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 (1) '음식 천국'을 만나다

이번 주부터 음식을 사랑하는 한 기자의 '제멋대로' 음식 이야기를 새로 연재합니다. 우리 지역의 음식부터 맛집, 식재료, 음식문화 등 '먹는 것'과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라면 무엇이든 다룰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먼저 신분부터 밝혀야 할 것 같다. 기자는 지난 10월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한 초짜 사원이다. 특이한 게 있다면 서울에서 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 왔다는 것이고,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흔히 '요리'라고 불리는 직접 해먹는 것도 포함된다.

음식 관련 연재를 제안 받고 기획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적잖이 고민했다. '초짜 애식가'라고 붙인 건 좋은 것만 찾아 먹는다는 '미식가'와 거리가 멀고, 또 미식가가 갖고 있는 이미지인 럭셔리·전문성과는 더더욱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이 연재는 음식을 좀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음식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한 결과를 담은 것 정도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글 역시 그 깊이를 계속 더하게 될 것이다.

회사가 위치한 마산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는 예의 먹는 문제였다. 마산 하면 아귀찜밖에 몰랐던 데다, 모든 게 서울 등 '중심부'로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제대로 하는 식당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며칠 만에 걱정은 행복으로 바뀌었다. 이젠 거꾸로 음식 때문에 마산을 떠날 수 있을지 걱정까지 하는 처지가 됐다. 마산에만 오래 산 사람들은 오히려 그 가치를 모를 수 있겠으나, 서울의 '기준'에서 보면 한집 건너 한집이 '맛집'이니 그야말로 대박이 아닐 수 없었다.

마산의 맛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가격대비' 맛집과 가격대비 겸 '전국구' 맛집. 전자는 사실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고, 후자는 몇몇 복국집과 추어탕집이 속할 수 있어 보인다.

음식 맛의 기본은 재료 맛, 특히 해산물의 경우 생물과 냉동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대부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괜찮은 생물 갈치조림을 먹으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물론 갈치의 질과 지역·음식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1인당 최소 1만 2000원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 비싼 집은 2만~3만 원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점심·저녁 때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꽤 명성이 높은, 중구 남대문시장 내 희락식당은 7000원인데 예의 냉동이다.

하지만 25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산 산호동 성도식당은 같은 가격에 생물인데다, 하나하나 다 맛있는 반찬이 10여 가지나 깔린다. 미역국, 된장국 등 칼칼한 입맛을 개운하게 다스려줄 국도 따라온다. 반면 희락식당은? 국물? 그런 거 없다. 반찬? 손바닥 만한 접시에, 보기만 해도 손이 안가는 반찬 몇 가지가 무성의하게 담긴다. 군대 시절 추억이 절로 떠오르는 수준이다.

산호동 성도식당의 갈치조림, 갈치구이.

같은 동네에 있는 은혜추어탕은 경상도식 추어탕을 대표하는 전국구 맛집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경상도식은 곱게 간 미꾸라지를 된장·마늘·얼갈이배추 등을 더해 좀 멀겋게 끓이는 게 특징인데, 전라도식·서울식 같은 걸쭉함은 없지만 시원한 맛은 한층 더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집이 또 감동스러운 것은 바로 반찬이다. 칼칼한 생선조림, 각종 나물, 김치, 젓갈, 마른반찬, 두부부침, 계란찜, 쌈채소 등이 한 가득 깔린다. 멸치젓갈, 국간장, 된장까지 직접 담가 쓴다니 '공장산' 양념이 판치는 서울 쪽 반찬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례다.

은혜추어탕의 추어탕.

그런데 이렇게 한상 거하게 차려주시곤 7000원을 받는다. 6000원에서 올린 지 얼마 안됐단다. 건강식으로 알려져서인가, 요즘 서울엔 널린 게 추어탕집인데 보통 기본이 8000원이다. 대부분 반찬도 김치 몇 가지 등 서너 개가 전부다. 중구 정동, 여의도 등 일부 잘하는 전라도식 추어탕집은 1만 원을 받기도 한다.

창동 코아양과 근처 고려횟집은 또 어떤가. 물론 이 집 초밥이 최상의 수준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횟감을 적당히 숙성시켜 감칠맛을 더한 양질의 초밥에 맑고 그윽한 생선국, 여기에다 무김치, 연근조림, 콩자반, 멸치볶음 등 다양한 반찬까지 곁들여주며 7000원만 받는다는 것은 정말 '경이'에 가깝다. 서울에서 점심 때 쓸 만한 초밥 좀 먹으려면 1만 5000원 이상은 기본이고 특히 저녁에는 두배, 세배 뛰어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민 입장에서 고려횟집은 아쉬움을 달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뭐니뭐니 해도 전국을 뒤흔들 만한 마산 최고의 음식은 복국이 아닐까 싶다. 복국으로 유명한 부산에서 음식비평을 하는 지인이 왜 "마산이 부산보다 훨씬 낫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복국은 좀 비싸다. 오동동 남성식당에서 생물 복국을 복 종류에 따라 1만 3000~2만 원에 팔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보통 2만 원 훌쩍 넘어가는 서울보다 훨씬 착한 가격이다. 맛 또한 비교가 안된다. 서울의 경우 생물 복이라 해도 수조나 냉장고에 오래 넣어둔 탓에 갓 잡은 복 맛을 절대 따라올 수 없다.

충남 부여 출신으로 마산에 정착한 지 30여년이 된 유장근 경남대 교수는 최근 기자와 인터뷰에서 "전주, 광주 등이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해산물 음식에 관한 한 마산이 최고"라고 말했다. 아직 정착한 지 2개월여밖에 안된 처지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현 시점에서 기자에게도 '해산물 음식의 천국'은 마산이다.

궁금한 점은 그것이다. 유 교수도 말했지만 왜 정작 마산 사람들 자신은 음식·역사·문화 등 마산의 가치를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 걸까. 유 교수는 이와 관련 해답의 실마리를 하나 던졌는데 '강렬한 중앙지향성' 탓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쉽게 말해 서울 등 중심부의 것은 좋게 보이고, 변방에 위치한 '우리 것'은 하찮게 여기는 정서를 뜻한다. 과연 사실일까? 그렇다면 왜 그런 정서가 생겼을까? 마산 음식에서 느낀 '초짜 애식가'의 감동은 음식에 대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