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호의 '우포늪에 오시면'] (11) 우포늪에 심은 나무들의 사연

살다보면 본인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일들이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우포늪에 심겨진 나무들도 그러한 예들이로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우포늪 주민이 심은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나무들을 알면 심은 당시의 주민들과 지금의 우포를 이해하는 데도 나름대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포늪 인근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에는 모래벌이라 불리는 사지포가 있습니다. 주매리는 인불과 사지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사지마을 앞에 사지포 제방이 있습니다. 사지포 제방에 오시면 계절에 따라 물옥잠 군락과 고니 등 다양한 생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창녕 우포늪 미루나무. /경남도민일보DB

사지포 제방에 서면 아름다운 미류나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포늪이 한국을 대표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천연기념물 524호인 습지이니 환경 정화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심었는가 생각하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우포늪을 찾는 분들 특히 사진 찍는 분들에게는 좋은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미류나무는 자생식물이 아닙니다. 미류나무는 표준말로는 미루나무라 하는데, 미류라고 부르는 이유는 미국에서 건너온 버드나무라고 해서 미(美)류(柳)나무라 한답니다. 과일 중의 하나인 석류는 중국 당나라 때 당나라 사람들이 안석국이라 불렀던 지금의 이란 인근 지역에서 도입되었기에 석류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셨죠?

이 미류나무들은 언제 누가 왜 심었을까요? 사지마을 주민에 따르면, 1970년대 주민 중 한 분이 나무를 심었고 젓가락 등을 만들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큰 나무가 된 지금 베어지지 않고 생태계 보호지역이자 천연기념물 524호인 우포늪의 사지포에서, 심은 의도와는 달리 아름답게 잘 자라 방문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서져 젓가락들로 변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나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주민들이 장작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건데 그대로 둔 그분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미류나무 형제들은 새들에게는 보금자리로 사용되고, 방문객들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있습니다.

나무벌인 목포가 바라보이는 이방면 장재마을에는 왕버들 군락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여름이면 크고 많은 왕버들들이 밀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풍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포늪 어디에도 그렇게 왕버들이 군락으로 있는 곳은 없습니다. 특이한 경치로 많은 방문객들이 그 왕버들 군락을 사진에 담아가고, 모 연예인은 CF를 찍기도 하였습니다.

나무들이 왜 심어져 있을까요? 저도 그 마을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보아 왔기에 특별히 의문점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 고향 친구 한 명이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장재마을 옆에는 우만마을(소장리라고도 불림)이 있습니다. 그 친구에 따르면 우만 마을에 사는 친척 중 한 명이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왕버들을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대로 두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자란 나무들의 일부는 땔감으로 사용했고, 대다수 나무들은 심고 나서 자라기를 기다리는 사이 연탄이 널리 사용되다 보니 쓸모가 없어져(?) 그대로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재마을 앞의 아름드리 미류나무도 젓가락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었는데, 그 중 일부가 남아 지금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나무를 심은 분이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오늘날의 그 왕버들 나무 군락과 미류나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우포늪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주매마을의 주매 제방에 가시면 물이 있는 부분이 있고 섬처럼 생긴 부분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위에는 버드나무 등의 다양한 나무들과 풀들이 있어 곤충들과 새들을 비롯한 생물들에게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을 바라보면 우리 인간들이 모르는 수많은 생명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매제방 안쪽으로 들어가면 밭도 있습니다. 수년 전에 아는 분과 찾아간 그곳에는 보리들이 심겨져 있었는데, 노오란 보리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였습니다. 도시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감동적인 풍경이었습니다. 평소에 점잖다고 소문난 그 분은 감동이 되었는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 가아면~'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은 밝고 환하게 웃는 어린이 이상이었습니다.

그곳이 섬처럼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라고 들었습니다. 습지였던 그곳을 대대제방 밑의 논처럼 만들기 위해 제방 만드는 공사를 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남은 결과물이라 합니다. 밑에 돌들을 놓고 위에 흙을 덮어 올리는 식으로 공사를 하였지만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대대제방 밑 논처럼 우포늪의 많은 부분이 논으로 변하였을 겁니다.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공사가 다행히 중단되었고 자연스레 생긴 나무들과 풀들은 이제 우포늪의 색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새들과 곤충들은 그 나무와 풀들 위에 집을 짓고, 작은 새들과 어린 곤충 등은 그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이어갑니다. 해가 질 무렵 겨울 철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은 환상적입니다. 우포에 오시는 분들에게 이 광경을 절대 놓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 이유들로 베어져 버린 나무들은 아쉬움을 주기도 합니다. 매미 태풍 전까지 주매제방 위에는 아름드리 뽕나무가 십여 그루 있었습니다. 큰 피해를 주었던 매미 태풍 때문에 그 제방을 높이는 공사를 하면서, 숲을 이루던 큰 뽕나무들이 베어져 버렸습니다. 오디 열리는 5월에 우포늪 주매제방을 방문하면, 제방 위 그 자리에 있던 아름드리 뽕나무에서 오디를 맛있게 따먹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우포늪에 있었던 몇 가지 예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의 행동들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영향을 주는 것을 봅니다. 의도와는 이렇게 다른 결과들을…. 지금 우리의 행동들이 세월이 지난 후 어떻게 평가될지, 영향을 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눈이 왔던 우포늪 길을 걸어가니 서산대사께서 말씀하셨고 김구 선생이 강조하셨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지어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노용호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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