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희망찾기-시민운동가] (15) 장계석 경남정보사회연구소장

지난 11월초, 경남지역 시민운동을 한눈에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경남도청 인근에서 1주일 동안 열린 '2011 경남NGO박람회'가 그것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130여 개 시민단체들은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전시회와 공연을 통해 자신을 진단·성찰하고 시민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처럼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00년 'NGO 시민참여한마당'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창원시 봉곡동에 위치한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이 대형 행사를 경남도에 처음 제안한 단체이자 실무 전반을 맡아 성공리에 마무리한 '숨은 공신'이었다. 장계석(49) 소장은 "경남도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 수가 600개에 이르는데, 각 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운영되고 있는지, 회원 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파악하고 공유해보자는 취지였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7월부터 경남정보사회연구소를 이끌게 된 장계석 소장. /박일호 기자

장 소장은 그러나 결과물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130여 개도 적은 수는 아니나, 더 많은 단체가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 또 각 단체가 서로 깊은 정보를 나누는 것이 본 목적이었는데, 외형적 행사에 치중한 면도 있었다. 교통 문제와 우천 탓 등도 있었지만 일반 시민의 참여가 저조한 점도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 설립,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경남정보사회연구소이지만 이쯤 되면 'NGO박람회를 추진한 NGO? 어떤 시민단체지?'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역문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연구소는 도서관 건립운동을 전국 최초로 시작한 시민단체이다. 연구소는 이 운동을 통해 "단순히 도서 보급처가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 주민과 마을의 발전을 위하여 논의하는 자리로, 우리의 마음을 주고받는 터전으로 마을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역시 '전국 최초'로 (구)창원시 모든 동에 마을도서관(이후 사회교육센터로 명칭 변경)이 생기는 것으로 이어졌다. 시가 연구소의 민관협력사업 제안을 받아들여 개관을 지원하고, 도서관 운영을 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 맡기는 형태(민간위탁)였다.

2006년부터 5년 넘게 연구소를 이끌어온 이종은 소장 후임으로 지난 7월 바통을 이어받은 장계석 소장은 창립 초기부터 이사, 운영위원장, 소장, 부이사장 등을 맡아 도서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주요 창립 멤버 가운데는 현재 경남발전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인 이은진 경남대 교수와 차정인 부산대 교수, 임정애 창원대 교수 등이 있었다.

장 소장은 "연구소 창립 시점은 창원이 산업도시로서 새로운 재편을 모색하던 때였다. 동 통폐합(대동제)을 비롯한 행정체제 개편, 사회교육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했고 우리는 여기에 '도서관'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라면서 "사회교육센터는 도서관 운영뿐 아니라 강좌·답사·탐방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공간이다. 센터를 지역 생활과 문화의 중심지로, 민주시민 역량을 키우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애초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기도 광명시·부천시 등에서 우리의 경험을 벤치마킹해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거센 시련이 찾아왔다. 협조 관계를 유지했던 자치단체장이 바뀌고 당시 행정자치부가 '주민자치센터' 설치와 관련한 조례를 만들면서 갈등과 혼선이 오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없고 운영 주체만 다를 뿐, 주민자치센터와 사회교육센터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 창원시가 2005년 평생학습도시 정착을 위한 교육센터 관련 조례를 제정하면서 혼란은 극에 달했다. 이후 사회교육센터는 다시 '평생교육센터'로 명명됐는데, 마을도서관, 사회교육센터, 주민자치센터, 평생교육센터, 평생학습시설 등 용어 자체부터 뭐가 어떻게 다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공감한다. 나도 의원과 공무원들에게 조례에서 용어 정리부터 하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용어상 혼란보다 더 큰 문제는, '민'에서 '관' 주도로 바뀌면서 애초 지역공동체운동으로서 취지가 퇴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든 평생교육센터든 전문성 없는 관변단체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만날 노래교실, 스포츠댄스 같은 취미 위주 프로그램만 운영되고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교육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똑같은 '센터'이지만 지역에 따라, 어떤 단체가 관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연구소이지만, 현재 창원시 26개 전체 평생교육센터 중 위탁 운영하는 곳은 단 4곳뿐이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과거의 '영광'만 추억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연구소 측은 '대표 도서관' 설립 운동으로 출구를 찾고 있었다. 장 소장은 "대표 도서관은 평생교육센터 등 도서관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일종의 '허브',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서 "각 도서관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고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 이끌어주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원들에게 토론을 제안하고, 관련 법과 조례 제·개정 운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무관한 듯한, 앞서 'NGO박람회'를 연구소가 추진하게 된 '숨은 배경'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연구소가 고민 중인 단체 중장기적 전망의 핵심은 '허브'란 단어로 집약된다. 도서관 운동뿐만 아니라 각 시민단체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단체로서, 즉 'NGO 중간지원단체'로서 지향도 꿈꾸고 있는 것이다. NGO 중간지원단체는 행정기관과 풀뿌리 시민단체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실무자 교육, 활동시스템 구축 지원 등 컨설팅 기능까지 갖춘 단체를 뜻한다.

장계석 소장은 "연구소는 지금 '과도기'를 경과하고 있다. 새로운 방향을 분명히 잡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하지만 여러 대안을 꾸준히 연구해왔고, 또 어떻게든 다른 형태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를 어떻게 다시 도약시킬지, 이게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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