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 (8) 소고기 구이

"뭐 먹으러 갈까?" "고기나 굽지, 뭐."

한국인의 가장 만만한 외식메뉴이자 사랑받는 술안주인 고기. 식당에서든 집에서든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불판에 고기를 얹어 '맛있게'(?) 구워서 먹는다. 적어도 이 그림만 본다면 고기구이는 '요리'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음식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미국 뉴욕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한 유명 블로거가 소고기 스테이크 굽는 법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구입한 고기의 보관부터 준비단계, 본론인 굽기와 먹기까지 그가 소개한 '공정'은 대략 10가지가 넘었다. 그 후 기자는 어느 자리에서도 '집게'를 놓지 않게 되었다. 나와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식당 종업원들조차 얼마나 마구잡이로 고기를 구워 왔는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고기는 사진처럼 덩어리가 크고 두툼해야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즐기기에 좋다.

고기는 어떻게 굽느냐, 어떻게 먹느냐, 더 근본적으로는 어떤 고기를 쓰느냐에 따라 무한한 맛의 경우 수가 나올 수 있는 식재료다. 좀 더 세분화하면, 고기 두께·크기를 어느 정도로 하느냐, 어떤 불(참숯, 프로판가스 등)에 굽느냐, 불의 세기는 어떻게 하느냐, 얼마 동안 굽느냐,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오래 숙성시켰느냐 등에 따라 고기는 천상의 맛에서 지옥의 맛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고깃집에서 가장 흔히 보게 되는 풍경은 불판이 채 달궈지기도 전에 고기를 올리는 것이다. 이러면 고기 겉면의 바삭한 질감(클러스트)을 즐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굽는 도중 육즙이 다 흘러나와 고소함과 촉촉함이 크게 저하된다.

또 하나는 타거나 말거나 고기를 무한정 불판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당연히 고기는 수분이 완전 증발돼 말라 비틀어지고, 딱딱하고 질긴 돌덩이 같은 고기가 되고 만다. 1인당 2만~3만 원이 훌쩍 넘는 최고급 한우이면 뭐하나. '순간의 방심'이 수만 원짜리를 수백 원짜리로 만들어버리는데.

이러한 문제는 한우전문점 등 고깃집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종업원들은 사람 수, 취향에 상관없이 무조건 많은 양의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고 본다. 아마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또한 고깃집들은 부위를 막론하고 고기를 너무 얇고 작게 썰어 내어준다. 아마도 한 입에 먹기 좋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런 고기는 샤부샤부 먹듯 센불에 살짝 구우면 몰라도, 조금만 지체하면 퍽퍽하게 마르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 두툼한 두께와 크기이어야 깊은 육향과 부드러운 질감, 촉촉한 육즙이 모두 살아 있는 고기를 먹기에 용이하다.

이 경우 반드시 유의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공정'은 대충 익었다고 가위를 들이대지 않는 것이다. 센불에 익힌 고기는 육즙이 가운데 몰려 있어, 갑자기 자르면 육즙이 새어나오고 맛의 전체적 균형이 깨진다. 약한 불 위나 접시에 최소 5분 이상 그대로 두어야 육즙이 고루 퍼지고 오랫동안 촉촉함이 유지된다. 접시 위에 덩어리째 서빙되는 서양식 스테이크를 떠올리면 이해가 한결 빠를 것이다.

다 구워졌다고 끝이 아니다. 먹는 방법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소금·참기름 등에 찍어 먹기도 하고 마늘·고추·쌈장과 함께 쌈채소에 싸 먹기도 한다.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소금이 최상의 선택인데, 이때도 찍어서 먹기보다는 미리 소금 간을 해 굽는 게 좋다. 참기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이다. 매우 강한 맛과 향을 지닌 양념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고소한 소고기가 참기름과 만나는 순간, 소고기구이는 참기름양념구이가 되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쌈 역시 강한 것들의 '합동공격'으로 고기 맛을 살리기보단 죽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좀 허탈하겠지만 위의 모든 과정은 고기 맛을 결정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걸 완벽히 한다 해도 도저히 맛이 나려야 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그건 바로 고기 질 자체가 형편 없을 때다. 오랜 기간 냉동한 고기, 숙성이 덜 된 고기, 부적합한 사료를 먹인 고기, 나이 든 소의 고기, 도축·보관 환경이 부실한 고기는 아무리 금강불괴 내공의 조리사가 굽는다 해도 맛이 없다.

보통 우리는 '갓 잡은' '신선한' 식재료를 최고로 치지만 소의 경우 그 반대에 가깝다. 도축한 직후의 소는 근육이 잔뜩 움츠러드는 이른바 '사후경직' 현상 때문에 매우 질길 수밖에 없다. 맛이 제대로 나기 위해선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80일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서늘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에서 장기간 숙성시킨 소고기는, 고기가 더 치밀해지고 육질이 연해지면서 풍부한 맛을 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고기가 훨씬 더 맛이 좋으며, 심지어 숙성 기간은 '갈 데까지 가는 게 좋다'고까지 말한다.

일반적으로 소고기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인 눈에 보이는 지방무늬, 즉 '마블링'은 맛의 부분 요소일 뿐이다. 그보다는 숙성 환경과 정도가 더 결정적이며 품종, 먹이, 활동량 등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마블링을 주요 기준으로 삼는 나라가 한국과 미국, 일본 세 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도 간접 확인된다.

장기 보관을 위해 흔히 선택하는 냉동 역시 고기에 치명적이다. 냉동을 하면 고기가 원래 상태를 유지할 것 같지만 고기 속 수분이 얼음 결정이 되면서 부드러운 세포막을 끊임없이 손상시킨다. 지방과 색소의 산화도 계속 일어나서 산패한 맛이 축적되고, 질기고 물기 없는 고기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해동 후 조리 과정인데, 한 전문가는 "조리를 위해 녹이는 순간 깨진 병에서 새는 음료수처럼 수분(육즙)이 흘러나와 각종 영양분이 손실되고 씹는 맛이 푸석한 저급 고기가 된다"고 지적한다. 냉동 보관시 손상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냉동할 땐 최대한 낮은 온도에서 급속으로, 해동할 땐 0℃ 근처에서 최대한 천천히' 뿐이다.

이상의 내용은 주로 소고기에 국한해 정리한 것이지만, 큰 틀에서 돼지 등 대부분의 고기에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봐도 된다. 고기 하나만 잘 고르고 잘 구워도 주변 사람의 대접이, 인간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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