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희망찾기-시민운동가] (14) 박종훈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지난 2월부터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을 이끌고 있는 박종훈(52) 공동대표를 '딱 잘라' 어떤 시민운동가라고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2010년 6월 경남교육감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경남 혁신과통합 공동대표, 창원 문성대학 입학사정관,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경남지부 운영위원장 등 다양한 일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을 물었다. "물론 교육운동가다. 환경 문제와 언론민주화에도 관심이 많은 교육운동가." 문성고 교사 출신으로서 지난 2002년부터 8년여 동안 경남교육위원을 지낸 바 있는 박 대표의 중심 지향은 확고해 보였다.

박종훈 경남민언련 공동대표. /박일호 기자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교육감선거 출마까지 했으면 사실상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데, 공정성·중립성을 기본으로 하는 시민단체 대표를 맡는 게 혹 논란의 여지는 없을까?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시민단체 쪽에서는 정치와 교육 선출직을 분리해서 보는 것 같다. 분명한 건 시민운동의 정체성 훼손을 막기 위해 선을 그을 건 확실히 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사·감사 등을 맡아 일해 왔기 때문에 '느닷없이 시민단체를 발판으로…' 이런 건 성립하지 않는다. 또 앞으로 선거에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2012년까지만 대표를 하겠다고 했다.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활동도 절대 배제하기로 했다."

10년 가까이 근거리에 계속 있긴 했지만 단체 대표를 맡고 난 후 느낌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보는 시민운동의 현실은 어떨까.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시민단체가 세상에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데, 희망을 주기에는 모두 너무 지쳤다. 활동비, 활동인력, 활동력 총체적 난국이다."

민언련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디어렙 문제, 마산·진주 MBC 통합 등 주요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실무자 2명으로 언론의 공정성을 지켜나가기엔 한계가 있다. 나 역시 단체 대표로서 제 역할을 못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박 대표는 내년 총선을 여러모로 '반전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민언련은 '예사롭지 않은' 수준의 선거보도 감시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고, 또 야권연대기구인 경남 혁신과 통합 공동대표로서 반드시 주요 지역에서 진보·개혁진영의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타협을 통해 시민들한테 카타르시스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잘 안 되면 혼자서라도 몸부림치고 괴성이라도 지를 생각"이라면서 "통합 또는 연합이 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50% 지지율을 얻고 있음에도 5%의 지지율(박원순)에 양보한 안철수 교수의 예처럼 말이다. 어렵겠지만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간, 기자는 박종훈 대표에게 괴로움을 호소했다. 언론, 정치,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을 한꺼번에 다루는 게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박 대표 역시 편할 리 없었다. "사실 여러 직함을 갖는 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리 욕심' 운운하며 오해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가장 최근, 거의 같은 시점에 맡게 된 민언련·환경련 대표의 경우는 오해가 꼭 없었으면 한다. 두 단체에서 동시에 요청이 들어와 어떻게든 조정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둘 다 100%를 할 수 없어 그때 잘못 판단한 건 아닌지 솔직히 고민이 많다."

이제 드디어 '전공' 분야에 대해 말할 시간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교육감선거 패배 이후 6개월 넘게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심리 치료', '정신병'까지 언급하는 걸 보니 후유증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교육 현안에 대한 발언도 극도로 자제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번 인터뷰에서 뭔가 작심한 듯 현 고영진 교육감 체제의 교육행정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내용보다는 포장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년 임기제 자체가 성과주의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건 지나친 수준이다. 이를테면 교육청은 '책 읽는 경남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캠페인·이벤트로 가능한가? 책이 많이 읽히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 등 인프라 구축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경남지역 교육청 산하 25개 공공도서관의 현실부터 그렇다. 아주 열악한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뜨거운 고입 연합고사 부활 문제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신랄했다. 박 대표는 "혹평을 할 수밖에 없다"며 "그저 시험을 더 치면 아이들이 말을 잘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이 드신 분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정말 학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구체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중학교 때 진을 다 빼버리면 정작 대학을 앞둔 고등학교 생활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시험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끝으로 지난 교육위원 생활 8년 동안 기억에 남는 성과를 물으니, 그는 "단 1명뿐인 사서 교사가 50명으로, 1명도 없던 사서 직원이 250여 명으로 늘어나고, 모두 800여 개의 학교도서관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하는 데 나름 역할을 한 것"을 꼽았다. 사실 이 기사에선 거의 다루지 못했으나, 그간 박 대표가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영역이 바로 '도서관'이다. 심지어 그가 2년 전 펴낸 책 제목조차도 <박종훈, 도서관에서 길을 나서다>일 정도였으니까.

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고 있다. "나는 다시 안개 자욱한 길에 서 있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이기는 법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주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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