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 (10) 소고기국밥과 돼지국밥

소고기국밥과 돼지국밥은 지역성이 강한 경상도 고유의 음식이다. 물론 우리 민족이 소·돼지를 국물 요리에 이용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일이며, 유독 경상도 사람들만 뭔가 특별했다는 기록 따위는 없다. 하지만 음식 이름에 특정 지역명이 따라붙는 등 상품화된 메뉴로서 대중적 지위를 가장 먼저 획득한 곳은 경상도가 확실해 보인다. 지금도 전국 어디를 뒤져봐도, 경상도만큼 두 음식을 즐겨 먹는 지역은 없다.

1960년대 이후 부산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돼지국밥은 특히 지역적 쏠림이 매우 심하다. 전국의 모든 음식이 집중되는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충청·강원 등 경상 외 지역에서는 전문식당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정착을 시도한 돼지국밥 전문점이 있었지만 성적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 원인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한데 한 음식평론가는 돼지국밥이란 '이름'에 혐의를 두기도 한다. '돼지'라는 동물에서 연상되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실 돼지국밥이란 음식이 있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 대다수 반응이 그렇다. "돼지국? 아니, 돼지로 어떻게 국을?" 소고기나 해물로 우린 육수는 일반 가정에서도 많이 쓰는 등 익숙하지만 돼지고기 국물은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유명한 식당인 범일동 할매국밥의 돼지국밥 상차림.

이건 순전히 기자의 추정이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 돼지국밥과 유사한 음식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탓이 크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설렁탕, 곰탕, 닭곰탕, 소머리국밥, 순댓국밥 등 맑고 진한 국물이 특징인 음식 이야기다. 반대로 이들 음식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경상도 지역에서 큰 인기가 없다.

소고기국밥은 돼지국밥과 달리 전국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이름과 형태는 다르지만 소고기국밥, 육개장, 따로국밥, 장터국밥 등은 '소고기육수+고추양념'이란 구성적 특징을 가진 같은 계통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고기국밥과 돼지국밥은 경상도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소고기국밥의 원조이자 기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무교탕반(서울·개성), 가리국밥(함경도), 대구탕반(대구) 등이다. 여기서 탕반은 '국밥'이란 뜻으로,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했으며 현재도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 건 대구탕반밖에 없다.

다만 대구탕반은 경상도식 소고기국밥보다는 고기를 결대로 손으로 찢어 넣는 육개장에 더 가까웠다. 현재 대구지역에는 이런 육개장과 선지를 넣은 따로국밥, 일반 소고기국밥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사이 문헌에 정리된 조리법을 보면 지금과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기를 썰어서 장을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어 넣은 고깃점이 푹 익어 풀리도록 끓인" 뒤 여기에 "고춧가루와 소기름을 흠뻑 많이 넣는다"고 되어 있다.

글쓴이는 "국물을 먼저 먹은 굵다란 파가 둥실둥실 뜨고 기름이 뚝뚝 뜨는 고음 국에다 곤 고기를 손으로 알맞게 지져 넣은… 혓바닥이 델 만큼 뜨겁고 김이 무럭무럭 떠오르는 시뻘건 장국을 대하고 앉으면 우선 침이 꿀꺽 넘어간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돼지고기로 설렁탕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부산음식 전문가인 김상애 신라대 교수(식품영양학과)는 "돼지국밥은 자생적으로 태어난 고유의 향토음식이라기보다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인 토대 위에서 탄생되었다"며 "돼지고기 소비가 많아 수급이 원활한데다, 부산물인 뼈를 이용해 가격이 저렴하고 경제적이어서 일반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경남·부산에서 돼지국밥이 인기인 것은 확실히 '착한 가격'이 크게 작용하는 듯 보인다. 싸게는 4000원, 아무리 비싸도 6000원은 거의 넘지 않는다. 반면 설렁탕·곰탕은 지역마다 좀 다르지만, 잘한다는 식당은 대개 7000원에서 1만 원 사이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렁탕 평균 가격이 가장 비싼 지역은 부산(7000원)이었고 서울(6871원)-경남(6826원)이 그 뒤를 이었다.

소고기국밥과 돼지국밥은 식당마다 조리법이 천차만별인 음식이기도 하다. 큰 틀에서 소·돼지의 뼈와 살코기를 이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각 재료의 비율, 뼈·고기의 부위, 우려낸 시간 등에 따라 또 천차만별의 맛을 낸다. 사골을 많이 쓰면 하얀 우윳빛의 육수가 되며 반대로 고기 비율이 높아지면 우윳빛이 옅어지고 투명해진다.

부산에서 최고의 돼지국밥집으로 꼽히는 동구 범일동의 '할매국밥'은 맑고 반투명한 국물이 특징인데, 다리뼈와 등뼈 등 사골로 우려낸 초벌 육수에 신선하고 질 좋은 삼겹살을 넉넉히 넣어 만든다. 역시 소고기국밥으로 명성이 높은 의령 '종로식당'의 경우는 뼈 없이 갈빗살과 양지, 아롱사태, 머리뽈살, 대창 등을 이용해 국물을 우린다. 물론 육질 좋은 한우 고기만 사용함은 물론이다.

집에서 소고기 육수를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호주산 등 목초만 먹인 소고기는 감칠맛 나는 맛있는 국물이 잘 우러나오지 않는다. 이는 맛의 핵심인 '올레인산'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한우처럼 곡물사료를 먹여야 함량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소고기국밥이나 돼지국밥에 종종 따라 나오는 소면을 별 생각없이 국물에 넣지 말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정성들여 우린 귀한 국물에 굳이 '싸구려' 밀가루 냄새를 더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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