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를 좋아하세요? 묻는다면, 대답은 노(NO)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60 평생을 공들인 대작이라는 중압감을 제쳐두고라도 그리스도교나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성찰, 철학적 사유 어느 것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발칙한 세대들에게도 탐독이란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이 골칫덩어리 텍스트가 아이슬란드의 연출가 기슬리 가다르손(Gisli Garðarsson)에 의해 유쾌하고 다이내믹한 애크러배틱(acrobatic) <파우스트>로 탄생되었다. 파우스트가 악마와 영혼을 거래한다거나 그레첸과 사랑에 빠지는 것 등 <파우스트>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연극배우 요한의 초라한 말년이라는 현대적인 소재를 섞어 재구성하였다.

"내게 파우스트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노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평생 인생의 목적을 강구해 왔지만 결국 그것을 찾는 데 실패하는 사람이죠.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잘 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연출가 가다르손의 말처럼, 요한이 젊은 간호사 그레타와 사랑에 빠지고 또 사랑을 잃으면서 드디어는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삶을 헤아리게 된다.

각색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의 묘미는 단연 공간의 확장에 있다. 이 작품의 백그라운드는 양로원이지만 악마가 등장하면서부터 그 영역이 확장된다. 굉음과 함께 바닥에서 악마가 훅 튀어 오르고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 위를 뛰어다니고 심지어는 공중격투까지 벌인다. 양로원은 철저히 악마로부터 포위된다.

가르다손은 "밀실에 갇힌 듯한 양로원 노인들의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 벽과 관객의 머리 위 약 5미터 상단에 가로, 세로 각각 11m, 15m의 그물을 치고 배우들의 신체를 이용한다. 배우들이 극장 천장에서 그물 위로 떨어지기도 하고, 무대에서 총알이 쏘아 올려지듯 그물 위로 튀어 오르고, 서로 쫓으며 격투를 벌인다. 강렬한 사운드가 배가 돼 공연장을 압도한다. 관객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연극적 감성에 놀라고 짜릿한 관극체험에 시종 즐거운 탄성을 지른다. 그물 위에서 펼쳐지던 애크러배틱과 곡예적인 움직임은 요한과 발렌틴의 사랑에서 극에 달하는 듯 그지없이 아름답다. 시·공간이 확장되면서 관객은 초현실적인 세계의 판타스틱을 경험한다.

요한의 빼어난 연기 외에도 무대를 종횡무진 쏘다니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세 악마의 연기 또한 볼거리다. 악마를 인간과 같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도 무척 흥미롭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메피스토펠레스, 본능이 솔직한 릴리스, 심하게 소심한 아스모데우스.

   
 

신 앞에서는 인간이나 악마는 분명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쏘려는 의도인가. 하여튼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게 때로는 아이로니컬하게 악마들은 파우스트를, 그의 다른 모습인 '우리'들을 조롱한다. 죽음을 앞둔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절규했던 것처럼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도처에 존재하는 악마에게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2009년 아이슬란드 초연의 대 히트 이후, 런던 영빅 극장에서 36일간의 공연을 전석 매진시킨 베스투르포트 극단(Vesturport Theatre)의 애크러배틱 <파우스트>는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후 지난 4~5일 진주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매혹적인 시간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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