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이야기] (3) 요리의 발상 전환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 특성 때문인지, 주변에는 유독 홀로 사는 젊은 동료가 많다. 간혹 물어보면 이들 중 직접 요리를 해 끼니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식당에서 사 먹거나 마트·시장 등에서 파는 완제품 국·반찬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인스턴트·즉석 식품으로 때우거나, 이게 일상이다.

결혼을 했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쪽이 살림을 전담하면 모를까, 요즘 '대세'라는 맞벌이 부부 대부분이 '자취생'과 오십보백보 신세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끼도 '인간다운'(?) 식사를 차리지 못한다.

시도조차 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도 해도 안 되고 해봤자 바깥에서 사 먹는 것만 못하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요리를 더욱 멀리하게 된다. 화학조미료 의존도 또한 더욱 높아간다.

<경남도민일보> 한 동료의 저녁식사.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눈높이'에 있지 않나 싶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상과 같아야 한다는 강박, 꼭 밥에는 국·찌개를 비롯해 다양한 반찬이 쫙 깔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문화는 갈수록 간소해지고 있다. 단무지나 양파, 피클 몇개만 놓고 짜장면·칼국수·파스타·덮밥·돈가스 등으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지 오래고, 밥 없이 주로 술과 함께 고기·생선회 등을 즐기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이는 결코 부정적인 흐름이 아니며, 오히려 비용절감·환경보호·맛의 균형 등 많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기자는 판단한다.

'요리' 역시 이 관점에서 보면 한결 수월해진다. 이를테면 집에서 직접 고기나 생선을 구워 먹는 게 어려운가? 물론 맛있게 굽는 데는 약간의 기술과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금 등으로 적당히 간해, 겉면이 바삭하게 센불에 굽기만 하면 '최고의 맛'을 내는 '최고의 요리'를 외면하고 굳이 저급한 소시지·햄·참치통조림으로 이를 대신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해산물 요리는 더 쉽다. 생선회는 다루는 데 내공이 좀 필요하지만, 싱싱한 제철 굴이나 멍게, 전복, 해삼, 개불 등은 별 손질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다. 특별한 만찬을 원한다면, 마트·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냉동참치를 해동해 간장·와사비(고추냉이)와 함께 먹는 것도 대안이다. 고급 참치 전문점에서 1인당 수만 원씩 내고 먹는 것보다 훨씬 싸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대게나 꽃게, 조개, 관자, 새우, 오징어, 주꾸미 같은 해산물은 어떤가. 이들은 그저 찌거나 삶거나 데치는 것만으로 절정의 맛을 선사한다. 심심하면 간장이나 초고추장을 살짝 곁들이면 된다. 고추장·설탕 등 강한 양념으로 범벅하는 것은 오히려 재료 그 자체의 맛을 느끼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반찬이 없지 않냐고? 김치니 나물이니 장아찌니, 이 역시 별반 어려울 게 없는 요리지만 부담스럽다면 다른 대안을 찾으면 된다. 이를테면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 야채들. 파프리카, 양파, 오이, 피망, 마늘, 고추 같은 것을 적당히 썰어 반찬처럼 먹어보자. 좀 시큼한 게 필요하지 않냐고? 과일이 있지 않은가? 샐러드에 들어간 과일 먹듯이, 귤·토마토·사과·키위 등 제철 과일을 식탁에 올려놓아 보자. 한 자리는 너끈히 채워주고도 남을 것이다.

'나는 진짜 요리를 원한다'며 하기도 쉽고 맛도 좋은 반찬(?)을 찾는다면 감자구이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감자구이는 신선한 감자와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충분한 요리다. 감자를 껍질째 적당한 크기로 잘라 10분 정도 삶은 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중불∼약불에서 모든 면이 진한 갈색이 나도록 하나 둘 굴려가며 지긋하게 구워보자. 중간중간 소금을 뿌려 간해주면서, 30분 이상 오래오래. '맛있는 요리? 알고 보니 별 거 아니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이라면 늘 간절한 '국물'이 남았는데, 사실 제대로 된 국·찌개·조림을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국물 요리의 핵심인 '육수'를 잘 우리기 위해선 보통 대여섯 가지의 재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최종 선택지는 화학조미료. 식당이나 가정이나 마찬가지다.

바지락 육수를 이용해 집에서 만든 파스타.

하지만 이 역시, 꼭 맵고 짜고 칼칼한 것만 국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샤부샤부라는 일본 요리가 있다. 마치 무슨 고급요리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기원을 찾아보면 저 옛날 몽골의 칭기스칸 군대가 전쟁 중 먹었던 음식이다. 그만큼 쉽고 간편하다는 뜻이다. 무, 배추, 간장, 다시마로 아주 가볍게, 취향에 따라 가츠오부시(가다랑어포)나 멸치를 우린 국물에 각종 야채와 얇게 썬 고기, 어묵 등을 넣었다 빼 먹는 요리가 어려울까? 그렇게 먹다 보면 어느새 진하고 시원한 국물이 '탄생'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국수를 넣어 먹거나, 밥으로 죽을 끓여 드셔 보시라. 고급 코스요리가 따로 없다.

닭백숙이나 조개탕도 많은 부재료 없이 감칠맛 나는 국물을 우릴 수 있는 요리다. 신선한 닭을 마늘, 파, 간장, 다시마 정도만 넣어주고 한 40여분 끓여보시라. 적당히 썬 무와 다시마만 넣고 끓이다 역시 싱싱한 바지락·모시조개·백합·홍합 등을 넣고 한 10여분 끓여보시라. 재료는 물 양 대비 넉넉하게.

이 국물은 또 카레·마파두부·짜장면·짬뽕·칼국수·파스타·된장찌개·순두부찌개·콩나물국 등 많은 요리의 기본 육수로도 쓰인다. 이처럼 요리는, 기본만 알면 응용할 수 있는 음식이 무한대로 늘어난다.

누군가 이렇게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슨 말하는지 알겠는데, 대충 사 먹어도 될 것을 왜 굳이 힘들게 집에서 직접 해먹어야 하냐고. 그럼 기자는 이렇게 반문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입, 나아가 사랑하는 자기 가족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굳이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비용절감, 올바른 식습관과 건강 등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다. 먹을거리를 스스로 통제하고 관장한다는 것, 이는 자기 삶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일 수 있으며 나아가 거대식품회사 등 자본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먹을 것이 없다고, 귀찮고 힘들다고 오늘도 라면봉지를 뜯는 당신, 이미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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