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 창원시 환경미화원 이승근 씨

낙엽은 시민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자아내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해치워야 할 짐일 뿐이다. 일요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육호광장에서 낙엽을 쓰는 환경미화원 이승근(57·마산 합포구 성호동) 씨를 만났다. 여느 환경미화원처럼 야광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어깨에 쓰레받기를 둘러멘 채 터벅터벅 팔자걸음을 걷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이씨는 동료 2명과 함께 노산동 구역을 담당하고 있다. 새벽 4시 무렵 이씨는 어김없이 손수레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노산동주민센터로 출근한다. 출근부를 작성하고는 손때 묻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들고 거리로 나선다.

그는 햇수로 18년째 청소일을 해 온 베테랑 미화원이다. 노산동 구역을 맡기 전에는 쓰레기수거 차량을 10년 동안 탔다. 그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좋은 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쓰레기수거 차량을 탈 때 태풍 매미를 만났는데, 온 천지에 쓰레기가 널려 있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환경미화원 이승근 씨가 육호광장 인근 도로에서 은행잎을 쓸어담고 있다.

20대 때는 마산에 있던 신도산업이라는 분쇄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돌을 빻아 석회석 가루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이후 공장이 포항으로 옮겨 가면서 그도 마산을 떠난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는 효성중공업 주물부 후처리반에서 일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었던 그가 맡은 일은 작업의 뒤치다꺼리였다. "거기 일은 사람이 시커메져서 꼴이 말이 아니고 먼지를 많이 마셔야 한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퇴사한 이듬해 그는 지인의 권유로 환경미화원이 됐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IMF 위기도 이 무렵에 터졌다. 아내도 맞벌이를 하며 줄어든 월급만큼 생계를 거들었다.

그는 목소리가 유독 거칠다. 전에 일하던 공장의 환경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자신의 몸을 상해가며 일하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는 우리네 부모님들 모습 그대로였다.

이 씨는 같은 연배의 부모들이 그렇듯 자식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외동아들을 뒀다. 아들은 지금 객지에 나가서 돈을 벌고 있다. 그에게 단 하나 걱정이 있다면 아들이 장가를 못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선물을 받고 싶다면 당연히 며느리라며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환경미화원들은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일하기가 곤란하다. 거치적거리기 때문이다. 그 또한 몇 번씩이나 불법주차 차량 밑으로 빗질을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환경미화원들은 하루에 수백 번도 더 허리를 굽혀야 한다.

이렇게 힘든 일임에도 최근 경기불황과 일자리 부족으로 환경미화원 지원자가 몰려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보수와 복지는 어떨까? 이 씨는 수당까지 합해 20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샤워시설 하나 없는 공간에서 쉬는 환경미화원들의 '씻을 권리'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적 있다. 창원시에 확인 결과 그가 드나드는 노산동주민센터에는 샤워시설이 없었다. 창원시 측은 "작년부터 예산이 배정돼 시설 신축과 정비를 하고 있지만 새 건물이 아니고서는 시설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취재를 끝마치고 돌아온 후 노산동주민센터 담당 공무원에게 이 씨에 대해 평해달라 부탁했다. 그는 이씨를 "노산동에 온 지 8년쯤 된 성실한 일꾼이며 성격은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편이다"라고 했다. 이후 이 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기자에게 "혹시 직장에 관련되는 이야기가 들어가고 그런 것은 아니지요?"하고 물었다. 기사로 말미암아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음을 걱정하는 눈치다. 그에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올가을 낙엽이 유난히도 늦게 졌다. 이들에게 따뜻한 캔커피 하나 건네며 하루를 시작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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