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늘고 또 악기를 한번쯤 배워보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우리 주위에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활동이 이전에 비해 우리의 일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관 주도형 음악회 및 몇몇 대형 음악회를 제외하고는 늘 빈자리가 많고, 그나마 관객들은 출연자의 가족과 가까운 주위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음을 종종 본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의 동원(?)을 위해 연주회 프로그램의 구성이 음악적 진지함이나 개성은 사라지고 모 방송국의 열린음악회 형식이 주류를 이루고 여러 출연자들을 무대에 세우다보니 음악회를 통해 남는 진한 감동을 찾기가 참 어렵다. 연주회 중간에 출연자가 누구냐에 따라 관객들이 나갔다가 들어왔다 하는 진풍경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수선함에도 올해 연말도 음악회를 비롯하여 문화 예술 행사가 양적으로는 아주 풍성한 편이다. 그런데 그 많은 음악회가 출연자의 친지들과 동원된 듯한 학생들이 대부분인 경우도 흔하다. 이래 가지고서야 음악회가 아무리 양적 팽창을 거듭한들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아마 획일적인 연주회 프로그램과 내용들, 중복되는 출연자들 등 여러 요소들이 청중의 관심을 유도하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음악회의 스타일 혹은 프로그램이 '개성 있는 연주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참 찾아보기 어렵다. 쉬운 예로 피아노 독주회를 살펴보자. 바흐나 스카를라티로 시작되어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쇼팽, 프로코피예프 등 근·현대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과거나 또 유럽이나 별반 차이 없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청중이 음악회를 찾게 되는 동기는 연주자에 대한 관심과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로 집약될 수 있는데 음악회의 내용이 거의 동일한 스타일이고 연주자의 다양성이 결여된다면 청중의 관심을 유도하기엔 역부족이 되기 십상이다.

필자가 독일 유학당시 유럽에서 주눅들 수밖에 없었던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유럽의 문화적 분위기 탓이다. 큰 도시든 작은 도시든 심지어는 한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공간들은 다양한 문화적 시설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그네들의 생활이 거의 체질적으로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에 젖어있는 사실이다. '문화적 삶이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즉 비문화적 삶이란 비인간적 삶이라는 논리도 가능한 것이다. 결국 문화적 삶은 재화의 단위로 계측될 수 없는 성질인 셈이다. ○○문화, ○○문화…. 요즘은 참 다양한 부문에서 문화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진정한 문화란 인간의 정신세계에 건강한 풍요를 제공해 주는 예술문화일 것이다.

   
 

취미가 독서라는데 한국인은 독서하지 않기로 세계에 으뜸이라며 독서를 독려하는 캠페인 문구가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취미가 음악 감상과 악기연주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도 음악회는 늘 빈자리가 많은 모습들을 보며….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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