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꼭두서니 이야기

삶의 여유를 찾아서 비만한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겨울 산은 이제 쉴 수가 없습니다. 올레길. 둘레길……. 온갖 아름다운 이름의 길들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쉼 없이 걷습니다. 너무나 할 것이 많고 볼 것이 많아서 자신이 누군지 되돌아볼 사이도 없이 빌딩숲을 뛰어다니던 사람들은 숲에서도 경보 경주하듯 내달리기까지 합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길 위에 선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할 여유, 자연을 즐길 여유, 겨울 숲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심과 귀기울임 소통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등산복이 이제 일상의 패션이 되어버릴 정도로 일반화된 등산. 걷기 열풍 때문에 도시에서 달리던 사람들이 산에서도 앞만 보고 달리다가 산을 몸살 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흑진주 같은 열매가 예쁜 꼭두서니.

창원 숲속 나들이길을 걷다가 잔가지 하나마다 덤불을 만들어 얽히고설키며 어우러진 덩굴식물들의 한해살이와 안부가 궁금하여 들여다보고 그 속에 깃들어 먹이를 찾는 새들의 날갯짓에 혼을 빼앗겼습니다. 쥐똥나무 가지에 옹골종골 열린 열매가 꼭두서니 덩굴이랑 얽혀서 새로운 모양의 열매나무가 되어 있는데요. 어느 것이 쥐똥나무 열매고 어느 것이 꼭두서니 열매인지 분간할 수 없이 얽혀서 한 해를 열심히 잘 살아온 풍성한 결과를 주렁주렁 달고 겨울바람 앞에 당당합니다.

한여름 잔잔한 갈퀴가시와 네모각이 뚜렷한 줄기로 당차게 뻗어 올렸던 전성기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지만 윤기 나는 열매 하나로 빛나는 겨울을 또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풍성하게 맺은 이 열매를 한겨울 동안 새들과 충분히 나눠먹고도 내년이면 수십 배의 싹을 또 틔워 올리겠지요. 이 꼭두서니 전초는 한방에서 '천초'라고도 불리며 소혈등·가삼자리·여인홍·갈퀴잎으로도 불립니다. 산지 숲이나 들판의 습지에서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 덩굴성 식물로 7~8월이면 연노랑의 작은 꽃이 피지만 그다지 예쁘지는 않습니다.

가을이면 새까맣게 열매가 익는데 그 모양이 흑진주처럼 예쁜데요. 뿌리는 '천초근'이라 하여 한방과 민간에서 약재로 주로 사용했는데 정혈·통경·해열·진해·거담·강장에 두루 쓰이는 요긴한 약재이기도 합니다. 열매도 비슷한 약효를 낸다고는 하지만 뿌리가 더 좋은 약효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열매나 줄기로는 약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뿌리는 뛰어난 염료로도 인기가 많은데 뿌리 달인 물로 염색하면 은은한 분홍색을 띠는데 '인디핑크' 색깔을 내는데 그 아름다움이 뛰어납니다.

풀 전체의 모양을 보면 잔갈퀴를 잔뜩 달고 있는 네모난 줄기에 접근하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어 그다지 아름다운 자태 같지는 않은데 '미태'라는 꽃말을 가진 것을 보면 아마 이 연분홍빛 염료의 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겨울의 산 숲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봄의 숲이 더 많은 꽃을 피울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꽃 피지 않는 풀이 없어 세상엔 늘 꽃이 피고 동물들은 그 열매의 풍요를 누립니다. 산행길에 만나는 앙상한 가지 하나에서도 봄의 꽃을 기억하시고 숲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며 돌아오는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가득합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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