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희망찾기] 시민운동가 (9) 한영수 진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진주는 전체 시민운동 역사를 통틀어 매우 의미 있는 족적을 많이 남긴 지역이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두 번씩이나 노동자 자주관리 형태의 버스회사(삼성교통·시민버스) 창립에 큰 역할을 한 게 대표적이다. 부도난 회사의 노동자들과 함께 싸워 이뤄낸 이 성과는, 노동자와 시민,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연대의 모범 사례로 늘 거론되고 있다.

한영수(55) 진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그 '연대'의 중심에 오랫동안 서 있던 인물이다. 지난 1990년대 초 진주YMCA에서 시민운동에 첫 발을 디딘 한 대표는,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집행위원장·공동대표 등을 맡아 20년 가까이 진주의 연대운동을 이끌어왔다.

한영수 공동대표./박일호 기자

"진주는 시민단체 태동도 그렇지만, 연대운동 역시 전국적으로 상당히 일찍 시작된 곳이다. 왕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은 남명 조식(조선시대 학자) 선생의 경우나 동학혁명의 불씨가 된 진주 농민운동 등에서 나타난 불의에 맞서는 저항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는 의정감시·권력감시 운동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이 노동 문제에 개입하는 게 쉽지 않은데 노동자 자주관리회사라는 훌륭한 사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진주는 진보-보수 단체 간 협력도 비교적 잘 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5년 전까지는 그랬는데…." 최근에도 진주·마산 MBC 통합 반대 운동, 혁신도시 지키기 운동 등 굵직굵직한 연대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전보다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게 한영수 대표의 진단이다. 혁신도시 문제는 애초 정부 방침대로 LH 등 공공기관의 진주 이전이 확정됐으나, MBC 통합은 결국 막아내지 못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시민운동 전반의 총체적 침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각 단체가 모두 어려우니 당연히 연대도 부진하다. 정권·자치단체와 관계, 조직 내부 진단 부재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거대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시민 대다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 거기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시민운동은 경제적 문제든 의식이든 시민들의 삶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공감과 참여가 안 보인다. 심지어 무시와 무관심마저 느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 대표가 오래 전부터 입버릇처럼 제기해온 화두다. 그는 "세계화가 무서운 힘으로 지역 구석구석까지 일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인간성과 공동체성의 파괴는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하지만 최근 월가 시위에서도 나타났듯 이에 맞서는 반세계화 목소리 역시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어중간하게 편승하거나 관망만 하는 시민운동은 더 이상 안 된다. 변화된 현실, 세계화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갖고 앞으로 활동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념과 정신은 곧 운동의 뼈대이자 토대이고, 또 연대의 기반이 된다는 게 한 대표의 생각이다. 튼튼한 뼈대 없이는 시민운동가 역시 세계화 물결에 쉽게 쓸려나갈 수밖에 없다. 서로 각기 다른 영역, 다른 방향의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기본 가치관을 공유한다면 연대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연대', '공유'도 좋지만 폭과 넓이만 강조하다 보면 운동성 그 자체가 훼손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한 대표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역 MBC 통합 반대나 혁신도시 지키기의 경우, 운동과 이른바 '지역 이기주의' 경계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혁신도시 문제는 전라북도와 경쟁이 붙으면서 심각한 지역 대립 양상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한 대표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지방자치가 도입되면서 일찌감치 우려된 부분"이라며 "시민운동은 자신이 혹 지역 이기주의에 편입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가들은 '지역 이기주의 아닌가'란 물음에 분명히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혁신도시 문제는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토대 위에서 이미 정해진 원칙을 지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에 지역 이기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봤다. 지역 MBC 통합도 지역민의 방송수혜 권리 박탈이라는 측면에서 나서야 할 이유가 분명 있었다."

한영수 대표는 끝으로 경남지역 전체 연대운동의 현실을 언급하면서, '권역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경남지역 연대라고 하지만 사실상 마산·창원·진해만 중심이 될 때가 많다. 활동 여력, 소통 범위가 진주 등까지 못 미치는 것이다. 때로 함께 대응해야 할 사안도 있겠지만, 일상적으로는 마창진, 서부경남(진주·사천·산청 중심), 동부경남(김해·양산 중심)으로 나누어 활동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연대운동에 대한 그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뒤, 기자는 한 대표로부터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그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고 앞을 내다보며 지금을 살피는 시간이 됐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한 대표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 역시 각기 다른 조직, 각기 다른 사람이 연대하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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