧 개인의 행복으로, 세상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프랑스의 한 미식가가 남긴 '먹는 즐거움'에 대한 예찬을 끝으로 연재를 마친다.

"지구는 잡식성인 인간을 위한 것들로 풍성하게 덮여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었듯이, 미각은 모든 감각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쾌락을 주는 감각이다. 먹는 즐거움은 절제 있게 섭취했을 때 피로를 동반하지 않는 유일한 쾌락이다. 먹는 즐거움은 연령과 조건을 불문하고 언제나 가능하다. 먹는 즐거움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필연적으로 돌아오며, 하루에 두세 번 불편없이 반복될 수 있다. 먹는 즐거움은 다른 모든 쾌락과 섞일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쾌락들의 부재를 달래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먹음으로써 우리는 본능적 의식에서 나오는 정의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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