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의 ‘질적’ 변화 농촌 재구성 초래


한 종교지도자는 신문칼럼을 통해 주5일 근무제가 “교리에 위배되고, 향락산업을 부추길 것”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교리는 논외로 치자. 그렇다면 과연 주5일 근무제는 반드시 향락산업을 부추길까. 물론 이 질문들에 대해 완전히 ‘그렇다’고도 ‘아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는 주5일 근무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가 그의 예견대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제도를 받아들이는 주체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우리는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영향력 있는 주체는 역시 지방자치단체다. 현재 주5일 근무제와 관련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지방자치단체는 강원도. 강원도는 농촌지역에서 여가를 즐기려는 도시민들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내년부터 2004년까지 301억원을 들여 체류형 생태체험마을 44개를 육성하기로 했다. 기초자치단체 중에도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처럼 주5일 근무제는 지금까지 산업화에서 소외됐던 농,어,산촌지역에 상당한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기회가 곧 성공은 아니다.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여가활동의 내용이 바뀐다는 점에 주목하자. 관광전문가들은 근무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가족단위의 여가활동 및 여행증대 △금전이 아닌 시간소비형 여가활동 △자아실현 및 자기계발 추구 △관람이 아닌 참여형 여가활동 △건강 중심의 여가활동 △문화소비형 여가활동 등이 새로운 관광유형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숙박’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전의 시골은 머물 여유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질을 생각하기 시작한 도시민은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시골의 전원생활을 쳐다보기보다는 들어가 머물기 원한다.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비한 농촌지역은 산업화로 인한 그간의 소외를 상당 부분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귀농도 꿈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산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도시는 어떻게 될까. 도시는 갖고 있는 자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문화시설과 공원 같은 여가공간이 부족한 도시는 주말의 도심공동화(空洞化)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반면 충분한 문화공간에 흥미로운 프로그램, 그리고 양질의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는 새로운 활력으로 경제활성화에 힘을 보탤 수도 있다. 각 도시는 이제 효율 지상주의로 만들어졌던 도시공간구조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영국의 문화계획학자 비앙치니는 유럽도시들이 겪은 이와 같은 변화를 일컬어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라고 불렀다. 지역계획, 지역경제, 지역산업, 지역행정, 지역공간이 모두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고, 따라서 이에 대비한 통일된 전략이 바로 지역문화정책이어야 한다. 이제 지원금 몇 백만원을 두고 예술인과 자치단체 사이에 실랑이를 벌이는 수준의 지역문화정책은 벗어 던질 때가 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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