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어머니가 끓여준 추어탕 맛

벼가 고개를 숙일 무렵이다. 지금은 무척 보기 드물어진, 아니 이미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는 풍경이 떠오른다. 시골들판 물풀이 우거진 좁은 도랑이나 연못, 그리고 논두렁과 논사이에 물이 나는 곳이면 어김없이 짙은 암녹색의 미꾸라지가 진흙 속에서 주둥이를 빠금히 내밀었다.

가늘고 긴 놈이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 엄지손가락 만한 굵기의 미꾸라지가 많이도 있었다. 몸통이 미끌미끌한 데다가 꿈틀거리는 힘이 여간치 않아 ‘옳거니’ 잡았다 해도 어느새 손가락 틈으로 ‘스무스하게’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이런 힘 좋은 미꾸라지를 푹 고아낸 추어탕은 마땅한 국거리가 없을 이 무렵에 시골밥상에 오르는 단골메뉴였다. 그 시절 어머니가 끓여 주던 추어탕은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몸을 보양하는 데도 손색이 없다는 이유로 억지춘향으로 추어탕을 먹어야 했던 동무생각도 난다.

어릴 적 시골에서 먹던 그 추어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어 찾았다. 마산시 장군동 4가 25-5 마산등기소 뒤의 진주식당(대표 이은영)은 50년 손맛을 이어온 추어탕전문점이다. 50년 전통 못지 않게 며느리 3대가 손맛을 이어온 곳으로 더 유명하다.

이 대표가 진주로 시집왔을 때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추어탕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 진주에서 3대가 운영하는 추어탕 전문점인 진주식당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식당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 촉석루 정비로 헐리면서 마산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도 벌써 30년째. 시할머니에게서 전해 받은 비법은 시어머니(김점선.77)와 이 대표를 거쳐 그대로 전해졌다. 여태껏 진주식당의 주방을 시어머니와 이 대표 외에는 누구에게도 내준 적이 없다. 아직도 팔순에 가까운 시어머니가 간간이 주방일을 돕는다. 주방을 책임지는 이 대표가 몸이라도 불편할 양이면 아예 문을 닫는다. 3대의 맛을 이어온 고집이라면 고집이다.

진주식당의 추어탕 비법은 장이다. 식당건물 지붕에는 6.25전쟁을 거쳤다는 장독에서부터 수십개의 크고 작은 장독이 빽빽하다. 그 장독 하나 하나에는 할머니와 이 대표가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갈치젓갈이 곰삭고 있다.

이 장을 이용해 간을 맞추고 갖은 싱싱한 야채와 양념을 넣어 끓인 추어탕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총총 썬 풋고추와 다진 마늘을 한 숟갈 떠 넣고 취향에 따라 초피가루까지 넣으면 시원하고 깊은 맛에 ‘어~시원타’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손두부와 멸치볶음.애호박버섯무침에는 3대를 거쳐온 손맛이 그대로 배어있다. 매일 무쳐내는 싱싱한 김치와 일일이 칼집을 넣어 다져낸 갈치젓갈에는 주인의 정성까지 한 맛을 더한다. 여기에 싱싱한 배추와 살짝 데친 케일.다시마가 곁들여져 갈치젓갈과 꼭 어울린다. 손두부를 맛나는 양념장에 살짝 찍어먹고 편안하게 한 접시 더 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에서도 진주식당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진주식당의 추어탕은 6000원이다. 혹시 단체로 찾을 양이면 쇠고기수육 한 접시(2만원)를 시켜먹고 추어탕을 먹어도 그만이다. (055)247-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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