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방의회는 큰 시련을 겪었다. 의장단 선거를 둘러싼 금품수수 때문이다. 사람들은 ‘명예’를 생명으로 하는 지방의회 의장직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는 강도높은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금품수수 회오리의 진앙지인 진주시의회는 이 때문에 도의회와 더불어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 진주시의회가 11월 30일 정순명(60·상대2동)의원을 새 의장으로 선출했다. 아직 ‘자숙중’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기는 하나 어떻든 진주시의회가 아픔을 딛고 새로 일어섰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선거 다음날인 1일 축하객들이 연방 의장실을 들락거리는 산만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의장은 침착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인터뷰도중 한 방문객으로부터 “주가가 바닥까지 하락한 진주시의회를 맡아 어깨가 무겁겠다”는 지적을 받자 “주가란 기복이 있는 것이다. 바닥을 쳤으면 다시 오르지 않겠느냐”고 응수했다. 길고 긴 홍역에도 불구, 의외로 여유만만한 모습이었다.



금품수수라는 멍에를 아직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터라 이번 의장 선거를 첫 질문으로 택했다. 혹여 이번에도 담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깔고 한 질문이었다.



정의장은 이에 대해 거듭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데 모든 의원들이 명시적으로 동의했다며 “그 흔한 식사 한번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선거만큼 모범적인 선거는 없었다고 봅니다. 출마자들끼리 모여 누가 당선되더라도 힘을 합쳐 실추된 의회위상을 되찾자는 각오까지 다졌습니다.”



정의장은 이어 돈없는 사람도 의장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규칙’을 보여준 것도 이번 선거가 거둔 성과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물음에 “사실 돈이 없다”며 자신의 내막을 잘 아는 동료의원들이 이런 점까지 감안해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추문에 말리는 지방의회에는 이른 바 분파가 있다. 그 성격도 단순하게 의견을 달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진영을 적대시하는 것이어서 숱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금품수수에 이어 의장구속이라는 철퇴를 맞은 진주시의회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의장은 자신이 의장으로 선택된 두번째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중립적인 성향 덕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래저래 골이 진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적임자라는 사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서, 그런 만큼 다른 의원들을 잘 포용해야 할 책무를 더 깊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도중 정의장은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이야기를 두차례나 했다. 그러나 이 속담은 땅의 성질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다. 모래가 많은 땅이 제대로 응고되지 않듯 의원들의 의지가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공허한 결과만 낳고 만다.



정의장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금품수수 회오리가 던져준 충격이 너무 컸다며 감히 이 사실을 도외시한채 본분을 저버리는 의원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던 운영위원장은 “대다수 의원들이 의정활동 자체에 의욕을 잃었을 정도였다”며 정의장의 말을 뒷받침했다. 두 사람의 지적대로라면 세찬 폭풍우가 땅의 성질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는 설명이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이야기로 들렸다.



“이제 새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일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당장 5일부터 열리는 정기회에서 이런 각오를 보여주겠습니다.”



그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의회위상을 되찾는 방안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지역구 주민들의 목소리에 거듭 귀를 곧추세우는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의장은 격식이나 권위를 크게 따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말하는 스타일이나 용모가 편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겼다. 진주시의회내에서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는 운영위원장의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들렸다.



회 운영 문제는 그렇다 치고 진주시민들의 진짜 궁금증은 의장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행위가 이번 기회에 사라지겠느냐는 것이다. 외견상 이번 의장단 선거가 깨끗하게 치러졌고 의원들의 각오도 대단한 만큼, 진주시의회가 다른 지방의회에 앞서 ‘맑은 선거관행’을 확립할 가능성은 훨씬 커보인다.



정의장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또다시 돈선거 악몽이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하느냐는 질문에는 뚜렷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그는 이런 관행이 지속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다른 시기에,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지금 못박아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정의장의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지금과 같은 ‘자숙’이 일정 시간이 흘러 사라질 경우 또다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의장직이라는 자리가 그만큼 뭇 의원들을 유혹하는 요소가 많고, 그런 자리에 안달하는 문화가 깊고도 넓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언론에 대해 적지않은 불만을 토해냈다.



“잘못을 질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얼룩진 면만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자숙하는 의원들을 격려하고 잘한 사람에게 칭찬을 해 준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금품수수 관련의원 전원에 대해 의원직 사퇴를 요구한 시민단체는 “의원들이 진정으로 자숙하지 않고 겉으로만 전비(前非)를 뉘우치는 양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의장의 언론에 대한 당부와 시민단체의 주장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차이속에 아마 진주시의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들어있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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