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희망찾기-시민운동가] (17) 남애경 푸른내서주민회 대표

남애경(48) 푸른내서주민회 대표는 애초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그간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시민운동가 인터뷰를 보니 대단한 분들만 나오더라. 난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푸른내서주민회라는 '아주 특별한' 단체를, 그것도 아무 보상 없이 4년째 이끄는 그를 '평범'하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남 대표는 지난 1998년 창립 초기부터 주민회의 각종 동아리 활동과 행사에 적극 참여해온 '열성 회원'이다. "제가 특별한 건 없는데, 꾸준한 건 좀 있어요. 그 덕에 대표도 된 것 같아요. 호호."

푸른내서주민회를 4년째 이끌고 있는 남애경 대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의 한 아파트단지 근처에 자리 잡은 푸른내서주민회는 마산·창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주민자치·지역공동체 운동 단체다. 주요 언론에서 주민단체의 '모범'으로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으며, 주민회를 꿈꾸는 다른 지역 운동가들은 꼭 참고해야 할 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1990년대 중반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내서로 이사 온 뜻있는 젊은이 6~7명이 처음 의기투합했을 때, 주민회가 이토록 성장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다. 지금의 사무실과 유급 상근자(1명)가 생긴 건 불과 4년여 전인 2007년이다. 그전까지는 각 동아리가 모임 공간을 알아서 찾아야 했고, 필요한 물품을 이곳저곳에서 빌려와 쓰는 일도 잦았다. 초기 활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남 대표처럼 홀로 40여 명의 회원(현재 총 250여 명)을 가입시키는 '괴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주민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삶의 모든 것', 남 대표는 이런 표현을 썼는데, 주민회의 힘은 바로 다양성에서 나오는 듯했다. 등산·동화·사진·볼링·풍물·밴드·봉사·생태·지역탐방 등 다양한 주제의 일상 모임이 주민회의 기반이라면, 각종 체험행사와 강좌, 공동청소, 그림·글쓰기 대회, 문화제는 더욱 폭넓게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장이었다. 특히 지난 1999년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매해 여름 펼쳐진 푸른내서문화제는 1주일 동안 연인원 70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내서읍의 대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단지 외형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의 가치관과 삶 자체에도 변화가 일었다. 남애경 대표는 "아이들만 봐도 공부에 찌든 다른 지역 아이들과 비교해 많이 다르다. 어려서부터 가족 단위로 함께 놀고 배우고 봉사하고 그래서인지 밝고 여유 있는 아이가 많다. 주부들이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서, 더 전문성을 쌓겠다며 대학원 등에 진학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주민회가 새로운 사회진출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변화의 절정 중 하나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일색인 마산시의회에 민주노동당 소속 시의원을 진출시킨 일일 것이다. 오랫동안 주민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한 송순호 현 창원시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송 의원은 2006년에 이어 2010년 선거에서도 내서읍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따돌리고 1위로 당선됐다. 일상 활동을 넘어 지역현안 해결에도 적극 앞장섰던 주민회에 대한 신뢰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까지 뒤흔든 것이다.

"주민회는 주민의 힘으로 지역을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다. 내서IC 통행료 징수 반대, 예비군훈련장 이전 반대, 골프연습장 건설 반대 운동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사안이 터진 후, 싸우고 천막농성도 해보고 그랬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지역공동체를 위해선 '뒷북'이 아닌 '선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송순호 의원이 출마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양날의 칼'과도 같았다. 주민회가 특정 정당과 가깝다는 오해(?)가 퍼지면, 주민들 참여 폭 확대에 큰 지장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애경 대표는 이에 대해 "주민회가 곧 민주노동당 아니냐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주민회가 민주노동당에 들어간 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관련된 사람이 주민회를 이끌었을 뿐이다. 우리가 진보적 색깔이 있는 건 맞다. 그래서 멀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겪어보면 진실을 알게 된다. 처음엔 껄끄러워하다가 나중에 주민회에 가입하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경우도 적지 않다. 송순호 의원 때문에 주민회와 민주노동당을 좋아하게 된 사람도 많다.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주민과도 아무 문제없이 소통하고 있다."

주민회는 심지어 MB악법 반대, 사립학교법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마산민중연대 활동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선명한 입장'도 자주 발표한다. 지난 11월 23일에는 경남교육청의 고입연합고사 부활 방침에 대해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처사"라고 성명을 통해 강력히 비판했다. 남 대표는 "주민회라고 지역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삶과 연관된 문제라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넉넉한 표정으로 연신 '호호' 웃음을 지었던 남애경 대표는 내년 1월 새로운 대표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매력적인 웃음을 이제 혹 못 만나게 되는 건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난 10년여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호. 이전처럼 평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해야죠. 새 회장님도 잘 보필하고요. 호호."

경남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남 대표는 함안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에듀캐어 교사로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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