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석쇠불고기 원조 손모례 할머니 별세…"천생 여장부이셨던 분"

창원 북동시장 석쇠불고기 원조인 '판문점' 사장 손모례(1928~2012) 할머니가 지난 2일 세상을 등졌다. 향년 84세.

고인은 지병인 당뇨와 합병증으로 지난 6년간 입원했다. 남해군 설천면이 고향인 고인은 손계순·효양 자매를 뒀다.

둘째 딸인 효양 씨는 "천생 여장부인 분이었다"며 "말년에 여행을 즐기시다가 입원하셨는데 이제 마음껏 가고 싶은 곳 다니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찍이 홀몸이 된 고인은 젊었을 때부터 창원 북동시장에서 식당을 하며 두 딸을 키웠다. 어려웠던 시절, 살려면 누구보다 억세야 했다. 뭐라도 아니다 싶으면 절대 속에 담아놓지 않고 내뱉는 고인에 대해 첫째 딸인 계순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손님이든 누구든 뭔가 본인이 아니다 싶으면 거침없이 멱살을 잡았어요. 욕도 서슴없이 하셨고요. 그 일대에서는 유명했지요."

고 손모례 할머니.

그래도 한편으로는 뒤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는 약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배 곯는 사람만은 절대 박대하지 않고 밥 한 그릇 먹여 보내는 일 또한 고인의 일상이었다.

지금은 창원이 자랑하는 맛 가운데 하나인 석쇠불고기. 석쇠불고기는 1960년대 중반 고인이 처음 선보인 음식이다. 하지만, 왜 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구웠는지는 가족도 정확한 시작을 잘 몰랐다. 다만, 계순 씨 짐작은 이렇다. "그때는 뭐든 구울 게 있으면 석쇠에 다 구웠어요. 지금처럼 프라이팬이 흔했던 때도 아니고…. 뭐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익숙한 도구가 석쇠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도 도구보다 유명한 것은 양념이었다. 그리고 그 양념 비결은 전적으로 남다른 고인의 미각이 만든 것이었다. 어느 식당에서 뭘 먹든 무슨 양념이 들어갔는지, 재료는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기가 막히게 맞히던 고인은 기어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맛을 찾아낸다. 그렇게 식당과 석쇠불고기는 유명해졌다.

60·70년대는 창원 일대 건축·토목 공사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은 으레 고인이 내놓은 고기를 먹는 게 코스처럼 돼 있었다. 그래서 어디서 오든 이 식당에서 만난다고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그 별명이 그대로 식당 이름이 됐고, 판문점 원조 석쇠불고기는 누구나 사랑하는 맛이 됐다. 유명해진 만큼 벌이도 쏠쏠했다. 그리고 고인은 벌어들인 만큼 풀어낼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둘째 사위인 한유성 씨 기억이다.

"북동시장에서 제일 알부자라고 했어요. 그래서 동사무소 직원들이 한 번씩 찾아와서 지역에 어려운 사람이나 가난한 학생들 돕자고 사람도 연결해주곤 했지요. 장모는 어김없이 도왔어요. 제가 결혼했을 때 시청에서 받은 표창장만 백과사전 두께만큼 있었어요."

시원한 성격 덕에 유난히 죽이 맞았던 고인과 둘째 사위는 허물 없이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한유성 씨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덤덤했던 것 같은데 장모를 보내니 마음이 짠해진다"고 말했다.

고인이 남긴 석쇠불고기 맛은 창원 팔룡동에서 둘째 딸과 사위가 이어받았다. 고인은 세상을 등지기 며칠 전까지 식당에서 음식 맛을 보고 '아직 멀었다'고 한마디 했다 한다. 한유성 씨는 "오래 병원에 있으면서 입맛을 다 잃었을 텐데, 양념이 뭐가 넘치고 부족한지, 고기는 오늘 것인지 어제 것인지 기가 막히게 맞혔다"고 말했다.

1990년대 장사를 놓은 고인은 말년을 여행으로 보냈다. 이웃과 모여 국내는 물론 1년에 한 번꼴로 외국도 다녀오곤 했다. 한없이 강인했지만 돌아서면 눈물을 훔치던 사람, 누구든 죽이 맞으면 술 한잔 기울일 줄 알았던 사람, 그리고 이제는 판문점 석쇠불고기 맛으로 계속 남을 고인은 또 다른 여행길에 올랐다.

발인은 4일 오전이며 장지는 고인의 고향인 남해군 설천면 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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