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44·창원시 대방동)씨는 지난해 10월 중학교 3학년이던 큰 딸을 호주로 유학 보냈다. 그리고 오는 6일, ㄱ씨는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함께 호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들 가족은 한국에서 매월 교육비를 포함, 300만~400만원을 지출하던 중산층. 그가 호주로 가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제 명대로 못 살 것 같다”고 느껴서다. 어릴 적부터 무용을 하던 딸아이를 각종 콩쿠르에 내보내보니 안전장치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무대에서 어른들에게 이끌려 다니는 형국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단다. 우리나라 교육현실로는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무용을 가르치기도 힘들고 어차피 유학을 보내야 할 것 같아 일찌감치 유학을 보냈고, ㄱ씨 자신도 이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공부를 할 계획으로 온 가족의 호주행을 결심했다. 이를 위해 ㄱ씨는 이미 3차례 딸아이와 자신이 다닐 호주의 학교를 방문해 직접 수업에도 참가해 보는 등 사전 준비를 마쳤다.

역시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을 원했던 ㅇ(52)씨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지난해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아내와 당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었던 자녀 둘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투자이민을 결심했다. 집을 급하게 팔고 입국허가를 기다렸지만 6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고, 이씨 홀로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리도 잡고 직장도 미리 구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아파트에 전화기 한대 놓고 이곳저곳 직장을 구하러 다니기를 6개월여. 지금은 투자이민에서 취업이민으로 형태를 바꾸어 터를 잡았다.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미국사람 되기’ 등 이민 관련 인터넷 동호회와 이민알선업체들의 설명회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민은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지난 해 순수이민을 목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은 건수는 도내의 경우 26건(전국 2만 343건)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이나 학업 목적으로 외국에 나가 시민권을 얻어 실질적인 이민을 하는 형태도 많아 수치상이 아닌 현실적으로는 한국을 떠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발급된 여권은 205만 6101건. 이 중 경남이 차지하는 비율은 3%정도로 수치상으로만 보면 경남을 서울 등 수도권일대의 ‘이민바람’의 범주에 뭉뚱그릴 수는 없다. 그러나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비율이 3~8%정도인데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젊은이 중 62%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민은 벌써 ‘특별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언제든 여건만 되면 택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실제 2000년도에 실시된 한 통계에서 18~40세의 71.9%가 이민을 원한다고 했고, 최근의 한 통계에선 20대 젊은이 중에서만 62%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 될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출국날짜가 다가오니 착잡하다.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기득권을 버려야 하고, 이웃을 부모를 두고 가는 것 아닌가·”라고 심정을 토로하는 사람, “요즘 한창 언론에서는 이민 떠난 사람들의 허와 실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오르내린다. 주로 부정적 시각으로 보도를 하는데 누구나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것이다. 어디서든 잘 살거나 혹은 못살 확률은 반반이다”며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람, “학생 때 어학연수를 다녀와 토익점수가 꽤 높지만 취직이 안 돼 차라리 외국에 나가 취업하고 싶다”는 취업준비생 등등.

이민을 원하거나 결정한 사람들의 이유도 가지각색이지만 모두 불안하기만 한 ‘이땅의 현재’를 탈출하는 방법의 하나로 선택하는 것은 매한가지.

경남대학교 정치언론학부 박성관 교수는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개인·가족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며 “젊은이들의 열풍은 인터넷 등 시공간을 초월한 정보 습득의 기회가 많은데다 국내의 고학력 젊은이들 수용이 한계에 도달, 자기능력에 맞는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생계에 대한 불안과 실직, 그리고 자녀교육문제가 자꾸 국외로 눈을 돌리게 한다는 뜻이다.

사회학자들도 “먹고 살기 위해 이민을 선택했던 민족의 암울한 시기가 있었지만 신종 이민은 또다른 삶의 질을 추구하는 행태”라며 “질높은 교육과 생활을 원하는 데 비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풍토가 이들을 다른 나라로 내몰고 있다”고 진단한다. 생계에 대한 불안과 실직, 그리고 자녀교육문제가 자꾸 국외로 눈을 돌리게 한다는 뜻이다.

떠나는 자들을 붙잡을 명분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 이것이 바로 우리 이 땅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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