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습니다] 자연재난 예방, 생태계 복원으로 시작해야

■자연재난,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올해는 한반도를 비껴가는 자연재난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점점 빈번해지는 자연재난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특히 일본은 쓰나미와 원자력발전소폭발, 그리고 최근 태국 방콕의 홍수 피해 등 단 한 번의 재난으로 국가적인 규모의 경제 손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가 얼마나 환경적으로 취약한지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태풍, 폭설 등 재난 피해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고 올해는 불과 며칠간의 폭우로 서울 도심이 일시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망각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연재난은 이미 우리에게 냉혹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900년 이래 발생한 폭풍 중에서 1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만 2652개이며, 재난으로 120만 명의 인명이 숨지고 3810억 달러(약 440조 원)의 재산 손실이 생겼다. 이 중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등 열대성 저기압으로 말미암은 재산 피해는 전체 손실의 47%, 인명 피해는 전체의 73%에 이른다.

지난 3월 규모 8.8의 강진에 의해 발생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일본 북동부 미야기현. /뉴시스

■자연재난 조절 기능은 '자연'에 있다

인간의 생활 공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자연재난에 취약하다는 얘기와 함께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재난의 취약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자연이라는 또 다른 사실이다. 생태경제학자로 유명한 코스탄자(R. Costanza)는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 중에서 재난 조절 기능으로 최소 연간 1조8000억 달러로 추정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는 지난 100년간 열대성 저기압으로 말미암은 연간 재산 피해 규모의 10배의 가치와 맞먹는다.

연안 습지의 재난 예방 효과에 대해서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조사팀의 조사에 따르면 폭풍우로 말미암은 홍수 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연안습지 1㎢ 당 4.7㎝ 홍수 표고를 줄이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이 연안 지역의 매립과 개발로 상실한 습지는 원상으로 회복되려는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가 된다. 재난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간이 만들어 낸 '재난 발자국(Disaster Footprint)'을 줄이고, 지금까지 불필요하게 매립하거나 개발한 공간을 자연적인 형태로 돌리는 복원이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난달 홍수 피해를 입은 태국 방콕에서 드럼통 등을 이용해 만든 임시보트를 타고 고지대로 이동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재난 발자국을 인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줄이기 위해 우선 살펴보아야 할 자연생태계는 어디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생태계 평가의 전문가들이 지구상의 주요 생태계에 대한 경제성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지구 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의 63%가 바다에서 오며, 이 중 대부분은 갯벌, 모래해변, 바위조간대 등과 같은 연안 생태계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육상 생태계의 서비스 중에서 대부분은 하천, 호수 등을 비롯한 내륙 습지에서 오는 가치들이다. 숲에서 모인 빗물이 강을 따라 바다로 이동하는 경로에서 대부분의 생태계 서비스가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특히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역은, 영양 물질 순환, 식량 생산, 재난 조절 등의 기능을 경제적으로 평가할 경우 헥타르당 연간 2만2000달러로 가장 높은 생태계에 속한다. 이는 갯벌이나 산호초 바다보다도 경제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연안 지역의 홍수 조절 능력까지 감안한다면 강 하구는 자연적인 상태에서 기수역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복원하는 것이 미래의 재난으로부터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강 하구를 강물이 빠지는 수로로 만든 토목공사가 과연 자연의 홍수조절능력까지 감안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 국내 일부 전문가들이 홍수용량제를 언급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강을 끼고 있는 도시마다 강을 침범하고 바다를 침범하여 상실한 용량만큼 도시 공간 안에 홍수를 감당할 수 있는 저수용량을 산정해 필요한 저류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최근 한반도의 4대강이 모두 물흐름이 막힌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십조 예산이 투입된 지금의 4대강과 돈이 투입되기 전의 4대강 중 어느 것이 더 홍수조절을 위해 좋은 선택이었는지 우리에게 남겨진 지금 우리나라의 재난 발자국을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강의 흐름을 막으면서 홍수조절에 필요한 물막이공사로 끝난 것이 4대강 사업이라면, 자연의 물순환은 기후 변화로 바다의 엄청난 에너지를 계속해서 육지로 퍼붓고 있고 그 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은 우리나라의 주요한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자,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 결코 공짜는 없는 법, 강의 흐름이 막히면 막힌 곳을 뚫고 바다로 흐르려는 것이 강의 본성임을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길은 그래서 더욱 더 명확해 보인다. 강의 흐름을 복원하고 강이 흘렀던 곳을 살리는 복원사업은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우리의 미래이다.

/지찬혁(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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