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리타강변에서 함께 사는 사람·연어·숲

가을 연어

가을이 되면 캐나다 밴쿠버섬 서해안, 인구 400명의 작은 마을 뱀필드를 흐르는 사리타(Sarita)라는 조그만 강가에 연어가 돌아온다. 태평양의 반대편인 일본 근해나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근해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2년여에 걸친 수천 킬로미터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이곳에서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리타 강물 속엔 여름 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가, 10월에 접어들면서 강은 수천 마리의 연어 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마치 명절날 양손에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가득 들고, 엄청난 교통혼잡을 일으키며 고향을 찾는 귀향민들처럼.

연어는 쌀과 같은 존재

흥미롭게도 이곳 원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유목생활도 하지 않으며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이를 가능케 해준 것이 다름 아닌 연어다. 농사를 짓거나 유목을 하지 않아도 연어 스스로 바다에 나가 자신의 몸집을 불려 온 후 사람에게 식량으로 바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원주민에게 연어는 우리의 쌀과 같은 존재다. 늦가을 연어가 강을 따라 올라오면 가족당 천여 마리의 연어를 잡아 연기에 그을려 말린 후 겨울 내내 주식으로 사용했다.

연어가 거친 물살을 가르며 상류로 뛰어오르고 있다. /탁광일

숲은 연어를 키우고, 연어는 숲을 만든다

그곳 사람인 누차눌트 원주민은 '숲은 연어를 키우고 연어는 숲을 만든다'고 믿었다. 숲은 연어가 산란하기에 알맞은, 산란 후 바다로 나가기 전까지 살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 준다. 이러한 대가로 연어는 자신의 몸을 나무에게 바친다. 즉 곰들이 죽은 연어를 숲에 들어가 먹고 남은 연어의 일부가 양분으로 나무 생장에 기여하게 되고, 또한 곰이 연어를 먹고 뿌린 배설물이 거름이 되어 나무의 생장을 도왔다.

실제로 과학자에 의해 과거 많은 연어들이 올라오던 개울가의 나무를 잘라 조사해 보니 연어들이 많이 올라오던 때의 나이테의 간격이 정상적인 것보다 넓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나이테 구성 성분을 조사해 보니 보통 대기 중의 질소(N-14)와는 달리, 바다에서 생성된 질소 동위원소(N-15)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연어 세포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everything is one)라는 진리를 터득한 누차눌트 원주민은 자신과 가족이 먹을 만큼 이상으로는 연어를 잡지 않았다. 그럴 경우 가깝게는 숲, 멀게는 바다의 고래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밴쿠버 섬의 원시림과 함께 생활해온 탁광일 교수는 "개울 속으로 쓰러진 나무들의 보호 속에 자란 연어는 바다로 나가, 바다로 떠내려 갔던 숲 속의 양분을 몸에 가득 싣고 돌아와 자신을 키워준 숲에 갖다 바친다"고 말한다. 어쩌면 숲 바닥에 쓰러진 죽은 나무가 숲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김인성(우포생태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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