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바람난 주말] (1) 창원시 진해구 소사마을을 가다

"엄마, 우리 어디 가요?" 주말에 조금이라도 외출할 것 같은 낌새만 보이면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주말, 온전히 집안에만 있다 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온종일 놀아줘야 하는 어른이나 한정된 공간에서 이리저리 놀거리를 찾아다니는 아이, 소모전으로 끝나기 쉽다. 결국은 텔레비전이나 각종 IT 제품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 현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11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3∼5세 유아의 인터넷 이용률이 66.2%로 50대 이용률(57.4%)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유아 3명당 2명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10대는 99.9%가 인터넷을 이용한다니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올해는 '학교별 자율 실시'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주 5일 수업제가 전면 시행되기도 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서라도 주말, 아이와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도심을 가로질러 시간이 저 너머 세월 한쪽에 멈춰버린 듯한 곳에 도착했다. 고리타분하지만 "엄마가 어렸을 적에는…"이라는 말로 아이와 추억을 공유하고 시골의 편안함을 찾아 나선 길이다.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소사마을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방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누군가의 대문에 말 그대로 '대문짝'만큼의 크기로 장식하고 있다.

한적한 시골 풍경에 몬드리안 작품의 대문이라니. 그런데 생뚱맞기보다는 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다 살짝 소사마을에 대해 기대를 하게 하기도 한다.

그 집을 따라 '모퉁이를 돌면' 나는 1980년대 어딘가의 골목에 서 있다.

'골목'이란 단어가 주는 정감은 참 따뜻하다. 사전적으로는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라는 뜻인데, 골목은 어쩌면 모퉁이를 돌면 어떤 곳이 펼쳐질지 모를 막연한 기대를 하게 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길을 따라 '藝術寫眞館', '부산라듸오' 가게를 지나면 김씨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물 수집 전문가'로 알려진 김현철(58) 씨가 자신의 추억과 남의 집을 돌며 모은 갖가지 추억을 꺼내주는 물건들이 즐비해 있다.

부산라듸오·예술사진관.

조금은 인기가 사그라지기는 했지만 MBC '나는 가수다'에서 예전 명곡들이 재조명되는 것을 보며 그 시대를 풍미했던 가요가 우리를 그때 그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추억의 물건들 역시 그러하다.

까만 다이얼 전화기, 초침소리가 분명한 괘종시계, 전축, 녹슨 크고 작은 재봉틀, 주파수를 돌려야 하는 라디오, 초창기 분유들 등 추억의 물건들이 방대하다.

김씨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물건들.

'터치' 세대, 아니 터치조차 필요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다이얼 전화기는 어떻게 보일까? 전화를 돌린다는 말을 이해는 할까? 0번을 돌리려면 집게손가락을 0번에 끼우고 360도를 회전해야 했던 수고로움을 아이들은 알까? 풍금에 소리를 내려면 발로 연방 바람을 불어넣어야 했던 그때를…, 바람을 넣어 폴짝폴짝 뛰던 개구리 장난감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던 그때를…. 5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풀어내는 이야기는 한 보따리가 될 듯하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오면 '맞조코 영양 많은 태양 카라멜' '점빵'이 서 있다. 돈을 줘야 볼 수 있었다는 만화방 TV를 재현한 공간과 그 옆으로 김씨 공작소가 보인다.

태양카라멜 점빵.

꽁뜨(conte) 커피숍은 지나치기 쉽다. 이미지만 만들어 놓은 곳 같지만 문을 열면 "어서 오세요"라는 주인의 반가운 인사와 함께 또 다른 추억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햇살은 따사롭지만 매서운 바람 때문에 발이 꽁꽁 얼었는데 금세 추위가 녹는 따스함에 절로 차를 한잔시키게 된다. '마을 안에 채웠던 노래의 주인공이 이곳이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커피 한잔을 시켰다. 원두커피·코코아·홍차·주스·콜라·사이다 모두 2000원이다.

알고 있겠지만 소사마을은 월하 김달진 선생의 고향이다. 우연하게도 꽁뜨 커피숍 안의 통유리 너머로 월하 선생의 생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꽁뜨 커피점에서 바라본 김달진 생가

차 한잔을 손에 감싸고 나지막한 초가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몸이 녹으면 월하 선생의 초가도 휘 한 바퀴 둘러보고 문학관에 들러 선생의 작품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달진 문학관 옆으로 웅천 막사발 복원 전시장이 있다. 복원된 막사발과 다양한 토우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을 나오는 길에 섭섭하다면 박배덕 갤러리에 들러 얌전히 구경해볼 수도 있다. 유화와 각종 폐품을 활용한 작품들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듯하다.

인근 먹을거리

소사마을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인 대장동 백숙촌.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한집 건너 백숙집이다.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거리다.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쉽게 알려준다. 3만 원이면 서너명이 배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체념

-김달진

봄 안개 자욱히 내린

밤거리 가등(街燈)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워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凝視)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룰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悲愁)에 사는 운명(運命)

다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멀리 깊은 산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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