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연둣빛 아기 속살에 담긴 겨울눈 생존전략

겨울나기 전략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숲에도 추위가 닥쳐오고, 얼어붙은 땅 위로 의연하게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눈을 내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떡갈나무와 같이 참나무류에 속하는 나무들처럼 비늘이 겹겹이 덮인 겨울눈이 있는가 하면, 목련의 겨울눈과 같이 털이 무성하게 나와 있는 것도 있다.

이렇게 나무들의 놀랍고 다양한 적응력과 경이로운 자연현상을 겨울눈을 통해 바라보면 '모든 생명이 살아 있으며,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자연에 동화된다고 했던가…….

나무의 겨울눈

나뭇가지의 시스템은 나무의 눈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가지의 시작 부분에 겨울눈이 계란 모양으로, 때로는 타원형으로, 때로는 빼족한 모양으로, 나뭇가지의 맨 윗부분과 가지의 옆부분에 앉아 있다. 맨 위에 앉아 있는 것을 정아(頂芽), 가지의 옆에 있는 것을 측아(側芽)라 한다.

이들은 가지의 높이 생장이 끝나는 8월과 9월께에 이미 추운 겨울을 위해 준비되어 털이 무수히 많은 모양을 한 눈(목련, 갯버들), 가죽 모양을 한 눈(오리나무) 또는 가죽 모양을 하고 있으며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덮여 있는 눈(칠엽수)과 비늘모양을 한 눈(참나무류) 등의 모양을 하고 있다. 또 겨울눈을 덮고 있는 비늘 같은 부분을 아린(芽鱗)이라 하는데, 모든 나무의 눈이 아린으로 덮여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밤나무나 검양옻나무와 같은 나무는 겨울눈을 보호해주는 아린이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나무가 어떤 모양의 겨울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마치 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각각인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다양한 모양들은 추위나 건조현상을 피하기 위한 나무들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다. 온도가 상승하는 이른 봄이 오면 이윽고 겨울눈에서 잎들이 돋아날 것이다.

개옻나무 눈. /김인성

겨울눈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면 그 안에 아기속살 같이 부드러운 연둣빛 부분들을 볼 수 있는데, 가장 위쪽의 뾰족한 부분이 생장점이 된다.

이 생장점은 계속적으로 나무의 가지가 높이 자랄 수 있는 부분이 된다. 겨울눈은 완전히 생장한 나뭇가지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미생장 단계일 뿐이다. 자라나는 아기처럼…….

나뭇가지의 시스템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도 있고 가을이 오기 전에 미리 잎이 지는 종도 있지만, 대부분 넓은잎나무는 겨울이 되기 전에 잎을 떨군다. 잎이 지는 것은 나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다. 겨울에는 땅이 얼어 수분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물이 필요한 잎을 계속 자신의 몸에 매달아 두었다가는 공연히 에너지 손실만 생기고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는 겨울이 되기 전, 바쁘게 겨울눈을 만들고는 잎을 모두 떨어뜨려 한겨울동안 긴 숨을 쉰다.

   
 

여름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잎이었지만 겨울눈 속에 하얀 속살 같은 생명줄을 남겨두고는 모두 떨어뜨려버리는 버림의 철학을 나무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김인성(우포생태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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