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간판을 일러 도시의 꽃이라고 합니다. 이 비유를 경제적 비유로 바꾸면 자본주의의 꽃이 되기도 하는 게 간판이라는 얼굴입니다. 요즘 경남도민일보의 기획 시리즈물 간판문화에 관한 이슈진단을 보면서, 이제 간판은 광고(廣告)를 위한 것이 아니라 ‘광고(狂告)’를 위한 광란 쪽으로 치닫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현기를 느꼈습니다.

우리의 비뚤어진 간판문화의 원죄는 대부분이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무질서의 극치의 꽃으로 백화쟁발을 거듭하는 꼴사나움에 대하여 어떤 건축가는 이렇게 냉소했습니다. “어차피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다면,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에게 받았더라면 이런 쓰레기 간판문화는 없지 않았겠느냐”고 말입니다. 도시미관상 간판에는 세련된 감각도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의 얼과 멋이 조화되지 않으면 원조간판 ‘양두구육(羊頭狗肉)’만 꽃피울 우려가 큽니다.

 

<엄마손>식당에 가서 밥
<봄눈 겨울비>에 가서 차
<타는 목마름>서 술 한잔
이런 ‘낭만에 대하여’
얼 불러
취할 줄 아는 것도
간판 꽃밭에 물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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