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우포늪

인디언들은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란다. 그래서일까? 우포늪의 많은 야생동물들도 길을 가다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눈이 너무 여리고 슬픈 듯 맑다. 늪 안팎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고라니와 너구리, 삵 등은 나를 만나면 잠시 서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떤 두려움 없이 한참 쳐다보다가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보듯이 그리고는 제 갈 길로 각자 가는 것이다.

이렇듯 우포늪에 들어와 살면서 글쓴이는 맑은 영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 덕분으로 오랫동안 교육민주화운동과 환경운동으로 지친 영혼과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상처받은 내면을 단숨에 자연에서 치유를 받은 셈이다. 그래서 늘 자연이 고맙고 우포늪이 고마운 것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배경이 된 우포늪의 당산나무와 뒷마을은 작가가 4번 이상을 답사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포늪이 가진 가치는 단순히 국가가 지정한 여러 가지 법적 가치를 뛰어넘는, 이미 도시에서 잃어버린 영혼의 치유와 다양한 문화-예술적 창작 요람으로 승화해 가고 있다.

새해 두 번째 아침을 맞은 우포늪(소벌).

잘 알려진 대로 우포늪은 1997년, 환경부가 철새도래지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여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제주도가 '세계7대자연경관지역'으로 지정받기 위해 국내외로 온 힘을 쏟았던 이유도 바로 우수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요즘 우포늪 주변에는 이러한 경관을 해치는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우포늪도 언젠가는 주변의 농촌 인구가 줄어 마을이 피폐화되고, FTA로 농업이 어려워지면 그 부분에 대한 중장기적 대안을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포늪은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다양한 생물종들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이러한 자연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통한 주민의 생존 전략 마련과 생태관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주도와 순천만 등에서 그 사례가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창녕군도 환경부와 협의하여 우포늪 주변을 복원하는 첫 모범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선진적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변의 자연경관을 해치는 다양한 행위에 대한 '경관보전조례' 혹은 보전계획에 대한 상설 민관협의회조차 없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자연문화유산들이 유지되고 유명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과 행정관청의 경관 보전을 위하는 다양한 제도 덕분이다. 이미 우포늪도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MAB(생물권보전지역)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국내에 유일한 따오기야생복귀를 위해 지자체와 정부 차원에서 함께 연구하고 옛 논습지를 만들기가 올해 시작된다. 향후 수많은 국내외 자원봉사자들이 생태관광 겸 따오기복귀를 위해 방문하는 유명 지역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런 날을 대비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지자체가 자연경관보전과 생물다양성 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적극 마련하기를 지역주민으로서 간곡히 호소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자칫 영혼을 놓쳐버려 영영 못 찾으면 느리게 가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인디언들이 걷는 방법을 되새기게 하는 늪마을에는 흑룡의 해에 첫눈이 소록소록 내린다.

/이인식(우포늪 따오기복원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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