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48) 용(龍·Dragon)...상술이 만든 흑룡의 해

■흑룡(黑龍)에 낚였다

설이 한참 남았지만 벌써 용의 해란다. 항상 앞서는 것은 해마다 띠동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이고 이걸 키워 주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좌청룡(左靑龍)과 MBC 청룡에 경주 황룡사(黃龍寺)까지는 들어봤는데 흑룡은 낯설다.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이다. '임(壬)'은 검은색이고 '진(辰)'은 용이다. 둘이 합쳐져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로 불리는 것이다.

더 풀어보면 갑을(木 청색) 병정(火 붉은색) 무기(土 황색) 경신(金 흰색) 임계(水 검은색) 10간지를 오방색으로 잡고 여기에 12띠를 연결하면 된다.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순으로 연결하면 60갑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해가 60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데 60년 만의 흑룡의 해라고 한다. 사실은 마케팅이 만들어 낸 첫 흑룡의 해다. 용이 청룡, 황룡, 백룡, 흑룡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흑룡의 해는 빼빼로데이처럼 이번에 장삿속으로 만든 이름이다.

임진왜란도 흑룡의 해에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바로 앞 흑룡의 해는 1952년 한국전쟁 중일 때가 임진년이다. 황금돼지띠로 돈 벌었던 사람들 때문에 2007년생 아이들은 유치원 입학부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용을 그린 그림들.

■와룡산 아래 비룡반점

나는 삼천포 와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용산국민학교에 들어가 와룡산 교가를 부르고 학교를 다녔다. 제일 큰 저수지도 와룡저수지이고 제일 유명한 중국집도 비룡반점이었다. 용이 누워 있어 와룡이고 인재가 없다며 용을 꿈꾸게 했다. MBC 청룡이 주는 것 없이 좋았고 심형래가 용가리로 말아먹고 D-WAR로 국민적 논란에 싸였다. 이소룡의 용쟁호투에서 성룡의 용형호제, 다시 주윤발의 와호장룡까지 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지만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서양 용과 동양 용

서양 용(Dragon)은 불을 내뿜는 파괴와 악의 축이다. 날개가 있고 동굴에 산다. 용을 물리치면 꼭 공주와 결혼을 한다. 나쁜 서양 용보다 멋진 용이 동양 용이다. 동양 용(龍)은 물에서 살고 신성하고 귀한 동물이다.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다. 우리말로 용을 '미르'라고 하는데 물의 어원 '믈'과 닮았고 밤하늘 은하수를 우리말로 '미리내'라고 하는데 비슷하다.

■바다 용과 육지 용

우리나라 바다에는 용왕이 사는데 바다 용은 폭풍을 몰고 다니는 무서운 용이다. 반대로 육지에 사는 용은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며 가뭄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용이다. 창녕 화왕산 꼭대기 연못에 호랑이 뼈가 나온 것은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며 용쟁호투, 용호상박으로 비를 바라며 호랑이를 재물로 바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용은 무얼 보고 만든 것일까?

용은 도마뱀, 악어, 뱀을 보고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동양과 서양의 용도 다르고 인도와 중국의 용도 다르다. 신화 속 5차원 외계인 용족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언제나 용의 모습은 믿고 싶은 사람의 마음대로 그려졌다. 용의 몸 하나하나는 통합과 융합의 상징코드다. 전해오는 용 이야기를 묶어 보면 용은 낙타 얼굴에 사슴뿔을 달았다. 토끼 눈에 돼지 코와 암소 귀를 달았다. 이무기 목에 뱀 몸까지 81개의 비늘이 있다. 4개의 발에는 매의 발톱과 호랑이 발바닥이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 강남에서 용난다

평생 굽은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촌에서 인물 한 번 만들려고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잔인하다. 평생 이루지 못할 꿈을 꾸며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며 불행하게 사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나누며 비우며 살아도 모자란 것이 인생 아니던가? 용이 아니라도 잉어여서 행복하고 뱀이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용꿈 개도 주지 마라

부자와 일등이 행복하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88만 원 비정규직 인생 역전 로또를 꿈꾸는 것과 같다. 늘 일등과 부자를 강요당하며 일등과 부자가 아니라서 불행한 대한민국 사람이 너무나 많다. 로또 대박, 인생 한 방, 역전인생을 꿈꾸며 사는 것이다.

■불안한 흑룡

2012년 지구종말론자들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너무 힘든 한 해다. 석유 고갈로 중동의 정권이 무너졌고 앞으로 기름값을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베트남 왕궁이 홍수로 잠기고 일본이 쓰나미로 무너지고 또 어떤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올 지 걱정이다. 전 세계가 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흑룡은 서양의 불길한 용과 닮았다. 사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와 신라의 흑룡은 죽음과 어둠의 그림자이고 왕이나 유명한 사람의 죽음을 암시한다.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에너지 위기와 경제 위기에 기상이변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해답을 바로 동양 용의 통합과 융합의 코드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구의 여의주(如意珠) 용

용은 몸 하나하나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통합의 상징이고 지구의 위기를 구할 수 있는 통합 코드가 아닐까? 다종교, 다문화, 다문명이 충돌하는 지구에서 기상이변과 에너지 위기에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동양의 용 문화 코드일 것이다.

/정대수(함안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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