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희망찾기-지역운동가] (16) 이춘모 진해시민포럼 집행위원장

이 분, 일단 이력 그 자체로 '뉴스감'이다. 지나온 길을 보니 해군전우회 부회장, 신한국당 진해선거대책위 기획실장, 바르게살기 진해충무5가동협의회장 등 '시민운동가답지 않은' 직함이 한가득이다. 시민운동과 관련된 이력의 시작은 불과 3년여 전 '진해사랑시민모임 인터넷 카페지기'가 처음이다. 1947년 태어나 올해로 64세인 이춘모 진해시민포럼 집행위원장에게 최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년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진해 중앙시장의 차광막 공사에 부실 의혹이 제기됐다. 진해시가 몰상식한 계약을 해 예산을 낭비한 것인데, 이 문제를 따지려고 청원과 정보공개청구를 했더니 전혀 응하지 않는 거다.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식과 원칙을 바로 잡고 싶었다."

이춘모 집행위원장./김구연 기자

한 포털사이트에 진해사랑시민모임 카페를 개설한 것도 그때였다. 1년 뒤 이 위원장은 다시 진해시민포럼을 결성해 지역현안의 공론화에 나섰으며, 지난 11월 29일에는 진해지역 야권·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하는 총선 대응 조직인 '2012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의 위원장도 맡았다.

그 스스로 말한다. "누군가 '원래 보수꼴통인데 시민운동 하면서 사람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 내가 봐도 과거 전혀 알지 못했던 걸 알게 됐고, 나 자신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이전에는 노동자들이 왜 머리띠를 두르고 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 망하면 뭘 먹고 사나,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왜 저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안다. 알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춘모 위원장의 '의욕'을 뒷받침하기엔 진해 시민운동의 상황은 너무도 열악하다. 서너 개 단체를 빼놓고 활동력 있는 시민단체가 전무하다. 기자는 이 위원장을 중앙시장 한 가게의 좁디좁은 구석에서 인터뷰해야 했다. 그가 운영하는 아기용품점이었다. 인터뷰할 공간도 사무실도 없고, 또한 회비를 내는 회원도 극소수인 현실, 이게 진해 시민운동이었다.

이 위원장은 "회원을 모집해 다른 시민단체처럼 해보려 했지만 잘 안되더라. 진해 사람들이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다. 진해시민포럼도 취지에 공감한 6~7명이 십시일반해 꾸려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연히 기자회견이나 토론회 한 번씩 하는 데도 '출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그는 여러 이유로 시민운동을 그만두려 했다. "지금 이 나이에 바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회의가 밀려왔다. 그를 다시 깨운 건 내년 총선이었다. "잘못된 행정통합을 주도한 한나라당의 어부지리를 용납할 수 없었다. 반드시 여야 1대 1 구도를 만들어, 독주체제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진해의 최대 화두는 마산·창원·진해 통합과 관련된 문제다. 진해시민포럼도 지난해 9월 진해지역 발전을 위한 주민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고, 이춘모 위원장 개인은 지난 7월 마·창·진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한 '통합 창원시 1년 평가토론회' 토론자로 나선 바 있다.

이 위원장은 "통합 후 진해는 많은 걸 잃었다. 좋아진 게 없다. 진해시청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자가 집무하는 구청이 되어 버렸다. 서부상권은 문을 닫는 점포만 늘어간다"고 전하면서 "우리는 통합 당시 끝장토론과 주민투표를 주장했으나, 한나라당 시의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중앙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강행했다. 이에 대한 반감 때문에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야권 시의원 후보가 7명이나 당선되는 등 한나라당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진해여성회, 진해여성의전화 등 주요 시민단체가 모두 참여한 '강제통합무효 진해시되찾기시민연대'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다. "저 역시 개인적 생각은 원상회복이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판단한다. 통합도 못 막았는데 말이 안된다. 통합청사 유치 등 실현 가능한 것을 이루려면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는 이유에서다.

통합청사 진해 유치에 대한 그의 소신은 확고하다. "창원은 이미 통합 과정에서 '창원시'라는 통합시 명칭을 얻었는데, 이는 청사는 진해나 마산에 짓는다는 대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빅3 사업' 운운하는 것은 시민들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것이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 진해로 오는 게 맞다. 경제자유구역과 신항만을 중심으로 한 대양을 향한 해양도시로 도시발전의 중심축을 설계해야 한다. 내륙 분지형인 옛 창원으로 도시의 중심축을 좁혀가는 중심부 쏠림현상을 과감히 바꾸려는 사고가 필요하다."

이춘모 위원장의 운동 철학은 '상식' 이 한 단어로 요약 가능했다. 이 위원장은 논리와 근거, 설득력을 갖춘다면 모두 바른 길로 향할 수 있다는, 어쩌면 좀 낭만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포럼'을 만든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통합청사 문제만 봐도 당장 '지역 이기주의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 지역을 잘 알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나도 그런 비판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개적 자리에선 통합청사 문제 등에 대해 발언을 자제한다. '되찾기운동'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지역 이기주의자는 정치인들이지, 일반 시민은 극소수라고 본다. 정치인은 자기 이해관계로 사안을 볼 뿐, 진해·마산·창원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는 없기 때문이다. 장복산의 거대한 병풍을 뚫고 바다로 나아가자는 것, 이는 여러 전문가도 공감하는 주장이다."

환갑이 넘어 시민운동에 뛰어든 이 위원장이지만, 그는 '혹 내 주장이 틀리진 않았나' 검증하고 또 검증할만큼 놀랍도록 엄격한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진해의 젊은 운동가들과 자주 소통하고 또 단숨에 시민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그의 마인드가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는 "진해 시민들, 젊은이들이 자기 먹고사는 문제만 말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알게 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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