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거나 혹은 섬세하거나…역동적이며, 섬세한 용의 모습

중국문헌인 <광아(廣雅)>(위나라 장읍이 편찬한 자전)>의 익조(翼條)에 보면 한 동물을 이렇게 묘사해놨습니다. "인충(鱗蟲)중의 우두머리이며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낙타(駝)의 머리, 사슴(鹿)의 뿔, 토끼(兎)의 눈, 소(牛)의 귀, 뱀(蛇)을 닮은 목덜미, 조개(蜃)와 같은 배, 잉어(鯉)의 비늘, 호랑이(虎)의 발, 매(鷹)의 발톱이다. 그중에서 9×9 양수인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을 울리는 듯하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밑에는 명주(明珠·여의주)가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박산(博山)이 있다." 무엇일까요? 바로 '용'입니다.

용은 사실 상상의 동물로 철저하게 만들어졌죠. 중국에선 용을 전문으로 그린 화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남아있는 화가는 송대의 진용(陣容)입니다. 교당 김대환(84)은 "그가 그린 '구룡도(九龍圖)'를 보면, 귀는 뿔처럼 뾰족하고, 코는 돼지처럼, 수염은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짙은 구름 속 거대한 파도를 헤치는 모습이 신비스럽지 않나? 용을 그린 화가라면 진용의 '구룡도'를 한 번쯤은 봤을 것"이라며 그의 작품을 예찬했습니다.

도내에도 '용'을 즐겨 그렸던 작가가 있었을까요. 교당 김대환과 박은주 전 경남도립미술관 관장은 "'용'을 그렸던 작가는 있지만, 즐겨 그렸던 작가는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도내 작가의 용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역동적인 청룡 = 작년 경남도립미술관서 열린 '지역작가 조명전'에서 선보인 정상복(1912~1997) 화백의 '아! 고구려-청룡'(1995년 작)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동양의 전통적 수묵화를 서양의 수채화로 재해석, 아름다운 색채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아! 고구려-청룡' 속 용은 뚜렷한 형체를 보이진 않지만 하늘을 휘감아 오르는 모습이 기운차 보입니다. 그가 모티브로 삼은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입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는 무수한 용이 등장합니다. 네 개의 벽에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져 있는데 동쪽을 보면 청룡도(靑龍圖)가 있습니다. 청룡은 사신 가운데 동쪽 기운을 맡은 태양신을 상징, 긴 혀를 내밀고 몸에는 비늘이 있습니다. 역동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정상복, '아! 고구려-청룡'.

마산 출신의 김영진 화백이 1988년에 그린 '등룡도'에도 청룡이 있습니다. 부릅뜬 눈과 붉은 여의주를 문 모습이 범상치 않지만 해학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천에 먹으로 그린 그림으로 청룡이 작품을 가득 채웠습니다. 정상복 화백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날고 있지만 좀 더 역동적인 느낌입니다.

◇한층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용 = 조선시대에서 용 그림은 기우제(祈雨祭)와 관련해 빈번하게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국립진주박물관서 열리는 '용, 辰'에서도 그러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조선 초기의 문인화가 신잠(申潛, 1491~1554)이 그린 '운룡도'입니다. 용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으로 왼쪽으로 휘몰아치는 사선은 비바람으로 표현했습니다. 뭉게구름 대신 비바람을 직접 표현한 것이 기우제에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측게 합니다.

2012년 임진년을 언론에서 '흑룡의 해'라고 부릅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에 따르면 12지(支) 중 '壬'은 방향으로는 북쪽이며, 계절로는 겨울, 동양의 오행설에 따르면 물(水)이고, 색깔로는 검은색(玄 또는 黑)에 해당돼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박생광 '여의주도', 김영진 '등룡도'.

1904년 진주에서 태어난 박생광 화백의 '여의주도'에서도 흑룡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KBS1 TV의 <진품명품>에도 나갔죠. 박생광 화백은 수묵·담채의 문인화가 주종을 이루는 한국화단에 전통적인 진채(眞彩)의 기법을 되살린 가장 한국적인 색채의 작가였습니다. 무속화·민화 등을 소재로 진채의 강렬한 대비효과를 드러냈었죠. '여의주도'는 그의 주된 작품과는 다릅니다. 오롯이 먹으로만 그렸습니다. 송인식 동서화랑 관장은 "1985년 작고한 박생광 화백이 1978년쯤에 그린 그림이다. 구름 사이로 승천하는 흑룡이 마치 살아있는 듯하지 않냐"며 되묻기도 했습니다.

산청 출신의 무진 정룡(鄭龍) 한국화가도 용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1940년 용띠인 그는 이름도 용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용은 동·서·남·북 천하를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다리가 네 개입니다. 상징성이 있죠"라며 용을 예찬했습니다. 그는 무진참미술관에 보관 중인 작품을 꺼내 용 전시를 열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그의 작품 속 용은 어떤 모습일까요.

진용 '구룡도'의 일부분.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