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 (23) 남해우체국 집배원 배상대 씨

2009년 말이다. 남해읍 내에 있는 기자의 집으로 우체국에서 배달한 우편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편물에는 '남해군 김범기'만 쓰여 있었는데 집으로 우편물이 배달돼 있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본사에서 일하다가 남해·하동 담당으로 갓 발령받은 초짜 주민이었던 터라 적잖이 감탄했다.

지금도 여느 택배회사에서는 물건이 가끔 오면 해당 택배 직원이 집 위치를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식당을 아느냐, ○○동물병원을 아느냐, ○○○여관을 아느냐 등 택배 직원이 정확히 아는 건물을 공유하고 나서 위치를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다. 가끔이지만, 여간 번거롭지 않다.

배상대(52·사진) 남해우체국 집배원. 지금은 집배구를 옮겨 기자가 사는 집을 담당하지 않지만, 2009년 말 당시 기자를 놀라게 한 우편물 배달의 주인공이다. 알고 보니 그이는 최근 남해경찰서의 요청으로 경찰서 직원을 대상으로 친절교육을 했을 정도로, 친절을 배달하는 집배원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배 씨가 집배원을 시작한 건 1995년이다. 기관사 자격증이 있는 배 씨는 배도 탔고 그러다 농어민 후계

   
 

자로 뽑혀 조그만 어장을 했는데 통째로 말아먹었단다. 그러던 차에 우체국에서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탐탁잖았단다. 우체국이 그리 명성이 높은 기관이 아니어서 망설여졌다고 했다.

"내가 크리스천이다. 우체국에서 일하면 어르신들 말벗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삼동면사무소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내 좌우명이 '촌로를 더욱 존중하겠습니다'였다. 노태우 정권 때였는데, 그때는 공직자에게 자기 책상 위에 좌우명 하나씩 적어놓으라고 했던 시절"이라며 웃었다.

자신의 고향인 삼동면에서 집배원을 시작한 배 씨는 집집이 우편물을 전하며 어르신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단다. 배 씨가 남해읍으로 집배구를 옮긴 지는 꽤 된다. 늘 다니는 곳을 다니면 집배 업무가 익숙하고 편할 텐데 배 씨는 집배구를 여러 곳을 자청했단다.

배 씨는 "집배원은 대개 집배구를 4곳쯤 돌면 정년(60세)을 맞는데, 나는 현재 7곳을 돌았다. 집배구를 여러 곳 맡아 더 많은 이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면 단위는 900∼1000가구가 1개 집배구고 읍은 500∼700가구가 1개 집배구라니, 배 씨는 남해에서 이제까지 3000가구 넘게 인연을 맺은 셈이다.

젊은 세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단다. 옛날에는 우편을 기다리는 젊은 사람이 많았고, 소쿠리에 고구마를 삶아놓고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단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사람을 대할 때는 오히려 사무적이 된단다. 인터넷 때문이다. 자기는 잘한다고 하는데 상대가 잘 못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리되면 행여 꼬투리를 잡히고 그걸 인터넷에 올리면 난처해지기 때문에 젊은이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반면, 어르신들은 요즘도 그리 달라진 게 없단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단순히 우편물을 전하고 받는 사이가 아니라 그속에서 정을 주고받는단다. 섬호 마을 한 어르신은 서울 일간지를 받아보는데 아침에 우편배달이 조금 늦으면 그리 난리란다. 그래도 어느 날은 자신이 재배한 무 한 상자를 주려고 기다리며 고마움을 전하려 하더란다.

내년 4월 총선 관련해 본격적인 선거철이 시작됐다. 일상적으로 주민을 만나는 집배원의 업무 특성상 대민 접촉 빈도를 따지면 공무원 중에서는 집배원이 으뜸일 테다. 그래서 집배원에게 선거철 행여 유혹은 없는지 물었더니 배 씨가 펄쩍 뛰었다. 배 씨는 "집배원이 하관 말직이지만, 그래도 공무원이다.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철에는 막걸리 한 잔도 먹지 말고, 집배원은 심부름꾼이란 사실을 각인한다"며 "후배들에게도 한번 잘 못하면 인생 망친다는 점을 유념하라고 철저히 교육한다"고 말했다.

친절한 집배원이란 칭찬에 대해 배 씨는 "내가 잘해서나 우체국이 잘해서가 아니라, 우체국이 만나는 고객이 좋은 분들"이라며 주민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집배원은)내가 잘해서 잘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이 나를 도와주면 더욱 존중하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다. 정년 채우고 퇴직하는 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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