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정정순(35)·박은경(36) 부부

간호사로 일하는 박은경(36·부산 사상구 학장동) 씨는 3교대 근무자다. 3개 조가 돌아가면서 24시간 근무하는 3교대 근무는 가장 고달픈 노동 조건 가운데 하나다. "늦게 마치는 일도 잦고, 그 마치는 시각도 일정하지 않으니 연애 한 번 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요. 일단 제대로 만날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남자를 만난다면 두 가지 조건은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엉뚱하게도 그 첫 번째 조건은 '백수'였다. 최소한 은경 씨가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려면 남자라도 시간이 남아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은경 씨가 29살이던 2005년, 그 백수(?)를 만난다.

   
 

"밤늦게 일 마치면 항상 맥주 한 잔 하던 동료가 있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맥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시내에서 한 잔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했더니, 친구 한 명 불러서 마시자고 해서 부르라고 했지요."

밤 11시에 술 한 잔 하자는 전화를 받고 나온 남자는 정정순(35) 씨. 그는 완전한 백수는 아니었고 컴퓨터 관련 프리랜서로 일하는 '반(半)백수', 그러니까 일하는 시간이 따로 없는 처지였다. 어쨌든 정순 씨는 친구와 함께 나온 입담 좋고 유쾌한 은경 씨가 마음에 들었고, 은경 씨도 수줍게 말하는 남자가 괜찮았다. 그리고 다행히 두 번째 조건에도 맞았다.

"제가 술 한 잔 마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남자도 술을 좀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러면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했지요."

밤 11시에 만난 이들은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유쾌하게 시간을 보낸다. 정순 씨는 바로 다음날 만남을 청했고 은경 씨도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누가 먼저 시작하자고 할 것 없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애가 시작됐다.

"연애는 평범했어요. 늦은 시각에 만날 때가 잦아 주로 차 안에서 데이트를 했던 것 같아요. 멀리 가지는 않고 가까운 곳에 나가서 밥 먹고, 가끔 술 한 잔 하고…."

은경 씨는 바람대로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어 좋았고, 화통한 자신과는 다르게 얌전한 남자 스타일도 괜찮았다. 정순 씨 역시 늘 대화를 주도하고 시원시원한 은경 씨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나자 나이도 찼고 결혼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동안 은경 씨가 생각했던 두 가지 조건은 모두 수정된 상태였다.

먼저 백수였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재빨리 바꿨다. 연애할 때 조건일 뿐이지 결혼을 앞둔 이상 제대로 된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게 은경 씨 생각이었다. 물론, 정순 씨도 동의했다.

남자가 술을 잘 마셨으면 좋겠다는 조건은 어이없게 깨졌다. 사실 정순 씨는 술을 거의 못하는 쪽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치킨을 시켜서 맥주 한 잔 같이 하자고 사정을 해도 정순 씨는 단호했다.

"처음 만났을 때 술 잘 마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날 죽을 각오로 마셨다는 거예요. 연애하면서부터 점점 술을 안 마시더니 결혼하면서는 술을 입도 안 대더라고요. 이거 완전 사기 아닌가요?"

이 정도에서 끝나면 괜찮았다. 그런데 정순 씨는 술과 관련해 한 번 더 은경 씨에게 배신감을 안긴다.

"제가 애 낳고 나서는 술을 안 마셔요. 임신했다고 못 마시고, 모유 수유한다고 못 마시고…. 그런데 정순 씨는 그때부터 술을 혼자 마시는 거예요."

정순 씨도 이유는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일만 제대로 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경험을 한 것이다. 정순 씨는 괜히 술 한 잔 못하는 바람에 손해 보는 일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는 마셔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다만, 하필 그 시기가 은경 씨와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물론 정순 씨에 대한 은경 씨 불만이 같이 한 잔 하느냐 마느냐 문제는 아니다. 3교대 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은경 씨에게 정순 씨는 사실 무심한 남편이다.

"사실 요즘은 화날 때가 잦아요. 저는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살림도 하고 힘든데 남편은 자기 일만 하는 것 같아서요. 살림을 많이 거들어주지도 않고…. 그래서 싸울 때가 잦네요."

네 살배기 딸과 두 살배기 아들이 있는 결혼 6년차 부부. 빠듯하고 피곤한 일상 때문에 서로에게 뭔가 해주기보다 바랄 게 훨씬 많은 시기다. 그나마 '내가 늘 잘못하는 게 많다'는 정순 씨 말은 힘든 시기 남자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기본자세인 듯하다. 

※결혼 기사를 매주 월요일 6면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은 이승환 기자(010 3593 5214)에게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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