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주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무학산 서원곡 백숙집 가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어? 도로 한가운데였다. 분명히 서원곡으로 가는 도롯가 어디일텐데 지나쳤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서원곡 유원지로 접어들었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나쳐온 곳을 살폈다. 오래된 집이 옹기종기 모인 조그만 동네였다.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니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가현' 찾아 삼만리. /이서후 기자

관해정 은행나무다. 관해정 담을 따라 동네 골목을 들어서면 풍경이 아기자기하다. 그 길을 쭉 가다 보면 가현(佳炫)이라 적힌 노란 간판이 보인다. 식당 뒷문이다. 그대로 울타리를 끼고 길을 돌아 나오니 아까 지나쳤던 도롯가였다. 그제야 가현이란 글이 적힌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현관을 밀고 들어가니 김주완 국장과 이승환 기자가 미리 와 있다. 가현을 운영하는 김수현(64) 사장님은 자그마한 몸에 웃음이 서글한 여성분이다. 서원곡에서 백숙집을 한지 이제 겨우 2년. 근데 이 집이 왜 인기가 있는 걸까.

드디어 '가현'을 찾았다. /이서후 기자

철학관에서 식당 이름을 지어

주완 - 이 집이 경쟁력이 있는 게 사실 서원곡에 닭집이 엄청 많잖아?

서후, 승환 - 그렇지요.

주완 - 근데 토종닭 하는 집은 거의 없거든. 내 같은 사람은 닭을 옛날에 집에서 키워서 잡아먹어 봤기 때문에 먹어보면 진짜 토종닭인지 아닌지를 알거든.

사장님 - 우리는 토종닭이라도 가둬 놓고 키운 닭은 안 받아들입니더. 과수원 같은 곳에서 풀어서 돌아다닌 닭만 우리 집에 들어온다 아입니꺼.

주완 - 이 집이 괜찮은 게 또 뭐냐면 보통 주메뉴가 있을 때 부메뉴들이 무성의할 때가 많거든. 그냥 가짓수만 채우는 식인데, 이 집은 나름대로 다 맛깔스러워, 깨끗하고. 내가 볼 때는 사장님이 기본적으로 식당을 하시면서 나름대로 프로 의식이 있는 거지.

가현에서는 직접 채소를 재배한다. /이서후 기자

승환 - 장사하시는 분들이 좋은 재료를 써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손님이 많이 온다는 걸 알지만, 손님들이 그걸 알아주기까지 버티는 게 좀 어렵거든요. 그래서 못 버티는 게 태반이고, 손님들이 좀 오다 보니까 한 개 팔 때 1000원 남기다가 재료 좀 덜 써서 2000원 남기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시기가 있어예. 그것도 한 번 참는 게 힘들거든예.

주완 - 니가 뭐 잘 아는 것처럼 말하노?

승환 - 저희 어머니가 식당을 하십니다! 아하하하.

주완 - 그럼 가현이가 몇째 딸입니까?

사장님 - 가현이는 그냥 상홉니다. 상호.

주완 - 딸래미 이름이 가현이라 카던데, 아인가?

사장님 - 그냥 상호!

서후 - 무슨 뜻입니꺼?

사장님 - 내가 장사를 시작할 때 이 집이 원래 무학촌인데, 원래도 백숙집이었지. 철학관 가서 몇십만 원 주고 이름을 짓다 아이가. 상호가 내하고 맞아야 한다 하데.

서후 - 사주하고?

사장님 - 그래. 창원 마산에 가현이란 상호를 쓰는 집은 아무 데도 없다 캅디더. 그래 내가 뭐 가현 가든, 가현 백숙 이렇게 지어달라니까, 그렇게 하지마래예, 그냥 가현으로만 하래예.

승환 - 탁월하시네.

사장님 - 그래서 가현으로 했는데 손님들이 114에 전화를 해서 가현백숙, 가현가든 이렇게 묻거든. 안 나옵니더, 아예.

주완 - 식당일이 좀 힘들죠?

사장님 - 이걸 해보니까 진짜 힘드네예. 닭을 잡아야 하니까. 너무 힘드네.

주완 - 닭을 누가 잡아요?

사장님 - 내가 잡는다 아이가!

주완 - 아저씨는 없어요?

사장님 - 있는데 우리 아저씨는 한량이 되가지고 이른 거 못한다.

서후 - 저는 한량이 아니지만 이런 건 못합니다!

주완 - 근데 대체로 생활력이 뛰어난 여성한테는 항상 한량 남편이 있더라고.

승환 - 생활력이 뛰어난 여성만이 한량 남편을 데리고 살 수 있는 거지요.

서후 - 생활력이 뛰어나다 보니 남편이 한량이 된 게 아닐까요?

사장님 - 처음에는 닭을 죽이면서 악몽을 얼마나 꿨는지 압니꺼?

서후 - 예? 그럼 시골에 살 때 닭 안 잡아보셨어요? 백숙집 하면서 처음입니꺼?

사장님 - 그렇지!

식당 뒤로 가면 텃밭과 함께 닭장이 있다. 항상 50마리 이상, 여름에는 70~80마리는 계속 들어 있단다. 가현에서는 산 닭을 바로 잡아 요리한다. 잡은 닭은 바로 털을 뽑고 다듬어 압력솥으로 들어간다. 여기에 각종 약재를 넣고 한 시간 이상은 푹 삶는다. 그래서 예약을 안 하고 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백숙은 큰 도가니에 담아낸다. 큰 닭 한 마리면 장정 5명이 먹을 수 있다.

/이서후 기자

요리 한 가지에 100만 원씩 주고

서후 - 그럼 제일 처음에는 무슨 장사를 했는데요?

사장님 -별 장사 다했다, 별 장사 다했어. 고깃집부터 시작해서 대게, 피자, 한식, 백숙, 이게 다섯 번째다, 이게.

승환 -피자는 무슨 피자요? 체인이었습니까?

사장님 - 송프로 피자 있지요? 창원 상남동 은아아파트 건너편에서 했다. 우리가 창원 1호점 아이가! 진짜 장사 잘됐다. 재료를 좋을 걸로 썼거든. 똑같은 송프로 피자라도 손님들이 맛있고 맛없고 바로 구분하는 거예요. 1000원짜리 하루 200만 원씩 판다니 놀랐겠지요?

서후 - 백숙 같은 요리는 농사지으면서 다 터득하신겁니까?

사장님 - 요리 한 가지에 100만 원씩 주고 배웠어요.

서후 - 어디서요? 유명한 식당에 가서?

사장님 - 요리사 불렀지. 서울 호텔 주방장. 5일 배우고 500만 원 줬다. 우리 신랑이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다 그랬어. 여기 서원곡에 전부 백숙집 아입니꺼? 다들 몇십 년 하면서 단골손님 잡고 장사하는데 내 어제 아래 오가꼬 어찌 살아남을 낍니꺼? 맛으로 승부 걸어야지. 투자 안 하고 어떤 놈이 돈 주나요. 밑천이 들어야 돈을 주지.

서후 - 닷새 동안 다섯 가지를 가르쳐 준거네요?

사장님 - 그러니까 내가 이 비법을 아무나 가르쳐 주겠나?

서후 - 지금까지 다 그랬습니까? 진주서 영덕대게 할 때도 그랬습니까?

사장님 - 대게도 영덕까지 가서 배워가 왔지. 지금도 대게 하는 데 가서 먹으면 내가 옛날에 하던 것만큼 하는 집 못 찾아요.

서후 -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 가지 음식만 계속한 것도 아닌데, 그 음식들을 다 맛으로 승부한 거 내요. 돈 많이 주고 배워가면서.

음식을 차리시는 사장님. /이서후 기자

승환 - 그게 대단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그 판단을 하느냐 안 하느냐, 보통은 그 돈이 아까워서 안 하거든요. 제가 보기엔 사장님이 눈썰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대충 잘하는 몇 집 둘러보고 적당히 만들 수도 있었거든요.

백숙을 담은 큰 도가니에는 국물이 그득하다. 경상도에서는 보통 이렇게 국물을 많이 주지 않는다. 백숙에 국물이 같이 나오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른 집처럼 닭 뱃속에 쌀을 넣어서 삶아 봤다. 국물이 안 시원했다. 그래서 닭을 그냥 삶았다. 국물이 구수하니 괜찮았다. 그래서 국물까지 그릇에 가득 담아 상에 올렸다. 특히 전날 술을 마신 손님이 이 국물을 좋아하더란다. 남은 국물에다 녹두와 찹쌀을 넣어서 죽을 쑨다.

아버지가 업어서 키운 귀한 딸

서후 - 고향이 부산이라고예?

주완 - 근데 부산에서 합천까지 어찌 시집을 갔지?

사장님 - 신랑이 좋으면 어디든 못 갈까.

주완 - 연애결혼 했어요?

사장님 - 중매를 했지.

서후 - 그런데도 신랑이 억수로 맘에 들었지예?

사장님 - 그치! 우찌 알았노! 아하하하.

서후 - 원래 한량들이 젊을 때는 멋있게 보여요. 노래도 좀 하고 잘 놀고.

사장님 - 맞아! 우찌 알았시꼬, 아하하하.

서후 - 시집가기 전까지 재밌었습니까? 고생 많이 하셨습니까?

사장님 - 나는 시집가기 전까지 밥상에 내 숟가락도 놓아본 적 없어예.

서후 - 그럼 하인을 두셨나요, 집에? 아니면 어머니가 다 해주신 건가요?

사장님 - 그때 그 어려운 시절에 우리 집에는 식모가 있었어요.

주완 - 부잣집이었네.

사장님 - 지금 내 손을 봐라. 시골에 시집가서 모내기하고 밭매고 하다 이리됐다. 이리 되가 사니까 진짜 짜증 난다. 그 생각하면 한시도 못 산다. 그냥 내 운명이다 생각하고 산다.

서후 - 혹시 막내십니꺼?

사장님 - 딸이 귀했어. 아버지가 삼 형젠데 사촌 다 포함해서 아들이 10명이고 딸은 내가 유일했다. 우리 아버지가 내 나면서부터 업고 댕깄다카면 말 다한 거지. 아무리 죄를 저질러도 안 머라캤어.

예약 안 한 손님이 들이닥치면 사장님은 서슴없이 닭장으로 올라간다. 이때 닭장은 아비규환이다. 닭들은 알고 있다. 사장님의 손에 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사장님이 갈고리로 큰 닭 한 마리를 낚아챈다. 멱을 따고 피가 빠질 때를 기다려 털을 뽑는다. 그러는 동안 아무 말씀도, 표정도 없다.

주완 -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인자는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도 되는데 굳이 장사하면 힘들잖아요. 근데도 이렇게 고생을 할라카는 이유가 뭐지요?

/이서후 기자

사장님 - 가만히 놀고먹으니까 우울증 오더라고. 나는 타고났다. 나는 바빠야 해. 바빠야 잡념이 없어. 종일 일하다가 집에 가서 머리를 바닥에 대면 바로 자거든요. 걱정이 없잖아. 원래 나는 60살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러나 댕기고 취미 생활하고 그랬어. 진주에서 영덕대게 하다가 60살에 창원 상남 와서 송프로 피자를 하다 딸한테 넘겨줬어. 다 넘기고 나서 우리 애들 다 마산에 사니까 마산으로 온 거지. 즈그가 우리한테 오는 거보다 우리가 일루 오는 게 쉽더라고. 마산에 와서 한 2년을 놀았어. 1년 동안은 재밌어. 근데 1년 놀고 나니 재미없어.

서후 - 몸이 근질근질하셨네요.

사장님 - 근질근질 한 게 아니라 내가 마산 와서 살려니 친구도 없고 활동도 안 하고 이러다 보니 주변이 끊어졌잖아. 내 생활이 그게 안 되더라고. 자식들은 수영도 가라 뭐도 하라 그러는데 그것도 어울려야 하지 혼자는 안 되더라고.

주완 - 그렇지요.

사장님 -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병나겠다 싶어서 식당을 하나 할까 하고 얄구진 거 하나 얻어서 하는데 그게 또 장사가 잘돼.

서후 - 그 식당이 이겁니까?

사장님 - 아니 밥장사, 한식. 창원서 밥 한 그릇에 4000원씩 받는 식당을 했는데. 점심밥을 한 150그릇씩 팔았어. 100그릇 팔면 40만 원이야. 하루 가만히 놀아 가면서 일해도 40만 원은 버는데, 점심만 하고 집에 오는 거라. 저녁 장사는 안 하는 거라. 한 달 하면 4, 500만 원 벌어. 근데 5개월 하고 나니까 우리 아저씨가 저승 갈라 카는 기라.

주완 - 몸이 아파서?

사장님 - 경남에 좋은 병원 다 데리고 다녀봤어. 마지막에 원이나 풀라고 서울대병원에 갔어. 석 달 동안 3000만 원 썼지. 내 이야기 하면 끝이 없어. 인자 그만 할란다.

주완 - 하여튼 중병이었네. 나았어요?

사장님 - 지금은 생명에 지장은 없지.

서후 -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하셨나. 복이 많으신 거 같네.

주방 사진을 찍으려니 사장님이 한사코 말리신다. 비법이 드러나니 재료는 찍지 말란다. 재료라 해봤자 특별할 것도 없다. 대추, 황기, 인삼, 밤, 마늘 등 백숙을 만들 때 보통 들어가는 것이다. 사장님의 진짜 노하우는 따로 있다. 재료의 배합이다. 멸치 무침도 그냥 무친 거 같지만, 양념 배합이 안 맞으면 제맛이 안 나온다. 백숙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황기를 넣어도 적당한 양이 있다.

/이서후 기자

잘되면 몸이 힘들고 안되면 마음이 힘들고

사장님 - 요새는 우리 신랑하고 한 번씩 싸워. 40살 넘은 우리 큰아들이 하는 말이 우리 어릴 때는 아버지하고 말다툼 한번 안 하더마는 연세 드시가지고 와 싸웁니꺼 카더라고.

서후 - 예전에는 안 싸우셨어요?

사장님 - 시집이 합천댐 주변이거든. 그 위 골짜기 논이 있어. 울고 싶으믄 골짝 가서 울어도 아무도 몰라.

서후 - 어렸을 때는 애들이 몰랐던 거네. 어머니가 참은 거를. 참고 안 싸운 거를.

사장님 - 그렇지. 이제는 나도 애들 다 키우고 나니 허무한 거야.

주완 -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저한테 엄청 많이 쏟아내셨어요. 평소에 말을 못하고 있다가 몸이 아파서 돌아가실 때 다 되니까 너그 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 아나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한 오만 이야기를 다 하시는 거라.

사장님 - 그렇지 그게 가슴에 한을 풀고 가는 거라. 어제 큰아들하고 우리 아저씨하고 한잔하면서 한바탕했는데, 큰아들이 엄마 싸우지 마소, 내가 다 해줄게 카더라.

서후 - 요즘에는 두 분이 주로 싸우시네요?

사장님 - 남자들은 몇 살을 먹어도 다 얼라 같아.

주완 - 맞아, 그거는!

사장님 - 그러면서 또 어른은 하고 싶어.

주완 - 그렇지.

사장님 - 우리 아저씨 70살이 다됐는데도 얼라 같아. 그래서 요새 억수로 힘들거든요. 잘되면 몸이 힘들고 안되면 마음이 힘들고.

승환 - 잘되면 몸이 힘들고 안되면 마음이 힘들고, 급 공감됩니다. 나도.

주완 - 명언이다, 이거.

사장님 - 근데 이게 사람 상대하는 장사잖아.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거, 나쁜 사람이 작다는 거. 그래서 살맛 나는 거예요.

주완 - 그래요?

사장님 - 그렇지. 나쁜 사람이 많으면 우찌 살겠노. 좋은 사람이 많아야지.

주완 - 그것도 명언이다!

사장님 - 다들 밥 먹고 지 돈 주고 가면서 고맙습니다 카는데 얼마나 고맙노.

서후, 승환, 주완 - 와하하하.

<가현> 안내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248-1
메뉴 백숙, 옻닭, 닭도리탕, 오리백숙, 오리불고기, 옻오리
가격 오리 무조건 한 마리 4만 원, 닭 대 6만/중 5만/소 4만 5000원
문의 055-245-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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