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기사게재 놓고 갈등...사측, 30일 윤전기 세워

부산일보가 회사 구성원들과 경영진·정수재단 간 대립으로 사상 처음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회사 측은 28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 '정수재단 사회환원'을 공개 촉구한 이호진 노조위원장을 해고한 데 이어, 지난 18일자 신문 1면과 2면에 노조의 주장을 담은 기사('부산일보 노조,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를 게재한 이정호 편집국장에 대해서도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국장을 비롯한 편집국 구성원들은 이에 징계 사실과 노사의 입장을 담은 기사를 30일자 신문에 지난번과 같이 1·2면에 담을 예정이었다. 회사 측은 그러나 윤전기 가동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고, 나아가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전격 폐쇄했다. 30일 오후 4시 현재 부산일보 홈페이지에는 "본사 내부 사정으로 오늘 신문 발행과 인터넷 뉴스 제공을 하지 못했다"는 회사 측 공지만 게재되어 있는 상태다.

부산일보 기자들이 29일 오전 소집된 이정호 편집국장 관련 징계위원회를 몸으로 막아 저지하고 있다./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제공

회사 측이 주장한 이호진 위원장 징계 사유는 불법행위 주도와 회사 명예훼손 등이다. 노조와 기자들의 저지로 무산된 29일 징계위원회에서는 이정호 국장에게 '상사 명령 불복종' 책임을 물을 예정이었다.

발행되지 못한 30일자 부산일보 보도 내용에 따르면, 부산일보 대주주인 정수재단과 회사 측은 사회환원·사장후보 추천제와 관련한 노조의 요구가 경영권·인사권 침해라며 수용할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또 이호진 위원장과 이정호 국장의 행위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위계질서를 문란케 한 것이라며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는 박근혜 의원(전 정수재단 이사장)의 비서관을 지낸 최필립씨가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정수재단 운영에 박 의원의 영향력이 여전히 미치고 있다며 사회환원과 사장후보 추천제 도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함께 국회 앞 1인시위, 본사 로비농성 등을 잇따라 펼쳐왔다. 부산일보 구성원들은 박 의원과 정수재단·부산일보의 관련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내년 총선과 대선 보도의 공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30일 오후 3시 전 조합원 비상총회를 개최한 후 사장실 점거와 철야농성에 돌입한 노조는 이번 징계가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며 부당징계를 철회하고 김종렬 사장은 즉각 퇴진하라는 입장이다. 이호진 위원장은 "무리한 징계를 강행한 것은 김 사장만의 독단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정수재단과)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부산일보를 길들이려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언론·사회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편집위원회,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입장 발표를 통해 부산일보 회사 측과 정수재단, 박근혜 의원을 강력히 규탄했다. 한국기자협회는 30일 발행된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에서 "남의 재산을 강탈한 것으로도 모자라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산일보 기자들의 공정성 확보 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박 의원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정수재단이 하루 빨리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촉구한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부산일보 홈페이지 캡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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