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맑은숲 한의원 유준기·맹향운 부부

샌님

그러니까 맑은 숲 한의원 유준기 원장은 이런 사람이다.

어느 날 창원 중앙동에서 일을 보고 그의 한의원에 잠시 들렀다. 한의원에 가면 사람 모양 인형에다 경락과 경혈을 표시해 놓은 게 있다. 경혈 인형이라고 부른다. 전부 벌거벗은 남성 모양이다. 유준기 원장 진료실 책상에도 이게 하나 있다. 그런데 이 인형 성기 부분에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아니! 저거 민망해서 붙여놓은 거예요? 포스트잇.”

인체모형에 붙여 놓은 포스트 잇./김구연 기자

“어 민망해서.”

“의학을 하시는 분이 뭐가 민망해!”

“꼬마들이 와서 이걸 보면 꼬추다~ 그러는데 어떡해!”

“참 내, 저게 더 웃긴다!”

이름 그대로 유순하고 준수하고 기품 있는 이미지. 번듯하니 오직 바른 생활만 해왔을 것 같은 인상. 이를테면 선비 같은 느낌이다.

형님

그의 아내 맹향운(44) 씨.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것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신교단이다. 어릴 적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알라나 하느님이나 같은 거 아니에요? 그쪽 애들은 알라라 부르고 우리는 하느님이라 부르는 것뿐이잖아요.”

이 맹랑한 말 탓에 목사한테 엄청나게 혼났단다. 그런데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맹형님은 중학교 교사 생활을 15년 동안 했다. 팔팔한 성격에 학생 주임까지 했다.

“나? 터프하지. 근데 신랑한테는 애교를 많이 떨거든. 왜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네. 내가 남자 같아요? 서후, 대답을 안 하네!”

터프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해 눈물이 많다. 그는 이름 그대로 맹랑하고 향기롭고 운치 있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들은 그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이었다. 맑은 숲 한의원 진료실에서 열린 경제 강연을 들으러 갔었다. 진료실을 강연장으로 내어 주다니, 독특한 부부시네,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뒤풀이까지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 춥지 않은 가을날 저녁 동읍 자여 한 시골집 앞마당에서 다시 만나 삼겹살을 구웠다. 어둠은 짙었고, 이야기는 깊었다.

맑은숲 한의원 유준기·맹향운 부부./김구연 기자

객지

경남에 오신지 그럼 얼마나 됐죠?

맹향운 - 만 2년? 오자마자 한의원은 창원 중앙동에서 열었고.

맹향운 씨./김구연 기자

유준기 - 집만 인제 진해 살다가, 창원 대방동에 마당 있는 집 전체가 전세로 나온 거야. 그래서 거기로 갔지. 일 년쯤 됐는데, 집주인이 집을 팔았어. 우리한테 부탁하는 거야. 집 산 사람이 지금 바로 들어오고 싶어 한다, 미안하다, 어떻게 안 되겠느냐. 어떡해 그래 줬지. 그러고는 동읍 쪽에 집을 찾아봤어. 비싼데다가 괜찮은 느낌의 집이 없어. 그냥 동읍 근처에 있으면서 살집을 슬슬 알아보자. 그래서 진영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온 거야.

맹향운 - 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에 오니까 답답해서 못 살겠어요. 빨래에서 햇빛냄새가 안 나.

맹향운 - 난 처음에 여기 와서 너무 놀란 게 눈이 5㎜ 왔다고 휴교를 하는 거예요!

유준기 - 서울에 있을 때는 5㎜가 뭐야 5㎝가 와도 휴교를 안 하는데.

맹향운 - 그것도 방송을 하는 거예요. 아파트에서. 오늘 눈이 와서 휴교한다고. 어머, 5㎜ 왔는데? 살짝 왔는데도 사람들이 운전을 못 하는 거예요.

유준기 - 그 정도는 눈이 아닌데 하면서 가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어디서 덜덜 덜덜 소리가 나는 거야. 보니까 체인을 감았어!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해! 5㎜ 갖고는 체인을.

맹향운 - 아무튼 맨 처음에는 집안일 때문에 내려와서, 집안일 끝나면 빨리 가야지 그랬어. 서울에 친구들이 다 있으니까. 그런데 내려와 있다가 서울에 가니까 머리가 다 아파. 사람 많은 거 보니까 멀미가 나더라고.

유준기 - 이제는 그냥 여기 분위기에 이렇게 스며들 것 같아요. (아내를 보며) 이제 못 벗어날 거 같지?

고향은 어디세요?

맑은숲 한의원 유준기 원장./김구연 기자

유준기 - 나는 서울이고. 아버님은 진주시고. 근데 아버님은 아예 부산에서 다 사셨죠.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는 부산에 계시고. 나머지 친척이 마산에도 계시고 사천에도 계시고. 어머니는 마산여상 나오셨고, 집은 함안이셨죠.

맹향운 - 나는 내려온 지 2년 만에 경상도 말을 써. 우리 신랑은 아예 못해요.

유준기 - 그건 자기가 울산에서 자랐으니까 그렇지. 근데 한 번씩 할머니들 오시면 못 알아듣겠어요. 네네? 그러면 할머니가 뭐라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모르겠어. 그러면 아 네~ 그러고 끝내요. 어쩔 수 없어요. 단어도 모르겠죠. 억양도 다르죠. 창녕, 산청 쪽에서 오시는 할머니는 더 모르겠어요.

부부

두 분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어요?

유준기 - 자기 맨 처음에 사귈 때?

맹향운 - 새침했다고 해야 하나 무섭다고 해야 하나.

유준기 - 지금은 완전히 그냥 애굣덩어리지, 나한테는.

맹향운 - 국민학교 친구들이 신랑한테 그랬어. 저 무서운 여자랑 어떻게 사느냐고.

유준기 - 결혼하고 옛날 친구들이 놀러 왔는데, 어떻게 여자 친구보다 남자친구가 더 많아! 이거 뭐야 그랬지. 초등학교 친구들이 그래요. 어떻게 얘랑 결혼하게 됐어요? 이렇게 무서운 애랑. 그때부터 아, 막 스트레스받는 거야. 이거 결혼 잘못한 거 아냐?

맹향운 - 제가 중학교 선생님을 했어요. 과목이 뭔지 아세요? 도덕! 15년 했어요. (맹형님은 철학과 석사다.)

유준기 - 제가 상지대에서 교수할 때, 나는 육지선다로 시험을 봤어. 예를 들어 정답이 1,2,3,4라고 하면, 배점이 10점인데 하나 놓쳤다, 마이너스 2.5점. 5하고 6을 선택했다 하면 마이너스 5점. 그래서 1등이 25점 꼴찌가 마이너스 75점이야. 한 학기에 중간 기말 고사 나는 6번 봤어. 치료를 하려면 확실히 알아야죠.

맹향운 - 못 됐어.

아무튼, 두 분 참 독특하세요.

유준기 - 우리 안 독특해~.

맹향운 - 우리는 다큐멘터리 이런 거 자주 봐요.

유준기 - TV는 내 친구예요 만날 봐야 해요.

맹향운 - 저는 주로 스포츠고요.

유준기 - 저는 돌아가는 거 다 봐야 해요. 다큐멘터리 계통은 다 섭렵을 해버리지요. 재밌잖아. 내가 그걸 알려면 책을 엄청 봐야 하는데 알아서 다 정리해주잖아요.

맹향운 - 신랑 때문에 힘들 때가 언제냐면 만약에 사극을 보면 거기에 대한 내용을 쫙 프린트해줘. 공부해야 해! 요즘 <뿌리 깊은 나무>라고 세종에 대해서 하잖아요. 1대 왕부터 다 프린트해줘요. 왜 저렇게 됐는지를 공부를 하래.

유준기 - 그래야 흐름을 알지.

맹향운 -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특이한 게, 다 내려놓고 제주도 가셨거든. 아무 연고도 없는데 두 분 이서, 아들하고도 안 산다, 니들은 니들 삶을 살아라. 그러고 제주도 가서 농사짓거든. 그런 기질을 내가 닮을 거 거든. 내 동생하고 내가 대학 졸업하자마자 둘이 앉혀놓고, 엄마 아빠 재산이 얼마 되지 않지만, 재산 포기 각서 써라. 너희들 대학까지 보내줬으면 부모로서 의무는 다했다. 엄마 아빠 재산은 어디 어디 헌납을 할 거다. 맨 처음에는 되게 서운하더라고.

그래서 우리 신랑은 의사를 하면서도 남들처럼 처가에서 뭔가를 얻는다는 거 전혀 없이 시작했거든. 아예 그런 거 기대도 안 했고 둘 다. 지금 우리 부모님은 두 분 이서 아주 잘 살아. 창도 배우시고 기타도 배우시고. 나이 70이신대도. 우리 엄마 아빠 같이 살고 싶어.

하늘 아래 첫 한의원

맑은 숲이란 이름으로 한의원이 꽤 많던데요.

맹향운 - 우리 신랑이 몇 명 친구를 합쳐서 시작했어. 일주일에 이틀을 새벽 두세 시까지 공부하고. 남들 말하는 네트워크지만, 내가 보기엔 굉장히 순수하게 시작했어. 근데 지금은 40군데가 넘었어. 왜냐면 그 시스템이 맘에 드는 거야. 다른 데는 돈을 너무 많이 뺏어가거든. 우린 여기 아무것도 없거든. 그 대신 광고를 해야 하니까 광고료를 내는 거뿐이야. 많이 안 내고 안 뺏어 가니까. 그런데 너무 많아지니까 우리 신랑 콘셉트에도 안 맞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한의원 이름을 바꾸려고 페이스북 창원시 그룹에 이름을 하나 새로 지으려고 한다, 그랬더니 결론이 유준기 한의원으로 해라야. 그래서 다음에 이름을 바꾸면 유준기 한의원으로 하려고.

유준기 - 맑은 숲이란 이름도 특허를 내려니까 일반적인 이름은 다 특허 등록이 돼 있었어요. 맑은 숲은 약간 안 맞잖아요. 푸른 숲이고 맑은 물이 정상이잖아. 맑은 숲으로 특허 등록된 이름이 없어.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한 거예요. 저는 산소 치료 전문이거든요. 고압 산소 치료기가 있어서. 산소, 맑다, 숲 속이다. 그렇게 연결되는 거죠.

맹향운 - 사실 우리 신랑이 원하는 한의원은 할머니들이 걸어서 올 수 있는 곳, 시골에서 할머니들이랑 국밥 끓여 먹고 감자도 삶아 먹고 그런 거거든.

유준기 - 10년 전부터 하늘 아래 첫 번째 한의원을 생각하고 있었어. 지리산 해발 700m. 왜 그러냐면 내가 대학병원에만 있다가 보니까 암 환자들이 갈 데가 없어요. 수술도 받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물 좋고 공기 좋은 데서 몇 달 쉬고 싶은데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민박집 가 있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해발 700미터에 한의원 하면 오시면 되잖아. 그 생각을 많이 했지.

심심하면 토요일 오후 맑은 숲 한의원에 슬쩍 가보시라. 그것이 경제 강연이 될지, 예술 공연이 될지, 영화 상영이 될지는 모르지만, 진료실은 언제나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맑은 숲 한의원 부부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외향적인 맹형님이 새로 사람을 사귀고 판을 벌여 놓으면 내성적인 유 원장은 그 안에서 신나게 논다. 

지난해 10월 8일 맑은숲 한의원에서는 김광수 소장의 경제강의가 열렸다./이서후 기자
김광수 소장이 맑은숲 한의원에서 경제강의를 하고 있다./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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