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서후의 컬러풀 아프리카 1편

왜 아프리카냐고 사람들이 물었다. 내 삶에서 가장 먼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일단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자신을 향한 물음은 계속됐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그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자 관계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날 밤 나는 마산 만날공원에서 도심 위로 떠오른 달을 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공원을 서성인 다음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왔지만, 누군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밤 산책을 온 이들이 모두 돌아가 버리고 난 공원에서 나는 혼자였다. 달빛이 밝아 슬펐다. 그리고 내가 삶에서, 일상에서, 사랑에서 완전히 넘어져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넘어진 모습 그대로 길 위에 섰다. 길은 붉은 사막이었고, 메마른 사바나였고, 후텁지근한 습지였다. 그 길에서 현생의 모든 인류가 태어났다. 오랜 땅은 나를 압도했다. 나는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태고의 땅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땅은 넉넉하고 푸근했다. 넘어진 그대로 나는 편안했다.

이렇게 해서 이 글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풍경의 기록이자 세상에서 아주 오래된 질문(그러니까 삶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기록이다.

케이프타운 전경. /이서후 기자

첫 번째 이야기 -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눈을 떴다. 비행기 안이다. 배 위에 보다만 책이 얹혀 있다. 책 한 권이 주는 이 압박감 덕분에 잠이 아주 편안했다. 책 한 권이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일상을 벗어난 이의 특권이다. 중력은 일상에도 적용된다. 지구 중력을 벗어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떠남을 생각하기까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쓴다.

비행기가 홍콩 공항에 내린다. 여기서 요하네스버그행으로 갈아타야 한다. 창밖으로 홍콩이 보인다.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어둡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홍콩에 있지만, 홍콩에 있는 게 아니다. 탑승 게이트 앞으로 가니 내가 타야 할 비행기가 보인다. 하얀 동체 옆으로 South African이라는 글자가 있다. 아프리카와의 첫 만남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양한 피부색과 언어들이 저마다 자리를 찾고 짐을 옮기느라 비행기 안은 왁자하다. 갑자기 낯설다. 확실히 이제껏 탔던 비행기와 느낌이 다르다. 벌써 꽤 멀리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멋있고 잘생긴 흑인이 옆자리에 앉지 않을까. 그러나 왼쪽 자리엔 중국인, 오른쪽엔 일본인이 앉아 버렸다. 앞으로 13시간을 날아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비행시간이다. 13시간을 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역시나 잠이 오지 않는다. 비행기 안은 캄캄하다. 기내식을 다 먹고 나니 불을 모두 꺼버렸다. 그러니까 자체적으로 정한 '밤'이다. 비행기는 계속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밤이다. 밤에 깨어나 홀로 어두운 밤에 앉아 있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고요하지만 고요하지가 않다.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럽다.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추우면 옷 입고, 몸이 고단하면 누워 자고, 더우면 시원한 바람을 사랑하라. 경봉선사(1892~1982)는 이렇게 일상생활이 그대로 진리라고 했다. 나는 그 일상에서 넘어졌고, 그래서 도망쳐왔다. 남 핑계 댈 일은 아니다. 결국, 자신이 선택했고, 자신이 실행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밤이다. 계속 밤이다.

앗, 해가 너무 가깝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국제공항, 오전 7시 30분. 저렇게 가까웠던가? 비행기 트랙을 내려오다 지평선에서 막 솟아오른 해와 마주친다. 첫 느낌은 '가깝다'였다. 강렬한 인상의 태양, 지평선까지 이어진 황금빛 하늘. 아.프.리.카.다.

심호흡. 이것이 바로 남반구의 공기다. 지구가 자전한다고 해도 지금 내가 보는 하늘과 한국 땅에서 보는 하늘은 엄연히 다르다. 그것이 북반구와 남반구의 차이다. 지금 한국 땅에서 사람이 서 있는 사람과 나 사이에 각도를 잰다면 90도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직각으로 서 있다. 그런데도 각자 바로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상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요하네스버그공항에서 두 시간 후에 케이프타운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공항은 아주 크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새로 지었단다. 여행자들에게 '조벅(jobug)'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수도는 아니지만, 남아공에서 가장 큰 도시. 남아공에서 가장 크다는 것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다는 뜻이다.

케이프타운 워터프론트 모습. /이서후 기자

모든 나라에서 수도가 가장 크고 번성한 것은 아니다. 남아공의 수도는 케이프타운(입법)과 프리토리아(행정)다. 남아공의 상업과 산업은 모두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세계 각지로 가는 하늘길도 모두 여기를 통해야 한다.

남아공 국내선으로 갈아타려는데 길이 복잡하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안내원이 나타난다. 20대인지 30대인지 모를 흑인 남자다. 이리저리 방향을 일러주던 그가 갑자기 자신이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나선다. 이 작은 친절함이 눈물겹다. 감동이다. 이런 게 아프리카의 정서구나. 훈훈하구나.

홍콩에서 왔어? 아니, 한국에서. 이 공항 좋지? 응, 그러네. 놀랍게도 한국에서 간단하게 익힌 아프리칸스어로도 이 정도 대화가 된다. 음. 뻥이다. 그럴 리가 있나. 아프리카에서는 영어만 할 줄 알면 된다. 국내선을 타는 곳에 도착하니 그가 말한다. 자, 데려다 줬으니 팁 줘. 에? 잠시 고민하다 2달러를 내준다. 황당하다. 이런 게 아프리카의 정서구나. 젠장, 씁쓸하구나.

케이프타운 거리 모습. /이서후 기자

오전 10시 케이프타운행 비행기가 뜬다. 비행기가 뜨는 이 순간은 항상 경이롭다. 물론 공기역학 같은 과학적인 원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거대한 금속 물체가 안정적으로 통제되면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은 놀랍다. 그래서 이륙 후에는 꼭 창밖을 내다본다. 비행기가 목적지 방향으로 선회하면 날개 너머로 금방 떠나온 땅이 보인다. 그제야 비행을 실감하게 되는 거다. 창밖으로 아프리카의 대지가 보인다. 넓다. 아주 넓다. 하늘에서 보는 지평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새삼스레 생각한다. 지구는 둥글다.

두려움과 호기심

남아프리카공화국. 17세기 네덜란드인의 이주 이후 백인이 유입되며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비판하는 영국 정부로부터 독립해 1961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선언했다. 케이프타운(Cape Town).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서 건설하여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카프스타드(Kaapstad)라고 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케이프타운 워터프론트 모습. /이서후 기자

이렇게 설명하면 백인이 이주하면서 비로소 역사가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다. 적어도 케이프타운에서는 이 느낌이 틀리지 않는다. 여기가 정말 아프리카인가. 유럽풍 건물, 거리 가득한 백인들, 전형적인 유럽 도시다. 케이프타운에서는 영국 영어를 쓴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나를 안내한 한국인 가이드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쪽 대학원 입학을 못하자 케이프타운으로 왔단다. 비슷한 언어환경이어서다. 이쪽에서 공부하다가 기회가 되면 영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이다.

숙소까지 가면서 본 도심은 깔끔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신선했고 하늘은 낮고 맑았다. 해발 1000m인 테이블마운틴이 그 거대한 팔을 벌려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평평한 정상 너머로 구름이 넘어간다. 도시는 화사하고 아름답다.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숙소는 중심가인 롱스트리트에서 가까웠다. 배낭여행족(backpacker)이 머무르는 곳이다. 한 방에 침대가 6~7개,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한방에서 잔다. 몇몇 침대에 이름이 붙어 있다. 여자다! 왜 설레지? 빈 침대에다 짐을 던져놓고는 길을 나선다. 오후 1시다. 태양이 뜨겁다.

그런데 선뜻 혼자 길을 나서기가 무섭다. 남아공에 도둑도 많고 강도도 많다는 말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남아공 치안상황은 충격적이었다. 인구는 남한과 비슷하나 살인 건수가 우리나라보다 16.4배, 강도는 37.5배나 많았다. 비행기에서 멋있다고 생각했던 흑인 남자들이 지금은 강도, 살인범으로 보인다.

그래도 큰길로만 다니면 괜찮다는 한국인 가이드의 말을 믿기로 한다. 몸을 움츠리고 쭈뼛거리면서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유명한 쇼핑 관광지 워터프론트. 한 10분 걸었을까, 아뿔싸, 길이 조금 외지다 싶더라니. 저만치 길옆에 앉아 있던 흑인 소년이 나를 보고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는 정면으로 다가온다.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대비를 한다. 낡은 곳, 가녀린 몸에 훌쩍 큰 키, 눈이 큰 그 소년이 불쑥 나에게 손을 내민다. 돈 달라는 거다.

손사래를 치고 지나간다. 지나치긴 했지만, 정신은 온통 등 뒤에 가 있다. 혹시나 따라와서 흉기를 들이밀지는 않을까. 다행히 아무 일도 없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런데 그 소년의 남루한 행색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거리를 잘 보면, 거친 일을 하는 이들은 모두 흑인이다.

케이프타운 워터프론트 모습. /이서후 기자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오는 길에 본 흑인 거주 지역이 생각난다. 이들은 원래 '디스트릭트 6(six)'라는 아름다운 동네에서 오순도순 살았다. 디스트릭트 6는 케이프타운 도심에 있는 한 지역 이름이다. 백인정권이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하면서 지난 1966년 이 지역을 백인 전용 주거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사는 모든 흑인을 쫓아내고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쫓겨난 흑인들은 공항 근처에 이른바 타운십(township)이란 난민촌을 이뤄 산다. 백인은 꼴도 보기 싫다며 30년 이상 난민촌 밖으로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흑인도 있다고 한다. 지난 2009년 나온 영화 '디스트릭트 9'은 이 사건을 풍자한 것이다.

햇빛은 찬란하고 거리는 눈부시다. 30분쯤 걸어 워터프론트에 도착한다. 워터프론트. 정식이름은 V&A 워터프론트(the Victoria & Alfred Waterfront)다. 근대 영국의 전성기를 이룬 빅토리아 여왕(1819-1901)과 그의 둘째 아들 알프레드 왕자의 이름을 땄다. 실제 지난 1860년 알프레드 왕자가 직접 첫 삽을 뜨면서 항구 건설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는 유럽인이 케이프타운에 지은 첫 번째 항구다.

케이프타운의 거리. /이서후 기자

당신은 겸손한가

지금의 워터프론트는 케이프타운의 레저, 쇼핑, 관광 중심지다. 아니다 다를까. 도착해서 보니 온통 외국인이다. 아마 남아공에서 가장 외국인이 많은 지역일 것이다. 거리는 옛 유럽식 건물로 가득하다. 알록달록한 이 건물들은 유명 상점이 들어서 있고 큰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관광객뿐이다.

간혹 전통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흑인 예술가들이 보인다.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노래가 담긴 시디를 판다. 모양새는 슬프다. 아니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실제 이들이 공연하는 모양은 활기 넘치고 행복해 보인다. 즐겁게 공연하고 즐겁게 시디를 판다.

해가 질 시간이다. 위험하니 어둡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걸어서 왔으니 걸어서 간다. 가는 길에 케이프타운 중심가인 롱스트리트를 지나기로 한다. 오후의 약해진 햇살을 받은 마천루 너머로 거대한 테이블마운틴이 보인다. 인간이 만든 건물이 아무리 높고 커도 저 테이블마운틴을 압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곳 사람들은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울까. 글쎄, 케이블카로 테이블마운틴을 오르고 나서는 정복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차, 아닐 수도 있겠다. You have not lived until you have done something for someone who can never repay you. 돌아오는 길에 이 글귀가 쓰인 간판을 만난다. 다른 이가 절대 보답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전까지 당신은 인생을 산 게 아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영국의 목회자이자 작가인 존 버니언(1628-1688)의 말이다. <천로역정>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대로변에 이런 글귀를 내걸 줄 아는 이들이라면 어쩌면 조금은 겸손한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에 온 첫날, 해가지는 거리에서 오래오래 이 글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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