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 (7) 자극적인 음식 맛의 기원

최근 기자는 경남의 한 유명 냉면 전문점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새콤달콤한 맛의 육수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식재료인 가쯔오부시(가다랑어포) 맛이 강하게 났던 것이다. 음식 관련 블로그 등 자료를 찾아보니 비단 기자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심지어 일부 냉면·밀면 전문점은 가쯔오부시 육수를 쓴다고 공개적으로 밝혀놓고 있었다.

가쯔오부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마른멸치' 같은 존재다. 우동, 소바(메밀국수) 등 국내에 보편화된 일본요리 대부분에 이 재료가 들어간다. 가쯔오부시 육수에 간장, 다시마, 청주, 설탕 등을 더해 만든 게 우동 국물이고 소바 찍어 먹는 쯔유인 것이다. 맵고 짠 우리 음식과 비교해 일본은 '새콤달콤'한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맛은 대체로 이 조합에서 탄생한다.

일본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소바(메밀국수). 소바를 찍어 먹는 쯔유는 가쯔오부시, 다시마, 간장 등을 이용해 만든다.

그렇다면 어찌 된 것일까? 왜 이러한 '일본의 맛'이 우리 전통음식인 냉면에까지 치고 들어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 음식은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통틀어 가장 자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식의 대명사인 김치도 김치지만, 매콤달콤한 떡볶이가 이른바 '한식 세계화'의 대표 메뉴로 당당히 선정되는 나라이다. 국내에 자리 잡은 다른 나라 음식들, 이를테면 일식·중식·이탈리아식·미국식·동남아식 등과 견주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양념 사용량에 관한 한, 누가 봐도 단연 압도적이지 않은가?

물론 '밥'(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적 특성상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밍밍한 밥을 넘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맵고 짜고 시고 단 음식이 따라 붙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음식이 원래부터 이렇게까지 자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삼면이 바다인 지리적 조건, 저장성 등 때문에 짜게 먹는 경향은 있었지만 맵고 단 맛은 비교적 근래에 정착됐다. 익히 알려진 대로 한반도에 고추가 들어온 시점은 조선 중기인 1500년대였고, 이것이 또 대중화되는 데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단맛은 앞서 암시한 것처럼 확실히 일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설탕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점 자체가 일제강점기 들어서였으며, 그 전까지는 과자·음료수 등 주로 간식류에만 꿀·조청을 사용하는 정도였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일본 음식, 그 중에서도 '간장'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일제강점기 들어 일본의 간장(왜간장·진간장) 제조업체들은 한반도에 진출해 대대적인 영업 활동을 했다. 일본의 간장은 콩과 소금물만으로 맛을 내는 한반도의 간장(조선간장)과는 달리 밀이나 쌀, 보리 등이 들어가 달콤한 맛이 났다"고 전한다.

이 일본식 간장은 해방 이후에도 단맛 나는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산분해간장·혼합간장으로 진화(?)를 거듭하게 되는데, 이를 넣은 한국음식 역시 더욱더 들척지근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과 가까운 경남·부산지역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일본의 맛'에 점령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부산의 경우 한때 일본인의 수가 국내인보다 더 많은 적도 있었다. 일본의 흔적은 '부산오뎅', '의령소바' 등 지금까지도 음식 이름 자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냉면·밀면 육수 등에서 느껴지는 새콤달콤한 맛 역시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우리 스스로 적극 개척한 맛일까?

매운맛의 기원에 대해선 약간의 논란이 있다. 한국음식 전문가로 잘 알려진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앙법·대동법이 실시된 조선 후기에 소금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체재로 고추·고춧가루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추정하는 반면, 황교익 씨는 주 교수의 추론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더 결정적이었다고 반박하는 것이다.(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마산 출신이다.)

황 씨는 가난과 열악한 저장·유통시스템 등으로 저급한 음식재료를 구할 수밖에 없는 도시민들이 그 재료의 맛을 숨겨 먹을 만하게 조리하기 위해 고춧가루·고추장 등을 과도하게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의 견해대로라면 우리 음식이 현재처럼 맵고 칼칼해진 것은 그리 멀지 않은 1960년대 즈음이 된다.

간혹 '매운탕이 맛있나 맑은탕(지리)이 맛있나'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순전히 이는 '음식재료'에 달린 문제다. 신선하고 그 자체로 맛이 깊이 밴 재료라면 맑은탕이 정답에 가깝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양념을 많이 써 최대한 나쁜 맛을 죽이는 게 현명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빨리 상하는 재료인 생선 등 해산물의 경우를 보자.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신선한 생선회와 해산물을 먹지만, 내륙의 대도시는 1990년대 이전까지 고급 일식집 등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양식이 보편화되지도 않았고 신선한 재료를 보관할 기술도 미약했던 시절, 도시민들은 돈이 있어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먹을거리 자체가 부족했던 지방 중소도시는 밥이라도 많이 먹기 위해 반찬·국 등 모든 음식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1930~1940년대 세계전쟁에 뛰어든 일제의 무자비한 약탈 역시 우리 음식 맛을 자극적으로 만든 주요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혹자는 우리 음식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식이란 원래 그렇게 나라와 지역 간에 주고받고 교류하면서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 음식인 소바가 조선의 한 승려로부터 전파됐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더더욱 불쾌해 할 것이 없다. 다만 그 '교류'의 결과물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들척지근한 냉면 육수의 맛, 과연 자랑할 만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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